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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pr 20. 2022

달빛요정, 요정은 간다 (3)

3집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집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 안에 담긴 패배자 감성이 농도 짙으면서도 지나치지는 않아 ‘대중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참할 정도로 시궁창이었던 노랫말에 비해 곡 자체는 무척이나 경쾌하였던 영향도 있었으리라.

 

  반면 상대적으로 음울해진 가락에다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으로만 파고든 가사를 담아낸 2집은 그 범위를 이탈해 버렸기에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2집은 1집에 비해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는데, 달빛요정은 자신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팬들이 모두 떠나 버렸다고 농반진반으로 한탄했지만 그보다는 1집으로 인해 생긴 팬들이 원하는 노래와 그가 발표한 노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컸던 탓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달빛요정은 2007년과 2008년에 연달아 지상파 드라마의 OST에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았고, 그 사이에 싱글앨범도 냈다. 하지만 한때 높았던 인기는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노란 딱지와 밀린 월세라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 태어난 3집 <Goodbye Aluminium>은 감히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앨범이다. 이제 달빛요정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던 2집에서 벗어나, 다시금 세상을 향해 시야를 넓히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어린아이 같았던 그였지만, 아마추어 고교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가 퇴출되며 프로와 같은 나무 배트가 사용되기 시작한 그 시기에, 바야흐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달빛요정은 호기롭게 외친 것이다.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라고.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세상아

나에겐 나의 노래가 있다
내가 당당해지는 무기
부르리라 거침없이
영원히 나의 노래를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나의 노래]


  이 앨범의 서두에서 달빛요정은 더 이상 세상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고 붙어 보겠다는 다짐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가 진실로 바란 것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소망에 불과했다. 노래로 매달 100만원이나마 벌고 싶다는 목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기반찬을 먹고 싶다는 바람. 그걸 위해 달빛요정은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도 마다않고, 심지어 소중한 기타를 팔기까지 하며 세상과 맞선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욕망은 파멸을 불러와
여기에 좋은 증거가 있어
날 박제해도 좋아
교훈이 될거야
이래선 안 된다는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치킨런]
나는 무겁고 안 예쁘니까
뭘해도 마찬가지
하루 하루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아 고맙지만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도토리]


  결국 달빛요정은 냉혹한 세상 앞에서 다시 한 번 좌절하고 만다. 단지 용기와 노력만으로 극복해내기에는 그를 가로막고 있는 벽은 여전히 높았다. 그는 결국 비정한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거야'라고 노래하던 달빛요정은, 끝내 씁쓸히 읊조린다. 자신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가지려 하지 마
다 정해져 있어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냐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스무 살의 나에게]


  세상에 대한 개인의 투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달빛요정의 3집은 신해철의 음악 세계와 흡사한 면모가 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신해철은 매우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지니고 있었고, 데뷔 때부터 성공가도를 달려온 가수였으며, 이후로도 성공을 거듭하면서 음악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한손에 움켜쥐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적어도 젊은 시절에는) 외모 또한 수려했던 유명한 인물이었다. 반면 달빛요정 이진원은 매우 번뜩이는 재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걸 풀어내는 음악적 역량은 평범했고, 명성 또한 언더그라운드의 좁은 세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도였으며, 그 자신의 말마따나 키 작고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신해철이 바라보던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신해철의 좌절이 그 뒤에 이어지는 극복을 암시하는 일시적인 장애물이라면, 달빛요정의 그것은 좀 더 근본적이고 영구적이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무언가에 가깝다. 


  결국 달빛요정은 세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현실로부터 회피한다.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렵더군
그러나 나는 그 여자가 너무 예뻐서
뉴스를 보는 걸
암만 봐도 너무 예뻐
그녀 때문에
이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워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내가 뉴스를 보는 이유]


  뉴스는 세상과 개인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다. 그러나 달빛요정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뉴스 아나운서가 너무 예쁘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뉴스를 보고 있노라고 토로한다. 그는 이미 세상에게 배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 때문에 이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노랫말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끝내 달빛요정은 체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요정은 간다]를 통해 그는 스스로가 실패한 가수임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인정한다. 대중으로부터 잊혀질 것이라고, 지워질 것이라고 자조하는 쓸쓸한 노래는 아마도 그의 진심일 것이다. 


내가 세상을 비웃었던 것 만큼
나는 더 초라해질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비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요정은 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노래는 결국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결 담담하고 차분해진 말투로 그는 말한다. 그래도 노래할 것이라고. 언젠가는 모든 게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지치고 힘들어도 버텨낼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 모든 좌절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달빛요정은, 이 앨범의 마지막 곡에서 마침내 다시 한 번 희망의 불씨를 조심스럽게 피워 올린다. 언젠가는 찾아올 찬란한 미래를 위해. 


좋은 날이 오겠지
내게도 언젠가는
그대와 함께라면

나의 인생이 가장
찬란히 빛나는 그 날에
나와 함께 해주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사나이]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은 점은, 달빛요정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만 깊숙히 파고들던 2집과는 달리 3집에서는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확장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달빛요정은 3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앨범 수십만 장을 팔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가수도 아니었고, 앨범을 낼 때마다 언론매체에서 다루어 줄 정도로 인기가 높지도 않았다. 달빛요정이 세상과의 악전고투 끝에 쟁취한 그의 자리는 너무나 협소한 나머지 두 발을 함께 붙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루어낸 성과는 절대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 달빛요정은 결국 세상 속에서 자신이 발디디고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지 않았던가. 그 어떤 협잡이나 계책도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그것만으로도 달빛요정이라는 가수에게 경의를 표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확보해 낸 자신의 자리에 오래 서 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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