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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ul 14. 2024

달리기는 역시 템빨

달리기도 장비빨일까? 더 잘 달리기 위한 아이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휘청휘청 살아가는 사십춘기 20년 차 직장인 워킹맘은 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답답한 기분에서 벗어나 어디든 뛰쳐나가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를, 아니 도망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뭐 하나 제대로 된 달리기 아이템이 없었지요. 그냥 욱 하는 마음에 달려 나갔습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그냥 길 위를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던 낡은 운동화를 신고, 낡은 운동복을 입고,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요. 더 잘 달리기 위한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달리기도 장비빨일까요? 장비가 좋으면 잘 달릴까요? 달리기 템들이 나의 체력과 체온을 유지해 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된 후 하나 둘 달리기 용품들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리기 아이템은

“체력 유지, 체온 유지, 마음 유지” 필수템


러닝화 ; 모든 달리기의 기초

시중에 얼마나 많은 러닝화가 있는지요. 뭘 선택해야 하는 건지 몰라 한참 망설였지요. 기준을 세워야 했어요 많은 고수 러너들이 추천해 준 아디다스 솔라글라이드 식스라는 것을 샀습니다.‘초보 러너를 위한 가성비 운동화’라나요. 너무 많은 고민을 하는 것보다 빨리 내 발에 맞는 걸 사서 더 즐겁게 뛰자고 생각했습니다. 


오! 뭔가 접지력부터 차원이 다릅니다 쿠션감이 장난이 아니에요 걸음을 디딜 때 탄력이 있어서 꼭 발뒤꿈치에 스프링을 달고 뛰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발을 꽉 잡아주면서 통통 튀는 기분으로 신나게 달릴 수 있었어요.


러닝의류 ; 체온유지에 필수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집에서 입던 운동복 그대로 입고 몇 달을 뛰었습니다. 결국 땀에 흠뻑 접어 집에 돌아오곤 했지요 옷이 피부에 달라붙고요 땀 젖은 옷은 체온을 급격하게 내려 집에 돌아올 때 덜덜 떨기도 했습니다. 언제 달리기를 그만할지도 모르니 아이템을 사는 것도 미룬 채 그냥 달렸지요 미련하게도요


하지만 러닝전용으로 나온 땀 배출이 잘되는 옷은 필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에 닿는 러닝 전용 속옷부터 겉옷까지 스포츠 용품점에 널려있습니다. 러너를 위해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나며 심지어 자외선까지도 차단해 주는 멋진 옷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특히 겉옷보다 속옷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중요했어요. 더우면 땀 배출, 추우면 체온유지는 속옷에서 시작되니까요. 달리기를 하더라도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옷을 사 입고 달리니, 더울지 추울지 상관없이 달리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러닝벨트 ; 손과 마음에 자유를

처음에 러닝벨트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 핸드폰은 넣은 작은 가방을 들고 갔다가 가방을 손에 꼭 쥐고 뛰게 되었죠. 어찌나 불편한지요. 힘껏 달린 만큼 손아귀가 아파오는 심정. 주머니에 넣고 달리니 휴대폰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달리기 싫어지기도 했지요


인터넷에 ‘달리기 휴대폰’이라고 검색했습니다. 어? 러닝벨트가 나왔습니다. 역시 궁하면 통합니다. 러닝벨트를 허리춤에 차고 휴대폰을 넣으니 비로소 자유롭게 달리기를 할 수 있었어요. 벨트를 차면 왠지 더 달리기를 전문으로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고, 아주 작지만 달리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히트 아이템이었습니다. 


러닝워치 ; 손목 위의 개인 코치

달리기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워치’를 사용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내가 이렇게 걷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걸 숫자로 보여주는 게 아니겠어요? 하루 몇 걸음 걷는지, 얼마나 움직이는지, 심박수부터 이동거리까지 다 체크해 주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워치에 ‘달리기’ 버튼을 누르면 ‘3.2.1 START~!’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 몸은 자동으로 길 위를 뛰기 시작합니다. 손목 위에 개인 코치가 있는 것 같아요 달리기 성과에 대한 실시간 피드백을 주고 얼마나 뛰었는지 체크하며, 목표를 달성하면 칭찬도 해줍니다.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도 주며 동기부여를 해 줍니다. 이제 나는 워치를 찬 나와 워치를 차지 않은 나로 나뉩니다. 


무선 이어폰 ; 같이 달리는 친구

내향적인 나는 달리기 크루들과 달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저 혼자 묵묵히 무선 이어폰을 끼고 달리기를 했습니다. 달리는 동안 좋아하는 구독채널을 자동재생으로 맞춰둡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달리면서 혼자 낄낄 웃기도 합니다.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달리다가 눈물을 쓱 닦기도 합니다. 


혼자 달려도 전혀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무선 이어폰은 내 달리기 친구가 되어줍니다. 무선이어폰을 늘 풀충전을 해놓고 언제든 가장 먼지 챙겨나가는 달리기템이지요


샤워템 ; 달리기 후 필요한 힐링

달리기만 중요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달린 후도 중요한데요. 마지막 달리기 템은 바로 샤워템입니다. 이때 수압이 강한 샤워기와 좋은 수건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간단하면서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달리기를 한 후 흠뻑 젖은 몸을 씻을 때 수압이 빵빵한 샤워기를 사용합니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보입니다. ‘이 피부 안에 내 몸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구나. 두 다리가 있어 나는 어디든 달려갈 수 있구나.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구나 이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더 이상 뛰지 않을 때까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 간다.
빠르건 늦건 쇠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러나 그 지점을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누가 달리라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요? 회사일 집안일 육아일에 이십 년 넘게 치여 살며 답답한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작한 달리기. 주어진 일 이외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길 위를 달리는 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오늘도 러닝 옷과 속옷을 잘 챙겨 입고, 쫀쫀한 운동화를 신으며 끈을 꽉 맵니다. 러닝 벨트를 차고 이어폰도 귀에 꽂습니다. 좋아하는 재생 목록을 켜고 러닝 워치에 달리기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나는 한 발 한 발 세상 속으로 달려갑니다. 





프롤로그

-도망친 달리기가 살리는 달리기로


1부 

-술꾼에서 러너로

-발모광에서 러너로

-하비에서 러너로

-중2병맘에서 러너로

-사십춘기에서 러너로


2부

-달리기 실패 계단

-뇌를 속이는 달리기

-달리기는 역시 템빨

-달친들의 뼈있는 멘트


에필로그

지긋지긋하다면 길 위로 도망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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