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튀르키예 여행 (넷째날)
야간버스를 타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데니즐리에 도착했다. 시간은 새벽 여섯 시였고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열두어 명이 버스에서 내려 졸음이 덜 가신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가 나타나 호탕하게 외쳤다. "파묵칼레. 파묵칼레. 팔로미!"
마치 홀린 듯이 우르르 따라가다 문득 여기저기서 읽었던 사기 수법들이 생겨났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내가 아는 것보다 두 배의 요금을 불렀다. 돌무쉬(마을버스)를 타는 플랫폼도 내가 아는 곳과는 달랐다. 마침 옆에서 가격이 비싼 게 아니냐고 묻는 한국인 아저씨가 있길래 슬쩍 귀띔을 해 주었다. 그런데 왠걸, 그 튀르키예 아저씨가 한국말도 할 줄 알았던가 보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좋지 않더니만, 자기가 부른 차가 나타나자 나더러 다른 데서 버스를 타라고 손가락질하며 불퉁거리는 게 아닌가. 알 게 뭐냐 싶어서 내가 아는 대로 찾아가 돌무쉬를 탔다. 그리고 파묵칼레에 아주 잘 도착했다. 사실 속았더라도 기껏해야 몇천 원 차이밖에 나지 않았겠지만 돈이 아니라 기분 문제지.
파묵칼레에 물이 많지 않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는데, 계절이 좋아서 그랬는지 물이 가득 차서 넘실거렸다. 맨발에 와 닿는 감촉은 마치 지압 신발을 신은 것 같았다.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조금씩 쌓여온 탄산칼슘의 더께가 감탄스러워, 나는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맨발로 석회질 언덕을 올랐다.
그렇게 정상까지 오르자 그곳에 펼쳐진 것은 옛 로마 제국의 도시 히에로폴리스의 폐허였다. 나 같은 역덕후에게는 파묵칼레보다도 오히려 더욱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거의 이천 년 전에 돌과 바위로 건설한 도시의 흔적이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살던 사람은 모두 없어지고 건물도 무너져내렸지만, 돌로 포장된 도로와 주춧돌의 흔적에서 과거의 영광을 그려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극장은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한때 이 도시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웅변했다. 아. 너무나 좋았다. 너무나 좋았던 나머지 거의 세 시간을 걷고 나서야 다리가 아파 죽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오후에는 숙소에 들어박혀서 쉬고 또 쉬었다. 뜬금없이 에어쇼 연습이 벌어지는 바람에 귀청이 뜯겨나갈 것만 같았지만, 너무나 맛있었던 저녁식사 덕분에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말았다. 친절한 튀르키예 식당 사장님의 아내가 한국분이었다는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 한국인을 만나 반갑다며 주방에서 뛰어나오시길래, 맛있는 식사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힌 후 숙소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다섯 시 이십 분에 숙소에서 나가야 하니까. 하필이면 비행기 시각이 이런 식이라니 원. 그래도 야간버스보다야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