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자는 마음만 굴뚝! 사실 달리기 싫은 마음 굴뚝!
사실 처음부터 달리기를 하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어요. 내게 ‘달리기는 도망치기’였죠.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쳐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게 겨우 겨우 사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조금 더 빨리 걷게 되고, 빨리 걸으면 땀이 나고, 땀을 씻다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든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어느 날 내 앞을 스쳐가던 사람이 ‘빨리 걷기 같은 달리기’를 하는 걸 봤어요. ‘어?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때마침 건강관리 앱에서 '가볍게 달려보세요'라는 알림과 함께 '1분 뛰고 5분 걷기 코스'를 소개해 주었어요 ‘한번 해볼까?’ 그렇게 얼떨결에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생전 달리지 않던 나인데, 처음부터 달리기가 잘 될 리가 없었죠! 달리기 습관이 잡히지 않은 나는 계속 달리기를 미루고 싶은 마음뿐, 매번 달리기 실패 계단에서 뒹굴었지요. 시도하고 , 실패하고, 실망하고, 또 시도하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발견한 ‘달리기 실패 계단 극복법’을 소개할게요
나의 달리기 실패 계단 극복법 8가지
첫째, 마음속에 커다란 ‘달리기 카운트다운 버튼’이 있다고 상상합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10초 전, 긴장된 마음으로 카운트 다운을 셉니다. 10,9,8,7,6,5,4,3.2,1. 그리고 달리기 버튼을 콱! 눌리 버리는 겁니다. 그럼 머릿속에 ‘위용위용’ 실행 사이렌이 울리고요
둘째, ‘달리기 전용 양말’을 확 신어버립니다. 달리기 할 땐 양말이 푹신하고 좋아야 해요 양말을 신는다는 건 일종의 ‘의식’ 같은 겁니다. 달리기용 질 좋은 양말을 삽니다. 양말이 발을 감싸면, 이 발로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건강 관리 앱 기록’을 열어봅니다. 한 달 동안 달리기를 했던 기록들이 건강관리 앱에 남아 있지요. 언제 어떻게 얼마나 달리기를 했는지 봅니다. 나는 이 기록들을 유지하며 ‘나는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줍니다.
넷째, ‘달릴 시간’을 정해놓습니다. ‘오늘 달려야지’가 아니라 ‘오늘 퇴근 후 8시부터 9시까지 달려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미루지 않고, 7시 50분부터는 마음속 ‘달리기 카운트다운 ’ 버튼을 만지작 거리고 있거든요. 시간을 미리 정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다섯째, 달리기 코스 중간중간 장소마다 ‘하이파이브 스팟’을 둡니다. ‘코너 돌면 보이는 광안대교’ ~‘수변공원 체육공원’ ~ ‘유명한 쌀빵집’ ~ ‘좋아하는 피자가게’ ~ ’널찍한 만남의 광장‘ ~’화려한 마린시티 야경‘ ~’ 수영강 너머 센텀시티‘들을 지나칠 때 ’ 어이! 나 왔어!‘ 하며 마음속으로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여섯째, 오늘 달리기로 한 목표 골인지점이 다가오면 ‘전력질주 골인’을 합니다. ‘다 와간다, 끝이 보인다’라는 기분은 어쩐지 희망이 생기거든요 그때 다리에 힘을 주어 와다다다다 달려서 골인을 하면 ‘나 오늘도 해냈다’ 기분이 듭니다. 잘 해낸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요 씩 웃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달리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카운트 다운 발사’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전력질주’로 끝을 내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 두피부터 발끝까지 살아나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자려고 누우면 침대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에요 침대는 아주 따뜻하고 이불은 가볍고 나는 충전을 합니다. 그렇게 풀방전과 풀충전을 하고 다시 나는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럼 주어진 하루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기분이에요.
달리기에 대해 글을 써도 되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이제 고작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내가 뭐라고 달리기를 말할 수 있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진득하게 수십 년 을 달려오거나, 신기록쯤 보유해야 달리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거 아닐까? 잠깐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주먹도 쥐어 봅니다.
나는 오히려 달리기를 얼마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달리기 기록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오히려 달리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달리기 재미에 싹을 틔울 수 있다면, 달리기에 허들을 낮출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작은 달리기부터 시작한다면 먼 달리기도 할 수 있을 거라고요, 나 같은 저질체력도 어쩌다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요, 열심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달려보니까 꽤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런꽝에서 런린이’로 커가는 과정, 워치가 꺼져서 기록이 중간에 사라져도 그냥 뛰던 바보. 러닝템 사놓고 괜히 기분 날아갈 것 같은 과정. 처음 200m 달리기가 10km 달리기로 이어지기까지 코 벌렁거리며 성취하는 경험. 그런 것들이 모여 오늘 다시 나는 길 위를 뜁니다.
너무 먼 미래의 결과 같은 건 집어치우고, 그냥 오늘 뛸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뛸 수 있는 에너지와 정신이 있는 게 다행입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면서 얻게 되는 생각들을 기록해 놓기로 했습니다.
마왕 신해철이 해주는 말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철학과 깊이에 대해 이야기해 줘요.
돈? 좋죠. 상 받는 거? 좋죠.
한 2주 3주 가더라고요
그런데 음악을 만들던 그 순간들
과정들은 짜증 나죠.
하지만 그 기분은 평생 가죠.
결과보다 과정이 행복해야 해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진짜예요.
나는 훌륭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녹음된 육성만 들을 수 있지만 오랜 울림을 주는 신해철의 말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길 위를 달려갑니다.
프롤로그
-도망친 달리기가 살리는 달리기로
1부
-술꾼에서 러너로
-발모광에서 러너로
-하비에서 러너로
-중2병맘에서 러너로
-사십춘기에서 러너로
2부
-달리기 실패 계단
-뇌를 속이는 달리기
-달리기는 역시 템빨
-달친들의 뼈있는 멘트
에필로그
지긋지긋하다면 길 위로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