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의미
집안을 한바탕 정리한 후, 나는 한동안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갔다. 여기서 안정적이란, 내 일상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물건이 놓여 있고 쓸데없는 물건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소 어수선하더라도 스스로는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 또한 한 계절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흐트러질 것이다. 물건들을 언제나 제자리에 있겠지만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나 때문이다. 분명 내가 만든 ‘흐트러짐’일 텐데도 무언가 발밑에 걸리는 균열을 느끼는 순간, 공간의 어수선함이 와르르 시야에 들어올 테다. 그때가 되면 너무 슬퍼하지 말고 한 번 더 정리를 하면 된다.
집에 물건이 너무 많다고 느낄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오래된 한옥의 툇마루 한켠에 놓인 자개 장식장이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는 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안쪽이 고스란히 보이는 장식장이 부엌 가까이에 하나, 사랑방 가까이에 하나 모두 두 개가 있었다. 부엌 가까이에 있는 것에는 제기가 들어 있었고 사랑방 가까이에 있는 것에는 안 쓰는 유리컵과 접시가 쌓여 있었다.
사랑방 쪽 장식장의 물건은 쓰는 일이 없어 늘 문이 닫혀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내부로 파고든 먼지들이 그릇 표면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어릴 적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그 장식장을 보며 그릇이 참 많기도 하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부엌 쪽 장식장은 자주 문을 열었다. 여러 번의 제사 때마다 꺼내 썼고, 추석과 설날에도 썼다. 큰 명절이 지나고 나면 다 쓴 제기를 꺼내 마른행주로 닦은 뒤, 보자기를 깐 툇마루에 늘어놓았다가 다시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나무로 만든 제기들이 반질반질한 햇볕을 받아 보송하게 말라가던 장면이 기억난다.
반면 사랑방 쪽 장식장의 그릇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통 꺼내 쓰는 일이 없었다. 아마 더 오랜 옛날에는 자주 꺼내 썼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살던 곳은 집성촌이라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 동네 사람들이 연이어 방문해 잠시 앉아 있다 가곤 했으니까.
우리 식구들이 다른 집에 방문해 인사를 드리는 사이, 우리집을 찾아온 머나먼 친척들은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거나 술잔을 기울였다. 어른들이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께서 음복을 싸서 전해주던 장면도 기억난다. 그러니 그때보다 더 오랜 옛날에는 더 활발한 교류가 오갔으리라.
“건넛마을 누구네 누구라고 한단다.”
“웃마(윗마을)할매네 큰아들이란다, 그리고 저긴 거기 손주.”
드문드문 보는 어른들이 누구인지 할머니와 엄마가 설명해 주었지만, 나와 내 형제들은 약간 뒤로 물러서 숫기 없이 꾸벅 인사만 했을 뿐이다. 기억에 남는 얼굴은 없다. “그러냐. 네가 누구네 둘째니?” 하며 다정하게 웃어주던 분위기는 기억이 나지만.
해가 지날수록 사람들은 줄어갔다. 지난해 온 어른이 올해 오지 않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충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사랑방 쪽 장식장은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문이 닫힌 채로 쌓여만 있던 그릇들. 할머니는 또 좋은 날에 그 그릇들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간 있는 줄도 몰랐던 장식장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 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잠시 할아버지 댁에 돌아왔을 때였다. 툇마루에 잠시 앉아 오래 비어 있던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친척 어르신 중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이걸 다 가지고 있으면서 아낀다고 쓰지도 않으셨네.”
나는 그제야 그의 어깨너머로 진열된 유리컵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있는 줄도 몰랐네, 정말.
예전부터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질 못하던 할머니께선 물건을 잘 쓰지도 못하셔서 아껴만 두셨다. 그것들은 모두 좋은 날에 쓰자며 하나둘 진열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날이란 대체 언제였을까.
우리는 물을 마실 때조차 컵이 없다면 –있는 줄도 몰라서- 굳이 그걸 꺼내지 않고 ‘스뎅’ 그릇으로 해결했었다. 그러는 사이 주인은 없고 남겨진 그릇만이 하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아 있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장식장을 열어본다거나, 집안의 다른 곳을 더 둘러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다른 물건을 만지는 순간 꾹꾹 눌러둔 감정의 둑 같은 것이 터질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다만 친척들에게서 조금 동떨어져서 커다란 대추나무가 심긴 마당에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서 있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할머니 컵 말이야, 그럼 물건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엄마는 잠시 후에 대답했다.
“정리해야지.”
“그렇구나.”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
“바쁜 일들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건 나에게 처음 겪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나보다 한 대代가 가까운 어른들이 가진 감정의 고저가 더 클 거라 생각해, 슬픔도 위로도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편으로는 ‘정리한다니, 어떻게?’ 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다음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사랑방 쪽 장식장이 비워져 있는 걸 보고서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꽉 차 있던 것들이 어느새 싹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서야 ‘정리’의 의미를 이해했다. 아니, 그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실제화되었을지도. 정리란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 또한 의미했다. 그 물건들이 어떻게, 어디로 정리되었을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긍할 뿐이었다.
“이걸 다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도 않으셨네”라고 한 어른이 말하던 그 장면 속으로 잠시 다녀갔다 온 기분이 되었다. “그러게요” 하곤 그 어른의 말씀을 거들면서 장식장을 한번 열어나 볼걸, 그러면서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눠볼걸 하는 뒤늦은 후회 같은 것도 했다.
나는 물건들이 조금만 들어져 있어도 답답함을 느끼는 성격이다. 그런 것 치고는 귀여운 것도 굉장히 좋아해서 여행을 가서 귀여운 물건을 보면 꼭 사 가지고 오는데 그걸 예쁘게 비치하지 못하고 상자 속에 모아만 둔다. 귀여운 걸 보려고 산 건데, 그냥 집어넣어 두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어딘가에 진열해 둘 자신은 없다. 그건 내가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와 아주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눈에 밟히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소유한 데 의의를 둔다. 언젠간 쓰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정리를 할 때도 상자 하나에는 마스킹 테이프를, 상자 하나에는 온갖 곳에서 사 온 엽서와 포스터들을 또 다른 상자에는 인형을 비롯한 모형들을 집어넣기도 했다.
어쩌면 할머니의 장식장처럼, 나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장식장에 그렇게 그릇과 컵을 넣어두었던 할머니의 마음도 일순 이해가 된다.
백 퍼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그에게 일부 물려받았을 나의 기질과 거기에 더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만큼만 막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