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2집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첫 앨범 제목인 <Infield Fly>는 매우 역설적이다. 야구에서 타자가 낼 수 있는 결과 중 최상은 아마도 밴드의 이름과 같은 역전 만루홈런일 것이다. 반면 최악의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일 것이다. 공이 하늘로 떠오르고, 심판이 인필드 플라이를 선언하는 순간, 타자는 자동으로 아웃된다. 공이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타자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달빛요정은 자신이 내놓을 앨범의 운명을 그렇게 예상하면서 자조적으로 이름붙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예상은 어긋났다.
2003년에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진 그의 앨범은 인디음악의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탔다.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이듬해 지상파 라디오의 인디차드 순위 진입이었다.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 인디차트에서 앨범의 수록곡 두 곡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하면서, 달빛요정은 마침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트로를 제외한 첫 곡인 [절룩거리네]의 구조는 매우 인상적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보다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도입부는 곧장 ‘이제 난 그 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는 읊조림을 통해 수직으로 추락한다. 그렇게 한번 추락한 심상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은 나를 원치 않아’라는 음울한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달빛요정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노래는 이 앨범이, 나아가 달빛요정이라는 인물이 일평생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웅변하고 있다.
허구한 날 사랑 타령
나잇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처박혀
뚱땅땅 빠바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절룩거리네]
‘구질구질한 세상아 버스에서 다시보자, 그때에는 어딘지 좀 알려다오’라고 외치면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위치해야 할 곳을 찾는 달빛요정은, 그러나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메인 요리가 되지 못한 ‘스끼다시’이고, 자신의 노래는 ‘스포츠신문 같은’ 일회성 소모품에 지나지 않기에, ‘나는 뭐 잘났나’라고 자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 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스끼다시 내 인생]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자칭하면서 힘을 내보려 해도 신통치 않다.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목표는 그가 일평생 이루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보컬로서의 역량이 뛰어나지도 않고, 외모도 별 볼 일 없고, 연줄조차 없는 그에게 세상이란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래서 1.5집인 <Sophomore Jinx>를 통해 그는 한결 직설적인 톤으로 강렬하게 외친다. 세상은, 나를 버렸다고. 세상은, 개좆같다고.
조금만 기다려줘
사랑해
사랑해
이 세상처럼 날 버리면
안 돼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Show me the money]
나에게 이 세상은
개좆같아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 돼
낙하산과 사다리 없이 너와
같을 순 없어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 되]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Infield Fly>는 많은 호응을 얻으면서 달빛요정이라는 개인의 삶에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2006년에 나온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은, 음울하기 그지없던 1집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 <스코어링 포지션>은 안타 하나만으로도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달빛요정은 아마도 어떤 희망의 편린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노래로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2집을 통해 달빛요정은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더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간다. 이 한 장의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달빛요정 자신에 대한 소개서에 가깝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풍겨오던 냄새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제육볶음의 비밀],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경험담을 담은 [폐허의 콜렉션], 볼품없었던 방위 근무 시절을 자조적인 말투로 그려낸 [길동전쟁]은 모두 이진원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탐구이자 인식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작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달빛요정은 더욱 초라해진다. 급기야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다고 자조할 정도로.
이런 너의 노래로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어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폐허의 콜렉션]
달빛요정에게 있어 노래란 무엇이었을까. 절반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였지만, 동시에 남은 절반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수단이었으리라. 그 간극 사이에서 자신의 노래를 통해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남김없이 폭로하면서 달빛요정은 자기 자신을 스트리퍼에 대입한다. 옷을 벗어 치부를 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이, 그가 바라보는 스스로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그래서 나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고.
오늘도 나는 벗지만 부끄럽지는 않아
내가 택한 나의 길인걸
더불어 부와 명예를 모두 다 얻어도 좋겠지만
난 내가 이 길을 택했던 처음부터
사람들과 엇갈려 있어
아무도 내가 꿈을 쫓는지 몰라
그저 나의 벗은 몸을 가끔씩 원할 뿐이야
(...)
그러나 나는 쉽게 벗지는 않아
내가 택해 스스로 벗어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혼자만의 에로티시즘]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