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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un 23. 2024

사십춘기에서 러너로

직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다가 도망쳐 달렸다, 달려서 뭐하게?


사십춘기에서 러너로

부모님 말씀, 선생님 가르침, 직장의 지시에 순종하며 살아왔던 사람, 네 접니다.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며, 상황 파악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얻어진 것,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었지요. 직장인들 행동에 나타난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직장인 행동 속에 숨은 심리들>

상대방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쓱 팔짱을 낀다?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일 때가 많았어요. 심장을 보호하는 것, 상대방의 공격에 심장을 방어하기 위해, 두 팔로 방패를 삼는 것 같았지요 상대방이 대화할 때 팔짱을 끼는지 한번 잘 보세요


상대방이 대화를 할 때 허리에 손을 얹는다? 이것은 마치 목도리도마뱀이 목의 갈퀴를 크게 만들어 상대방을 위협하는 것 같은 것이지요 덩치를 부풀려 보여서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은 것, 대화에 주도권을 가지고 싶고 상대방을 압박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었어요


상대방이 대화를 할 때 시선이 갑자기 위로 향한다? 대화 도중 당황해서 빨리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아주 잠깐 나타나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당황했는지 아닌지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었어요


상대방이 대화를 할 때 코나 귀, 턱이나 이마를 만진다? 이것은 너의 의견이 곤란하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은 거짓을 말할 때 나타나는 행동들이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잠깐 나타나는 행동들을 관찰해 보세요


상대방이 대화를 할 때 눈을 꾹 감는다? 이것은 너의 의견이 듣기 싫으니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었어요. 아 됐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겠다는 뜻이었지요. 상대방이 대화 도중 눈을 언제 감는지 판단해 보세요


상대방이 대화를 할 때 문 쪽을 바라본다? 더 이상 대화를 그만하고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표현이었어요. 하기 싫은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회의실 문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지요


상대방이 대화하다 탁자에 팔꿈치를 괴며 몸을 앞으로 숙인다? 너의 의견에 관심이 있고 더 들어보고 싶다는 표현이었어요. 반대로 의자에 뒤로 몸을 젖히거나 팔걸이 쪽으로 기울여 앉으면? 긴장을 풀고 들을 테니 너의 의견을 한번 이야기해보라는 의미였어요


대화 중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건? 거리를 두고 싶다, 불편하다, 내 마음을 보여주지 않겠다, 들키고 싶지 않다,라는 의미였어요. 말하며 손을 비비거나 다리를 떤다? 이건 긴장하고 있다 너무 쉬운 사인이지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시선과 표정을 읽었지요. 하지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속에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동안 점점 지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었어요. 나를 자기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사람들, 그렇지 않으면 비난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면 괴로워하는 자신도 발견하게 되었지요.


도망치고 싶어 그만하고 싶어! 속으로 소리쳤어요. 사춘기도 그냥 지나갔는데 사십춘기가 되어 반항하고 싶어 졌어요. 횡단보도에 서면 이 차가 나에게 와서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출근길에 차를 타고 나설 때마다 로켓에 몸을 실어 우주로 띄워 보내는 기분이으니까요.




과하게 남에게 가 있는 안테나를 나에게 돌리는 방법으로 저는 달리기를 선택했습니다. 아무와 말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되고 그저 달립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호흡과 생각과 몸 상태를 살펴가면서 달리는 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달리는 동안 생각을 청소합니다. 그 사람의 태도는 옳은지 그런지,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묻고 답합니다. 내가 언제 기분이 좋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조금 더 많이 해보자고 다짐합니다.


달리기 말고는 잡생각을 없애는 거지요 달리기가 너무 힘들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땅을 박차고 나가는 내 발끝을 바라보거나, 내가 가야 할 길 3미터 앞을 멍하게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그럼 나를 괴롭히던 불안한 생각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달린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끝까지 달리려면 미끼가 필요합니다. ‘달리기 끝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놓아두는 것’입니다. 봄에는 딸기였고,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입니다. 유치하지요? 내가 이 코스만 완주를 하면 빨리 가서 샤워를 마치고 맛있는 딸기를 먹어야지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달려가서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소파에 앉아야지 생각하며 완주합니다.


달리기 후 나를 안아주는 향이 있습니다. 달리기 한 후에는 샤워를 마치고 나에게 향수를 뿌려줍니다. 출근길에 뿌리는 향이 아니에요. 샤워 후 나만 맡을 향,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달리기가 알려준 것들, 사십춘기가 되어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나를 예의 있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까지 과하게 신경 쓰고 배려해주려 했던 나와 함께 달렸습니다. 남의 행동과 시선에 너무 민감하고, 남의 의도를 읽으려고 애를 쓰고 최대한 맞춰주려다 보니 정작 나에 대한 태도와 행동은 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 그러지 말자고 달리면서 생각합니다.



대화 도중 누군가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팔짱 낀 사람 쪽으로 아주 조금 몸을 더 기울입니다. 그리고 말은 부드럽지만 주장을 계속 이어갑니다.

대화 도중 누군가 눈을 감거나 시선을 피한다? 그럼 살짝 타노스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주위를 환기시키고 눈을 뜨게 만들어 시선을 다시 가져옵니다. 남의 의견을 파악하고 조율하면서도, 세상의 공격에 지지 않고 나만의 방법을 하나 둘 찾아갑니다.



사십춘기에 도망쳐서 달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걸 나에게 먼저 해주라. 행복은 그곳에서 찾아온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를 알아줄 때, 도망치지 않고 꿋꿋하게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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