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게 들여다보는 삼국지
저는 유비가 일부러 손씨와의 잠자리를 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후계 구도가 꼬여버리거나 혹은 지나치게 강성한 외척의 영향을 받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말이지요. 물론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근거 없는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유비와 손씨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손씨는 유비가 자신의 방으로 올 때마다 시녀들에게 무기를 들고 주위에서 시립(侍立)하도록 하여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나중에는 심지어 아예 나가서 따로 성을 쌓은 후 그곳에서 기거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명색이 부부일망정 사이는 최악이었습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 사이에서 유비의 적장자가 될 운명인 아들은 끝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유선의 친모인 감씨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간 고생만 죽어라 하다가 마침내 남편이 기반을 마련하여 행세할 수 있을 때가 되자마자 눈을 감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지요. 이 무렵 유선의 나이는 기껏해야 서너 살에 불과했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아버지뿐이었습니다. 일평생 처자를 제대로 돌본 적이 없다시피 했던 그 아버지 말입니다.
211년. 유비는 아내와 자식을 형주에 놓아둔 채 촉으로 들어갑니다. 그해 손권은 손씨를 동오로 불러들입니다. 처남이 집을 비운 사이에 자기 동생을 데려와 버린 거죠. 이때 손씨는 유비의 하나뿐인 친아들 유선을 데리고 갔는데,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납치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인질로 삼을 작정이었겠지요. 다행히도 형주에 남아 있던 제갈량이 기민하게 대처하여 조운과 장비를 파견함으로써 유선을 구출해 내는 데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고작해야 다섯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받으며 양어머니에 의해 납치당할 뻔 했던 유선의 처지는 참으로 안쓰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유봉은 그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212년. 본격적으로 유장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유비는 형주에 있는 군사와 장수들을 서쪽으로 호출합니다. 제갈량을 비롯하여 장비와 조운 등이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였지요. 이 원정군에는 유비의 양자인 유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유봉의 나이는 벌써 스물이 넘었는데, 무예가 뛰어나고 재주가 있어서 군사들을 지휘하여 여러 차례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익주가 평정된 후에는 부군중랑장이라는 벼슬을 받았지요. 즉 유봉은 양아버지의 휘광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그 지위에 오른 겁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유비의 인재 보는 눈이 그만큼 탁월했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러나 유봉의 이러한 대두는 유선의 입장에서 여간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록 양자라는 크나큰 약점이 있을망정 엄연한 유비의 아들이요, 나이도 열다섯 살 가량이나 많아 이미 성인인 데다 군공을 세움으로써 실적까지 겸비한 유봉입니다. 반면 유선은 그저 나이어린 꼬마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첩의 소생이기까지 했습니다.
한 번 가정을 해 봅시다. 한창 유장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점에서 유비가 갑작스럽게 화살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고 해 보죠. 그는 과연 누구를 후계자로 지목했을까요? 물론 친아들인 유선일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저는 유봉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선의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렸으니까요. 천하가 안정되지 않았고 유비 자신의 기반도 아직 완전하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조조와 손권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있는 시점에서 고작해야 예닐곱 살밖에 안 된 꼬마에게 후사를 맡기는 건 아무래도 너무나 부담이 큰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는 없었습니다. 유비는 삼 년 만에 촉 땅을 평정합니다. 그런 후에 유장의 형수였으며 남편을 잃은 후 미망인으로 있었던 오씨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법정을 비롯한 신하들이 적극 권유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비는 물론이고 그 세력에 속해 있던 자들은 모두 유비와 손씨와의 혼인관계가 이미 끝난 것으로 간주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제는 오씨가 유비의 정실이자 본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본처라도 오씨의 경우는 손씨와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이 시기에 이르러 유비의 세력은 과거보다 훨씬 강성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오씨의 집안은 손권만큼 대단하지는 않았지요. 오라버니인 오일을 비롯한 오씨의 일가붙이들도 본래 익주에 뿌리박고 살아온 호족이 아니라 외지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익주 내에 기반이 없었기에 유비의 후계 구도에 간섭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습니다. 물론 유비도 그런 점까지 두루 감안하여 오씨를 자신의 본처로 낙점했겠지요.
그럴지라도 오씨가 아들을 낳으면 유선의 앞날에 그림자가 드리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씨마저도 아들을 낳지 못합니다. 이쯤 되면 정말로 유비가 의도적으로 잠자리를 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유비가 고자였거나 혹은 여자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유비는 훗날 서로 다른 두 첩(혹은 후궁)에게서 아들을 둘이나 더 얻거든요. 물론 이 두 아들, 유영과 유리는 모두 유선과 마찬가지로 서자였던 데다 심지어 너무 어렸습니다. 그래서 유선의 앞길을 방해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유비가 의도했던 아니든 간에 유선의 앞날은 점차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219년. 유비는 평생의 숙적 조조를 한중에서 격파함으로써 익주를 온전히 손에 넣습니다. 이때 유비는 유봉에게 병력을 맡겨 맹달과 함께 멀리 상용으로 파견했습니다. 상용태수의 항복을 받아낸 유봉은 부군장군으로 승진하지요. 그리고 얼마 후,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에 오르면서 유선을 왕태자로 삼았습니다. 이로서 유비는 만천하에 공표했습니다. 자신의 후계자는 유선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위왕 조조가 조비를 왕태자로 삼으면서 자신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한 것처럼요.
과연 유봉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나이어린 동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을까요? 양자인 자신보다는 친자인 유선이 후계자가 되는 게 옳다고 수긍했을까요? 아니면 분노했을까요?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며 공을 쌓아 온 자신이 아니라, 그 어떤 실적도 보여준 적 없으면서 첩의 자식인 주제에 단지 유비와 혈연관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태자 자리에 오른 유선을 질투했을까요?
진실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앞뒤 정황을 보면 유비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고, 그래서 유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유봉을 먼 국경 지대로 내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상용이라는 장소가 지나칠 정도로 중요합니다. 한중과 형주 북부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에,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보내어 지켜야 하는 요충지입니다. 게다가 지역의 토착 유력자인 신탐과 신의 형제의 세력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즉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함부로 보냈다가는 토착 세력에 제거당하거나 혹은 오히려 반란을 일으켜 자립할 위험조차 있는 지역이 바로 상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지역에 유비는 유봉을 보냈습니다. 그만큼 유봉을 믿었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다소 섣부르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유비는 유선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봉을 아끼고 신뢰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너무나도 부질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