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인물들 28
제갈량의 호출을 받고도 이엄은 강주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갈량에게 뜬금없는 제안을 내놓습니다. 익주는 큰 주(州)니 그중 군(郡) 다섯 개를 갈라서 따로 파주(巴州)라는 주 하나를 만들자고요. 그리고 자신을 파주자사로 삼아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하루가 급박한 시기에 말입니다.
당시 제갈량은 익주목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즉 승상으로서 국정을 운영하는 동시에 익주의 군사와 행정에 대한 권한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익주에 소속된 군사, 즉 실질적으로 촉한의 군사 전체 중 중앙군을 제외한 지방군을 제갈량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엄이 파주자사가 된다면 해당 지역의 지방군은 이엄의 통솔 하에 들어갑니다. 물론 주목과 주자사의 권한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제갈량이 군권 일부를 빼앗기게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북벌의 성공이 지상목표였던 제갈량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동시에 이엄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이엄은 촉한의 동쪽 지역에 오래도록 주둔하면서 그곳에 어느 정도 기반을 구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직속으로 거느린 군사도 상당했고, 조운과 용명을 나란히 했다는 진도 같은 우수한 장수도 휘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가면 결국 제갈량의 휘하에 소속되는 꼴이 됩니다. 만일 이엄이 제갈량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불안했을 겁니다. 자신이 열심히 쌓아온 기반이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굳이 파주자사를 요청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자신이 강주를 떠나더라도 지역적 기반을 여전히 유지하려면 그런 지위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또 과거 이엄은 제갈량에게 구석을 받아 왕이 되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갈량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만, 이 또한 이엄이 제갈량을 은근슬쩍 떠 보면서 견제하려 했다는 근거가 될 겁니다.
아마도 제갈량 역시 이엄의 그런 심리를 꿰뚫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주자사는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제갈량은 타협책을 제시합니다.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를 도독하는 독군으로 임명하고, 이엄의 본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도록 한 거죠. 이엄이 가진 모든 권한을 부자승계하게 해준 셈입니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이엄은 냉큼 승낙한 후 병력을 이끌고 한중으로 옵니다.
제갈량이 이런 제안을 한 건, 일차적으로는 국가적 위기에서 그만큼 이엄의 병력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엄의 이런 행동은 누가 봐도 도가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갈량은 이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위기는 의외로 수월하게 극복됩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세 갈래로 병력을 나누어 진군하던 위나라 병사들은 폭우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가까스로 한중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병사들도 격퇴당하지요. 결국 조진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였습니다.
제갈량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수비를 위해 집결한 병력을 이용해 즉시 역공에 나섰습니다. 촉한에서 손꼽히는 두 명장인 위연과 오일이 병력을 이끌고 강중으로 진격합니다. 그리고 옹주자사 곽회와 후장군 비요를 대파하지요. 이 전공으로 위연이 정서대장군으로 승진했을 뿐만 아니라 절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대승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듬해인 231년. 제갈량은 다시 한 번 기산으로 출정합니다. 이른바 4차 북벌입니다.
이때 놀랍게도 제갈량은 한중의 승상부에 이엄을 남겨 자신을 대신하여 승상부의 일을 처리하도록 합니다. 이엄에게 국정을 좌우할 권한을 부여한 겁니다. 이런 조치에 승상부의 관원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제갈량은 밀어붙였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우선은 이엄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성은 어찌 되었든 간에 이엄의 재능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순수하게 능력으로 보자면 제갈량이 후방을 맡기기에는 이엄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물론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럴 거면 왜 이전의 북벌에서는 이엄을 쓰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북벌은 모두 기습작전이었습니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틈에 최대한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요. 반면 이제부터 진행될 북벌은 필연적으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침공에 대비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한중에서 북벌을 감행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좁고 험한 잔도를 통해 군량을 보급하는 일입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보급의 난이도는 폭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유능한 인물이 필요해지지요. 게다가 또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한중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제갈량이 대병력을 이끌고 출병할 때, 적이 다른 길을 통해 텅 빈 한중을 직접 공격한다면 촉한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과거의 북벌은 단기전이었고 또 조운 등의 의병(疑兵)을 이용해 적을 붙들어둠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위나라는 제갈량의 병력을 묶어두면서 후방의 병력을 동원해 한중으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중을 방위할 부대가 필요했죠. 군사적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휘하에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엄입니다.
덧붙여, 저는 제갈량에게 이엄을 달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엄은 제갈량과 본질적으로 성향이 달랐습니다. 욕심이 많았고, 권력이나 지위를 부여하여 그 욕심을 충족시켜 주어야만 비로소 행동에 나섰습니다. 진진은 과거 이엄을 가리켜 뱃가죽에 비늘이 있다(=믿을 수 없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로 정확한 지적이었지요. 이엄이라는 사람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과거 파주자사 사건도 그랬거니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엄은 제갈량의 출정을 앞두고 뜬금없이 위나라의 사마의가 개부벽소(開府辟召)했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개부벽소란 삼공에 해당하는 최고위 관료에게만 부분적으로 인정된 특별한 권한으로 그 자신의 부(府)를 열고 그 관원을 직접 임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제갈량이 승상부를 열고 장사와 사마를 비롯한 여러 속관들을 임명했듯이 말입니다. 이엄이 이 말을 꺼낸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였죠. 그래서 제갈량은 그 대신 승상부의 일을 대리하게 함으로써 이엄의 욕심 일부를 채워준 걸로 추측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엄의 인선은 논리적으로 타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