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Mar 11. 2024

아야카는 히로코 선배를 사랑하고 있다 - 저돌적인 백합

백합만화 읽기 02

[아야카는 히로코 선배를 사랑하고 있다 / Sal Jiang / AK 커뮤니케이션즈 / 전 3권(완결) / 권당 3000원(전자책)]


"'여자들 사이의 사랑'을 응원하는 사람의 의견은, 난 딱히 관심 없거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간에 '젊은' 직장인인 아야카. 아름답고, 거침없고, 감정에 충실하기에 사랑에도 저돌맹진한다. 상대인 히로코는 같은 회사의 선배고, 열세 살이나 연상이며, 같은 여성이지만, 아야카에게 그런 것쯤은 전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히로코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것인지 아닌지, 오직 그것 뿐.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성별 따위는 상관없다는 후배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이성애자를 연기해 온 선배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러브코메디에 가깝고 그런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서 꽤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아야카의 초지일관에 있다. 히로코는 '레즈(동성애자 여성)'과 '헤녀(이성애자 여성)'를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헤녀인 아야카가 레즈인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아야카 자신은 스스로를 성적 지향의 틀로 구속하지 않는다. 직장의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도, '연상'과 '연하'라는 간극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게 사람이 우연히 여자였을 뿐이라는 아야카는, 자신의 감정을 우직하게 일직선으로 밀어붙여 끝내 관철해 낸다. 




사회에는 언제나 다수majority와 소수minority가 존재한다. 대체로 다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반대로 소수는 특이하거나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이는 비단 성적 지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크게는 국가와 인종에서부터 작게는 취미나 MBTI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란 끊임없이 다수와 소수를 구분지은 후 다수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소수를 공격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소수자들은 대체로 약자이며, 그들에 대한 관용과 이해는 강자의 미덕인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강약 관계를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야카는 동성을 사랑하면서도 섹슈얼 마이너리티 따위에는 일절 관심 없다고 단언한다. 동성애를 응원하겠다면서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여봐란 듯 드러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커밍아웃이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용어조차 알지 못한 채 단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하는 아야카는 타인의 이해 따위를 원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어쩌면 소수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작품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히로코가 '헤녀'였다면, 이건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성적 취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꽤나 무서운 이야기가 수 있다. 아야카가 히로코에게 공개 고백하는 장면은 따지고 보면 극도로 폭력적인 아웃팅이다.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여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지 않은가 싶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몹시 불편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굵은 선을 즐겨 쓰고 먹칠을 아끼지 않으며 톤을 진하게 붙이는 그림체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좋게 말하자면 개성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아마추어 같다. 하지만 몰입을 해칠 정도까지는 아니며 취향에 따라서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덧붙여 작가의 특이한 이름과 개성적인 그림체 때문에 중국 만화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Sal Jiang은 '사루쨩'이라고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