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벌 정도는 가지고 있고즐겨 입는 청바지에는 따라다니는 많은 수식어가 있습니다. 통기타, 생맥주, 히피문화, 자유와 젊음의 상징, 청년문화 등등.
청바지의 유래는 1800년대 미국의 금광 러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부들은 찢어지지 않고 공기가 잘 통하며 쉽게 세탁할 수 있는 옷이 필요했는데 독일에서 온 한 젊은 이민자가 텐트와 마차 덮개에 사용할 캔버스를 팔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습니다. 스트라우스(Strauss)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광부들의 요청에 따라 전통적인 캔버스로 최초의 청바지를 만든 후 조금 더 부드러운 질감을 위해 데님으로 바꿨습니다. 오늘날 알려진 청바지는 1873 년 스트라우스와 재단사 인 제이콥 데이비스 (Jacob Davis)가 리벳을 사용하여 청바지를 튼튼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로 공동 특허로 받았을 때가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초창기 광고(출처: levistrauss)
시대를 거치면서청바지는 자유의 상징이자 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규칙에 따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입을 수 있으며 앞으로 향하여 가는 인생의 어떤 어려움도 헤치고 나가려는 강한힘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청바지는 표현의 자유와 순응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하며 누구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있든청바지를 입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청바지는 반항심, 개성, 자기표현과 쉽게 연관시킬 수 있어 학생들은 대학에서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이런 청바지는 시위 및 모든 사회 활동에서 비공식 유니폼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들도 옷을 통해 성적 해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의 청바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심에 서는 스타일이 되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80년대 민주화에 대한 열기로 시위가 많던 시절 이를 저지하던 전투경찰의 백골부대도 청바지에 청자켓을 유니폼으로 입고 다녔습니다.
다양한 청바지들 (출처: coolmaterial)
저와 비슷한 세대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청바지 문화와 함께하며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는 물론이고 나이를 먹어서도 누구보다 청바지를 좋아했고 즐겨 입었으며 색깔과 스타일이 다른 청바지를 7벌쯤 가지고 있었습니다. 늦둥이인 작은아이 덕분에 저보다 8~10살 정도 젊은 부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청바지를 자주 입었고 때로는 젊어지는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이의 친구들가족과 함께 놀러 간 공원에서 그중 친하게 지내는 젊은 아빠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형! 청바지는 이제 그만 입으세요"
"왜? 잘 안 어울리니?"
"그게 아니고 50대에 청바지가 뭐예요. 애들도 아니고."
"무슨 말이냐? 50대는 청바지 입으면 안 되냐?"
"형도 나이에 맞게 아저씨들이 입는 주름 잡힌 바지나면바지를 입으세요. 그런 게 훨씬 나아 보여요"
말문이 막혀 아무 말 못 하고 곰곰이 생각했지만 무슨 답변을 해야 할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이 말만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 한번 사준 적이라도 있냐?'
그렇게 좋아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즐겨 입던 청바지를 5년쯤 전부터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이상하게 잘 안 입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때문일까요? 그러면서 전에는 가끔 입던 여러 가지 색들의 치노(Chino)와 카키 (Khaki) 면바지를 자주 입고 또 새로 사 입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입는 바지를 직접 사지 않습니다. 대부분 즐겨 입는 브랜드 바지의 허리와 길이 치수를 와이프가 알고 있기 때문에 쇼핑하다 괜찮은 스타일의 남자 바지를 보면 사진을 찍어 제게 보내고 색이 맞으면 그냥 선택합니다. 그러다 보니 핑크색, 버건디 (Burgundy)등 색상은 물론이고 물방울무늬등 유행하는 폭이 좁고 타이트한 바지들도 잘 입습니다.
다양한 색상의 치노팬츠 (출처:eBay)
하루는 이렇게 입고 함께 외출하는 저를 보며 와이프가 이야기하며 웃습니다.
'그렇게 입고 다니니 당신 정말 늙은 제비(?) 같아 보이네'
내게 청바지를 그만 입으라던 작은 아이의 친구 아빠도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 이건 뭐 청바지보다 더 난감하네.'
모두가 어렵게 살았던 예전의 어린 시절 옷을 입는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그냥 관습에 따라 있는 대로 걸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오로지 검은색 (여름엔 파란색)의 교복을 입고각 개인의 개성보다는 통일감과 소속감을 중요시했던 문화에 길들여졌던 저의 세대는 심지어 대학에 와서도 ROTC 복장과거의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저 청바지를 교복 삼아 여름에는 위에 티셔츠를, 겨울에는 우중충하고 두꺼운 점퍼를 입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복장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스스로 옷을 고르고 색상을 선택해서 입었던 경험이 없는 우리 세대는 그저 부모님이 사주시는 옷만 입다가 대학에 와서야 조금씩 이런저런 옷을 스스로 사고 입어보는 첫 단계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중, 고등학생 때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사내놈이 주는 대로 입을 것이지 옷타령 한다' 라고 꾸짖으시던 부모님과 대학 때 한껏 잘 차려입고 강의실에 나타나면 '남자가 그냥 털털하게 입고 공부하러 다니지 학교에 패션 쇼하려고 오냐'라며 한마디 하던 복학생 선배들의 지적을 받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그러나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청바지에서 벗어나지만 또다시 칼주름 잡힌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또 다른 유니폼 아닌 유니폼을 입게됩니다.
한국에서 개인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항상 정장차림이었고 계절에 따라 색깔별로 정장을 여러 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결혼식과 장례식, 직장 면접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정장을 입을 일이 없어서 이민 온 후 몇 년 뒤 검은색과 회색 정장 한 벌만 남겨놓고 모두 도네이션을 했습니다. 그리고 캐주얼하게 입기 시작하면서직장과 일상생활에서 복장의 구분이 없어지고 좀 더 다양한 색과 스타일의 옷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20대 청춘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아니면 긴 세월을 함께한 애증 때문인지 이곳에서도 청바지만은 정말오랫동안 즐겨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절을 떠나보내는 의미에서 청바지 한벌만 예전의 추억을 위해 남겨두고 모두 도네이션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