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인물들 28
(참고로 이때쯤 해서 이엄은 이름을 이평으로 개명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이름을 바꾸면 헷갈리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31년 봄에 제갈량은 기산으로 출정합니다. 이때 위나라의 대사마 조진이 병들어 있었기에 황제 조예는 형주에 있던 사마의를 불러들여 서쪽의 일을 맡깁니다. 사마의는 장합, 곽회, 비요, 대릉 등을 이끌고 제갈량과 상대하지요. 제갈량은 상규에서 장합과 곽회를 격파합니다. 그리고 5월 여름, 노성에서 결전을 벌어지는데 제갈량이 또다시 위나라 군사를 대파합니다. 그 앞뒤의 세세한 정황은 추후 연재될 출사에서 확인하시면...... 엣헴.
여하튼 상황은 분명 촉한에 유리했습니다. 위나라 군사들이 비록 궤멸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피해는 분명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마의는 영채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방어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촉한은 천수 일대의 보리를 수확하여 당분간의 군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지요.
그런데 또다시 장마가 지속됩니다.
폭우로 인해 잔도를 통한 군량 운송은 또다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측컨대 당시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처벌은 상당히 무거웠던 걸로 보입니다. 예전에 미방도 보급 문제로 관우에게 질책을 받은 후 손권에게 항복해 버린 전례가 있었지요. 이엄 또한 처벌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군량을 제대로 운반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잔꾀를 부립니다.
이엄은 제갈량에게 부하를 보내 보급이 어렵다고 통지합니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본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이엄은 마치 깜짝 놀랐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군량이 아직 넉넉한데 어째서 퇴각하는 것인가?” 또 황제 유선에게 표를 올려서는, 아군이 후퇴한 건 적을 유인하여 끌어들인 후 격파하려는 계책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자기가 군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서 퇴각한 게 아니라는 변명이죠.
그러나 그런 얄팍한 수작이 먹힐 리 만무합니다. 제갈량이 돌아오면 모든 사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불안해진 이엄은 갑자기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저현이라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는 제갈량의 군대가 당도하자 또다시 강양으로 도망치려 하는데 강양은 익주 남부로 한중에서 수천 리나 떨어진 곳입니다. 완전히 겁에 질린 거죠. 하지만 보다 못한 부하가 뜯어말리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만두었습니다.
제갈량이 한중으로 돌아와 이엄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공개하자 상황은 명확해졌습니다. 이엄이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온갖 술책과 협잡을 부렸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지요. 제갈량이 느낀 배신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아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엄이 승상부를 관할하도록 해주기까지 했는데, 바야흐로 북벌에서 승기를 잡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이엄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었으니까요.
제갈량은 이엄을 처벌해야 한다고 상주합니다. 한중에 있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연명으로 참여한 상소였지요. 이엄은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서민으로 강등된 후 유배됩니다. 그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건 그가 선황제 유비로부터 탁고를 받은 고명대신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반대로 보면 탁고대신인데도 불구하고 유배를 가야 했을 정도로 이엄의 잘못이 컸다는 뜻도 됩니다.
어떤 이들은 제갈량이 정치적 적수였던 이엄을 제거하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헛소리죠. 만일 이게 술책이라면 제갈량은 손바닥이 간지럽다는 이유로 자기 팔뚝을 잘라버리는 정신 나간 사람일 겁니다.
제갈량은 이엄에게 매우 큰 권한을 부여하였고 또 무척 중요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엄은 최악의 방식으로 그 믿음에 보답했습니다. 덕분에 제갈량이 공들여 준비했던 북벌은 수포로 돌아갔지요. 이후 제갈량은 3년 동안 북벌을 중단하는데 그만큼 이때의 유무형적 피해가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속과 이엄 중 누가 더 제갈량의 기대를 크게 저버렸는지를 따지자면 저는 이엄을 고르겠습니다. 마속이 고작 선봉에 참군이었던 데 반해, 이엄은 지위로 보든 역할로 보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감과 역할을 요구받았거든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제갈량이 이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엄의 아들 이풍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갈량은 과거 초나라의 재상이 수차례나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했던 사례를 들면서 이엄이 다시 조정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칩니다. 물론 그저 정치적 수사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엄이 저지른 잘못의 크기로 볼 때 그에 대한 처벌이 의외로 가벼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엄이 귀양을 간 재동군도 성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요. 그래서 이엄 자신조차도 제갈량이 언젠가는 자신을 다시 불러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3년 후인 234년,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엄은 그 소식을 듣고 병이 들어 죽습니다. 진수는 ‘이엄은 항상 제갈량이 자신을 복귀시켜 줄 것을 바랐지만 그 후계자는 그러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격분한 것이다’라고 서술하였는데 옳은 말입니다. 황제 유선을 제외한 촉한의 그 누구도 제갈량의 조치를 뒤집을 권위는 없었으니까요. 이엄을 복귀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오직 죽은 제갈량뿐이었습니다.
이엄은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만큼 대단한 능력을 지녔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고명대신이 되었으며, 그에 걸맞은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람됨은 그 능력을 품기에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의 능력마저 무색해졌고, 크나큰 실책을 저지른 후에는 그 책임을 면하고자 더욱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나라 전체에 큰 타격을 주었지요.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중요하다는 말은 종종 꼰대들의 잔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엄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능력이 뛰어났지만 다른 문제로 인해 결국 조직에 큰 피해를 주었으니까요. 위연과 양의도 그랬지요. 뛰어난 능력이 개차반인 인성과 결합하자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내전이 벌어질 뻔했으니까요. 대부분의 조직이 이른바 ‘잘 화합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건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 사실을 제갈량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엄을 써야 했던 상황이, 그만큼 인재가 부족했던 촉한의 상황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