백화점 말고
거리두기 2단계가 발령되기 전
반려동물 박람회란 곳을 다녀왔습니다.
예전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반려동물을 오래 키워온 여자친구 때문에
이런 신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예전부터 둘이 꼭 참석해보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한 번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가며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많은 곳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돼서
전시회처럼 규모가 큰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곧 있으면 식구를 한 명 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
공부 차원에서 큰 맘 먹고 방문했습니다.
또 참석한 업체 중 친한 친구가 일하는 곳이 있어서
보너스 사은품도 듬뿍 받아와야 했거든요.
(여자친구님의 조언에 따라서)
반려동물을 15년 넘게 키우고 있는 여자친구는
이미 이런저런 반려동물 전시회, 박람회에는 도사라
모든 게 빠삭하더군요.
이번 박람회에는 코로나로 인해
참가부스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개나 넘는데?'
라고 했더니
'2시간이면 다 돈다.'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더군요.
(2시간?
원래는 몇 시간을 돌아야 하는 거지)
'원래는 4-5시간은 기본이야.'
라는 말을 듣고 살짝 소름이 끼쳤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제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완전 텅텅 비었네!' 라고 말하는
여자친구님의 의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엔 발 디딜 틈도 없어서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라
물이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듯
인파에 휩쓸려 흘러 다닐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 안오길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길 따라 흘러 다니며
4-5시간을 이런 곳에 있을 순 없습니다)
마스크 단디 착용하고,
비닐장갑 단디 끼고,
우리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저희도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지요.
그리고 이런데 한번 오면
반려동물 안 키우고는 못 배기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행사에선
반려동물과 동반입장이 가능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려애기들을 데려왔더라구요.
예쁘고 귀여운 친구들이 얼마나 많던지
길가다 자꾸 시선을 뺏겨
자주 여자친구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친구들 보다도
제 시선을 강탈하고,
꽤나 충격적인 장면을 선사해준 건
따로 있었습니다.
와...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반려동물 제품 시장이
이렇게나 크고 다양했는지...
(반려동물을 단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기상천외하고 놀라운 제품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또 생각보다 비싼 가격대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반려동물 제품은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모두 저렴한 가격대일 줄 알았는데
다 그런 건 아니더라구요.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었습니다.
새식구를 들이기 위해선
고정비용은 어느 정도 들지
견적도 어느 정도 나오더라구요.
멍뭉이와 야옹이를 위한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각종 장난감과 옷가지들은
거의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관절과 슬개골에 좋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각종 홈트 기구를 팔고,
지방세포를 분해해주고
각종 영양소 섭취에 도움이 되는
나도 안 먹는 공진단과
반려동물 전용 한약까지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더군요.
여기가 반려동물 박람회인지
유아용품 박람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보험이었습니다.
전 금융사 부스가 여기 왜 와있나 했어요.
여기서도 사람들에게 보험을 파나 싶었는데
잘 살펴보니 동물들을 위한 보험이더군요.
나도 아직 보험은 실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반려동물 보험은
제 보험료보다 비싸더군요.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물론 나쁘다 생각한 건 아니구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반려동물 문외한인 제가 바라본 이곳의 풍경은
'동물이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은연중에 확실하고 당연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전 혼자
마치 이제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넋을 잃고 돌아다니기 바빴습니다.
귀가 후
여자친구의 반려아기들이
오늘 사온 제품들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며
좋아하더군요 :)
왜 내가 뿌듯하던지.
새롭고 신선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전엔 몰랐던
또 하나의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
그리고 머지않아 내가 익숙해져야 할
그런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디딘 기분.
그래서 우리집 새식구는
언제쯤 들어오려나...
걱정이 되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