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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ul 29. 2022

[피자 진심 4]  피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생기는 일

피자 덕후도 잊을 수 없는 피자



피자가 좋아 피자를 먹다 보니, 피자로 인생을 배웁니다.
피자 덕후의 초짜 신입시절 이야기



갓 회사에 입사한 따끈한 신입사원이 되었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신입들처럼 허둥대던 시절이었다.


높으신 국장님과는 자꾸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했다. 내 눈엔 아직 얼굴이 익지 않았는지, 또 봐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꾸벅꾸벅 인사를 했고. “야 너 아까 인사했잖아!” 핀잔을 듣고 뜨끔했다.


신출내기 후배가 왔으니 웃으면서 그동안 회사에 쌓여있던 밀린 일들을 시키는 대리님도 있었다. 자료창고로 나를 데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인 신문 더미. “저거 다 스크랩하고 정리해” 입사 첫날부터 신문 더미와 씨름했다. 먼지 풀풀 나는 신문을 들추며 낑낑댔다.


이사님은 무섭고도 다정하신 분이셨다. 냉정해 보이는 표정 너머로 처음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였다. 만두전골을 시켜놓고,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별로 말씀도 없으셨다. 침묵이 이어지자 불편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사님 자리에 놓인 그릇에 만둣국을 떠드리려 엉거주춤하고 있는 나. 그런데 갑자기 이사님은 손사래를 치시며 국자를 낚아채셨다. “어허, 내가 떠줘야지” 하며 소복이 내 그릇에 만두를 담아주셨다. 그렇게 내게 온 잘 익은 만두와 따끈한 국물. 얼어있던 신입사원의 마음이 호로록 녹았다.


“그래. 뭐 좋아하지?” 의례히 묻는 식사자리 사담에 나는 너무나도 해맑게 “피자요” 해버렸다. 좋아하는 게 영화일 수도, 취미일 수도 있었는데, 나의 대답에 그만 이사님은 빵 터지셨다.




  만둣국을 떠주시던 이사님은 사실 아주 냉철한 분이셨다. 성격은 불같고, 업무는 철두철미한 분이셨다. 높은 직급 간부들에게 서류를 집어던지며 호통을 치기도 하셨다. 게다가 일도 중요하지만 예의도 중요한 분이셨다.


 한 번은 이사님이 어떤 일로 크게 화가 나셨는지 콧바람 식식 거리며 회사에 들어오셨다. 이사님 방문을 쾅하고 닫고 들어가시더니, 갑자기 ‘쨍그랑!’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사님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유리컵을 벽에 던져버린 소리였다.


  직원 누군가의 실수로 회사 일이 잘못되었고, 이사님은 큰 경고의 소리를 낸 거였다. 회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너무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져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무도 이사님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 대리님이 나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네가 이사님 방에 들어가서 저 유리컵 치우라고’




쭈뼛거리며 이사님 방에 들어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손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서 어색하게 서 있는 나. 심각하게 화가 난 표정으로 숨을 고르던 이사님. 서로 눈이 마주쳐버렸다. 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어색한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했고, 이사님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잘못한 직원이 들어올 줄 아셨을까? 신입 여직원이 빗자루를 들고 뒹구는 유리조각을 치울 때 이사님은 조용히 말했다.

“놀랐지. 미안하다. 손 조심하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려면 조율할 것도 많고, 선택할 때마다 고민할 것도 많았을 것이다. 구조조정 발표를 하거나, 회사 수익을 위해 선봉에 서기도 해야 할 것이다. 사장님 앞에서 스트레스받는 말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잡기 위해 본보기로 화를 내야 할 때도 있고, 그것이 퍼포먼스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에겐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분이셨다. 나는 회사 리더의 자리가 어떤 무게 일지 모르던 때였다. 


그 해 연말, 전 직원이 중국으로 워크숍을 갔다.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며 인원 체크를 하던 중이었다.  직원들은 버스에 다 탔는데, 출발 시간이 되어도 이사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이사님이 사라진 거였다!




‘이사님은 어디 가셨지?’ 초조하게 시간이 흐르고, 버스 안에서 모두 이사님을 기다렸다. 드디어 저 멀리 이사님이 뛰어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고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난 이사님의 손에 든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건 네모난 피자박스였다. 이사님은 어느 중국 피자가게에 가서 피자 한 판을 사 가지고 오시는 중이었다.


이사님은 숨을 고르며 나에게 오셔서 피자 박스를 내미셨다


“자, 피자. 해외에 왔으면 그 나라의 피자를 먹어보는 것도 경험이지”

얼떨떨하게 이사님을 바라보던 나. 그때 알았다. 좋아하는 걸 물어봐주었을 때보다, 그걸 기억해 주었을 때 더 감동이라는 걸.

사진출처 pixabay

“고대 그리스어로 ‘카리스’가 ‘축복’이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카리스마타’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치유해주는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에, 카리스마는 ‘사람을 이끄는 능력’으로 의미가 발전했다.

리더는 아랫사람이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아랫사람은 말하고 윗사람은 토닥여준다’는 관계일 때 진정한 리더십으로 전환된다"

 - <조승연의 비즈니스 인문학> 중 -




리더의 자리에 서면 챙겨야 할 것이 많다. 회사의 크고 작은 것들을 챙기는 와중에 신입직원이 피자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챙겨주는 모습에서 리더의 배려심을 느꼈다. 내게 이익이 되도록 해 주고, 나는 기꺼이 따르게 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나는 피자로 ‘리더의 따뜻한 카리스마’를 배웠다.

생각해 보면 그때 이사님 나이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다. 역시 리더의 그릇은 나이 순이 아니었다. 이제 나도 회사에 신입이 들어오면 “뭐 좋아하니?"라고 묻는다. 그걸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후배의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피자가 들려준 더 많은 이야기, 즐겨보세요


https://brunch.co.kr/@folsy/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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