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회사가 최근에 M&A가 되어조직이 바뀌면서 새 대표가 새롭게 선임되었습니다. 며칠 뒤 부서장들이 새 대표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간단하게 부서소개와 각자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제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 한국, 일본, 미국의 0000 업체에서 일했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 0000 업체를 거쳐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태어난 곳은 한국인가요?"
"네"
"그래요?, 지금 회사와 제 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가 대학 때부터 친한 친구인데 와이프가 한국분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친구에게 한국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제 딸도 교환학생으로 작년부터 한국의 대학에 다니는 중이고 저는 이번 여름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꼭 가볼 만한 곳이 있으면 추천 부탁합니다."
M&A이후 있을 조직 개편에 대한 불안감으로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갑자기 이 훈훈한 분위기는 뭐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더구나 저와 비슷한 세대로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캐네디언의 시각으로 보는 한국이라는 의미에저의 마음 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뿌듯함과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예전의 광고 문구를 다시 되새기는기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캐나다의 초, 중, 고등학교의 3월 봄방학(March Break) 전 2월에는 모든 대학이 'Reading Week'라는 이름으로 한 주간 강의를 쉬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집에 온 작은아이, 와이프와 함께 쇼핑을 하기 위해 토론토의Yorkdale Mall을 방문했습니다. 필요한 것들 사기 위해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제가 꼭 방문하는 매장은 Williams Sonoma와 Crate & Barrel 두 곳입니다. 이곳에서 주로 제 업무에 필요한 기구나 장비를 찾아보고 사는데 가격은 싸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마음에 드는 장비를 보고 싸게 파는 곳이나 중고시장 같은 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장비를 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Williams Sonoma와 Crate Barrel 매장 (출처: blogTo)
그렇게 쇼핑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유명한 명품매장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유럽 출장 때마다 틈이 나면Armani나 Hugo Boss의 현지 매장을 방문해서 구경하다 지름신이 강림하면 정신을 잃고 카드를 긁고 돌아와 뼈저린 후회와 함께 와이프에게 야단을 맞고는 했었는데 그 추억의 Hugo Boss 매장이 새로 오픈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면 대형광고에 배우 이민호의 모습이 떡하니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라는 저에게 작은 아이가 이민호가 왜 거기서 나오는지 이유를 자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좀 더 가다 보니 건물 위의 벽 쪽으로 Chanel의 더 큰 대형 광고화면이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정호연의 모습이 보이고 매장 안쪽에는 블랙핑크의 제니의 모습이 보이며 이곳이 한국 명품관인지 캐나다의 쇼핑몰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하던 젊은 시절, 딴따라 (딴따라로 읽고 예술가라 부릅니다)의 피가 몸에 흐르고 있었던 탓인지 음악, 미술, 디자인과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비슷한 연령대로 당시 해외 패션계를 풍미하던 디자이너 Dior의 John Galiano와 Gucci의Tom Ford (이제는 흘러간 인물들입니다)를 좋아했고 그들에게 감성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별난 차림새나 튀는 행동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상한 놈, 정신 나간 놈'으로 불려지던 그 시절을 되새기며 이런 광경들을 보면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봐도 느끼한 John Galiano (출처: Google)
이민을 왔던 2001년 당시만 해도 캐나다에서는 '헌다이'로 발음되던 한국의 현대 자동차는 일본 혼다의 아류이거나 짝퉁으로 평가되었고 삼성은 일본에 있는 많은 가전제품 회사들 중의 하나로 잘못 알려져 있었습니다. 업체 이름이 앞에 나오며한국이란 이름은 뒤에서 잘 보이지 않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국은말 그대로 게임, 음악, 미술, 영화, 드라마, 음식등 세계 문화의 길잡이로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트렌드 세터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이전부터 꾸준한 노력과 시도가 있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고 초창기에는 주로 마니아들에게 열광을 받던 K-문화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0년 이후부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이런 문화적인 열풍은 단순히 대중적인 광고와 매스컴의 소개와 홍보만으로는 이루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3.1절 전후로 사회적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에 대한 언급은 하고 싶지 않지만 문화의배경 설명을 위해 부득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경제와 함께 문화도 침체기인 일본은 자신들의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1970년 중후반부터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스시와 함께 야끼니꾸 (구워 먹는 소고기)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초밥 재료가 연어와 아보카도, 그리고 롤의 형태(마끼초밥)가 된 것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그곳에서 많이 재배하던 아보카도의 식감과 맛이 밥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시작되었습니다. 밥과 아보카도에 간장을 뿌려 먹던 것에서 초밥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캘리포니아 롤이고, 필라델피아에서 크림치즈와 오이를 넣어 만든 것이 필라델피아 롤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기를 굽기 어려운 주거형태의 문제와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던 식습관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일본의 육식문화는 1965년 한일 기본 조약 후 일본으로 유입된 한국 불고기 전문 식당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며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일본식 형태로 바꾸어 야끼니꾸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한국같이 양념에 재워먹는 방법보다는 구울 때 양념을 뿌리거나 구운 후 간장에 찍어 먹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 방식을 이용해 일본산 간장의 소개와 일본식 고기 조리방식을 알리기 위해 하와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와 무료시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맞추어 일본경제의 성장과 전자제품의 기술력을 자연스럽게 등에 업고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으며 일본의 문화는 비싸고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심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통된 한국 문화는 IT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에 유리한 인터넷 환경에서 'YouTube'와 'Facebook'등 SNS를 통해 단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 생태계 때문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며 젊은 세대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행동이 함께 어울려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 사전 (출처: Amazon)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던 젊은 시절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한국적인 것은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라났지만 요즈음 MZ세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오픈 마인드와 거침없는 사고의 행보를 보이며 다른 큰 차이점을보여줍니다. 그때는 어느 대학 무슨 학과로 선택할지를 놓고 고민하던 시절이고 졸업 후 취업 잘되고 연봉이 높은 그런 직업과 직장으로 갈 수 있는 학과로 가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도 하지 않는 전공을, 그리고 밥벌이도 되지 않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는 성화에 못 이기고 부모님의 뜻대로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와는 다르게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지금의 젊은 세대를 비교하면 그것은 시간이 흐르고단순히 세상이 바뀌어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는 한국 젊은 세대들의 당당하고 무한한 도전정신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전 한국의 일부 정부에서 이런 한류를 세계적으로 진작시키기 위해 재정적, 행정적 지원한다는 이유로 간섭하고 지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구태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과연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며 응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