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Apr 21. 2022

달빛요정, 요정은 간다 (4)

3.5집 ~ 사후앨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은 신해철에게 그러했듯이 달빛요정에게도 몹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10년에 내놓은 3.5집에서는 그가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집에서 3집을 거치며 세상을 향해 무척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나아가던 달빛요정이었다. 부조리에 맞서 싸울 열정과 의지를 드러내기보다는 차라리 체념하고 내면으로의 도피를 선택하던 달빛요정이었다. 그랬던 그가 증오와 분노를 앞세우며 갑작스레 정치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너무나 생경한 것이었다.  


그래서 변명해본다
조금은 게으르고 조금은 가난했지만
적어도 나는 정의로웠다
너에게는 별 의미 없겠지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입금하라]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너는 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나는 개]


‘쥐’로 지칭하는 대상이 당시의 대통령임은 명백하다. 이 이상 상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기에 생략한다. 다만 달빛요정의 3.5집은 당시 정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앨범이었다는 점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달빛요정의 음악세계 전반과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다. 정치란 씨줄과 날줄이 무척이나 복잡하게 엮인 복잡한 세계이기에, 그 한복판으로 뛰어든다는 건 본래 외부와의 접촉을 두려워하면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성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탐색해 오던 달빛요정의 음악관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고요한 호수 한가운데 던져진 폭탄의 굉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달빛요정의 팬들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달빛요정으로서는 이른바 대중예술가들의 숙명과도 같은 문제와 맞닥뜨린 셈이었다. 남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과, 자신이 내놓고자 하는 것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있을 경우,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음악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이 삶의 소박한 목표이자 희망이었던 달빛요정에게 이건 단순히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생계와 직결된 문제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으레 그러해 왔듯 이러한 암묵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일단 다음 앨범을 지켜보자, 라고. 


  그러나 다음 앨범은 없었다. 적어도 그의 생전에는.




그해 가을, 달빛요정은 자신의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혼자 살고 있었기에 발견이 늦어졌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이미 때를 놓친 상황이었다. 불과 다음 주로 계획되어 있던 공연을 준비하던 그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후에 그의 유작 앨범이 출시되었다. 신해철이 그러했듯이 생전 작업하던 작품들이 동료들의 손을 거쳐 앨범화 된 것이었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너클볼 컴플렉스>의 가사는 결코 길지 않지만, 마치 달빛요정 자신의 삶 전체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던지는 공의 속도가 빠르고 회전수가 높을수록 우대받는 투수들의 세계에서, 너클볼은 거의 유일하게 방향성을 달리하는 구종이다. 공의 회전을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변화를 극대화하는 너클볼은 타자가 치기 어렵지만 포수가 받기도 어려우며, 심지어 공을 던지는 투수 자신조차도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괴상한 변화구다. 그렇기에 재능의 부족을 느낀 투수들이나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투수들이 너클볼러로의 전환을 꾀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아서 자신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느린 공이지만 가장 치기 어려운 너클볼은, 그렇기에 아마도 달빛요정이 평생 꿈꾸어 오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달빛요정 이진원. 야구를 좋아하던 키 작고 배 나온 아저씨. 스스로를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라고 자조하던 이. 하지만 소박하지 그지없는 꿈을 끝내 잃지 않았던 가수. 현실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기타를 놓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으로 끝까지 세상과 맞서 싸우던 달빛요정.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이다. 비록 찬란하게 빛나지는 못할지언정 언제나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달빛요정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살아남았다고.   


꿈이 없이 살 수도 있어
꿈만 꾸며 살 수도 있어
나를 지워가면서
세상에 나를 맞춰가면서

느리다고 놀림받았지
게으르다 오해받았지
그런 나를 느껴 봐
아직은 서툰 나의 마구를
 
꿈을 향해 던진다
느리고 우아하게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너클볼
나는 살아남았다
불타는 그라운드
가장 높은 그 곳에
내가 서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너클볼 컴플렉스]


이전 10화 달빛요정, 요정은 간다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