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느끼는 차별과 인종차별
누군가 '캐나다에도 인종차별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인종차별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큰아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저녁식사 도중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습니다.
"너의 학교 학생들 중에 중국이나 한국아이들은 몇 퍼센트나 되니?"
식사를 하던 큰아이는 동작을 멈추고 제 눈을 맞추고 쳐다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빠가 지금 물어보신 내용은 너무 인종차별적인 질문이에요."
별 의미 없이 한 질문인데 너무 정색을 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혀 아무 말 못하고 거의 30분 간을 그 문제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강한 어조의 설명으로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시달렸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게 그렇게 인종 차별적인 질문이었나?'
두 번째
몇 년 전 추수감사절 연휴 중 와이프, 작은 아이와 함께 단풍으로 유명한 알곤퀸 (Algonquin) 공원을 돌아보고 늦은 오후 돌아오던 길에 커피와 간단한 요기를 하기 위해 작은 타운에 위치한 맥도널드에 잠깐 멈추게 되었습니다. 매장 안에는 그 지역 사람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으로 만원이고 몇 개의 주문라인에는 긴 줄이 있었습니다.(키오스크가 설치되기 전입니다)
줄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마침내 차례가 되어 주문하려는 순간 중년의 백인 캐셔가 갑자기 아무런 말없이 주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업무교대 시간이거나 갑자기 화장실에 갈 일이 생긴 건가 하고 기다렸지만 떠나버린 캐셔나 새로운 캐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고의로 저를 피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제 뒤를 돌아보니 인도계로 보이는 가족과 중국인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 바로 매장 책임자에게 가서 정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항의하자 매니저가 직접 캐셔와 이야기하겠다며 주문라인으로 이동했습니다. 제 뒤에 서있던 인도계 가족의 엄마도 기다리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더 강력하게 항의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매장 책임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원래 자리에 있었던 백인 캐셔는 다른 라인으로 옮겨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인종 차별적 행동이었습니다.
같은 대기줄에 서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상의한 뒤 매장 매니저에게 매장 번호, 주소 그리고 문제의 캐셔 이름을 확인하고 각자 소비자 불만실에 공식적인 편지나 메일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문제를 이야기하니 큰 아이는 거의 펄쩍 뛰다시피 화를 내며 함께 강력하게 항의하는 내용의 우편과 이메일과 작성해서 보냈고 한 달쯤 지나 맥도널드 본사로부터 조사 내용확인과 사과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이곳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는 Junior Kindergarten (정규 유치원을 가기 일 년 전에 다니는 과정)부터 시작되는 캐나다의 공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유치원부터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자기의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지켜본 느낌은 아이들의 눈에는 피부색이나 성별은 보이지 않고 똑같은 친구들로 본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피부색과 성별에 무관하던 관계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해체 모여를 하게 됩니다. 즉 성별로 자연스럽게 나뉘면서 같은 성별에서도 주류와 비주류인 소수민족으로 나누어집니다.
어릴 때는 많았던 백인친구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중국과 인도 그리고 히스패닉계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 외에도 부모들이 선택하는 학교외 수업에서 차이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과외수업을 하는 부모와 친구들끼리 다시 헤쳐 모이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속 백인 아이들 그룹에 속하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는 아시아계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백인 친구들은 몇 명 남지 않고 아시아계나 백인이더라도 동유럽계의 마이너리티 쪽의 친구들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네 번째
토론토 다운타운의 오래된 백인 선호 주거지역에 임대하며 집에서 정신과 상담치료를 하던 히스패닉계 치료사는 어느 날 집 앞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량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욕설과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반달리즘 (Vandalism)이라 불리는 이러한 행위는 불법으로써 범죄로 간주됩니다.
범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조사결과 여름철 거의 주말마다 친지와 친구들을 초대해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음악을 틀고 파티를 벌인 것이 주위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렀고 결국 누군가가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웃들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못한 행동과 히스패닉계 특유의 춤, 음악과 사람들을 좋아하는 문화를 이해해주지 못한 이웃사람들, 서로의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사례에서 보듯이 캐나다의 학교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금하고 인종적인 차별이나 구분을 하지 않는 교육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피부색은 모두 같고 성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 대에 접어들면서 소수 민족,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 부모들은 학력을 향상시키는 사교육에 치중하는 반면 백인 부모들은 학습능력, 스포츠, 댄스등 예체능 쪽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이런 차이점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그 외에 가족의 전통문화, 생활과 가정환경등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유사한 조건의 그룹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와 네 번째의 사례가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안 좋은 경우인데 밴쿠버나 토론토 같이 이민자의 구성비율이 큰 도시는 덜 심하지만 도시 외곽이나 시골의 작은 타운 같은 곳은 이런 종류의 인종차별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교육과 생활 수준이 비교적 낮은 계층의 백인들이나 흑인들에게서 많이 보이고 있는데 요즘은 아시아계를 많이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활수준과 교육을 많이 받은 계층에서도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차별적인 행동보다는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종 차별을 없애는 시작은 그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 항상 명백하고 노골적이며 의도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회 및 의료서비스에서 주택,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 인종에 따른 차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이한 국가나 지역의 이름을 가진 구직자는 일반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보다 인터뷰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적고 전 세계적으로 뷰티 산업은 어두운 피부 톤보다는 밝은 피부톤을 선호합니다.
차별의 역사와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 인두세와 문맹퇴치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글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을 교묘하게 막았고 이러한 차별은 특정 인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소외된 집단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종 차별을 싫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를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면 상황은 계속 커지고 심각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상황이 실제 인종 차별이 아니라 다른 일로 오해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부정은 부끄러운 마음과 어우러져 차별을 보다 미묘한 형태로 정당화시키고 더 크게 만들 뿐입니다.
인종 차별과 차별은 항상 우리 주변에서도 발생하는데 대화 중 농담이나 친구, 가족 또는 동료 사이의 느끼기 어려운 의견이나 질문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친구나 가족이 인종차별적이거나 차별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바로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당혹감을 느끼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말이나 행동이 차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모든 사람은 당연히 존엄성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피부색, 민족, 종교, 성별 또는 성적 취향으로 인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비록 실수와 과정의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인종차별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배움과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면 사진 (출처: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