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데 자존심 버리고 그냥 내복 입으세요

빨간 내복이 무선 청소기로 바뀐 세월의 흐름

by BOSS


낮기온이 16도까지 올라가다 밤에 다시 영하 5도까지 내려가던 롤러코스트 같은 4월의 첫날밤 다시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내복을 포함한 겨울옷들을 모두 세탁해서 정리했는데 다시 꺼내 입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이번 겨울은 어린 시절 이후 몇십 년 동안 입지 않았던 내복을 다시 입기 시작한 첫해입니다. 본격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해 많이 추워진 1월 초 어느 날 기온이 영하 15도로 체감온도는 영하 23도 이하로 떨어진 이른 아침 출근 준비로 바쁜 저를 보며 와이프가 이야기합니다.


"밖에 많이 추운데 내복 입고 출근해"

"나가면 바로 집 앞에 있는 자동차까지 몇 걸음 걷는다고 내복을 입나. 그냥 갈 거야"

"고집 피우지 말고 내 말 듣고 입고 가셔"




어린 시절 아침마다 반복되는 어머니의 성화에 내복을 입고 겨울을 보냈던 때를 제외하면 그 뒤로는 내복을 입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군대생활 기간을 제외하고는 입었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얼죽코 (얼어 죽어도 코트)'란 유행어가 있듯이 저는 '얼어 죽어도 내복은 안 입는다'라는 자세로 그동안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가끔 와이프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내복을 한두 벌 사 오지만 쳐다보지도 않아 옷장에는 그동안 입지 않은 내복과 심지어는 포장도 그대로인 내복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캐나다의 겨울에도 변함없이 내복을 입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잘 지내왔었는데 올해 1월에 걸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주일 간 쉬고 다시 출근하는 날 아침 유난히 으슬으슬 추운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뭐지? 다시 열이 나는 건가?' 체온을 재 보았지만 정상이었습니다. 아마 체중도 빠지고 기력이 좀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했지만 업무 중 계속 떨리는 건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내복은 레깅스와 비슷합니다. (출처: Best Product)


그날은 마침 냉동실에서 샘플링 테스트가 있는 날이어서 옷 위에 방한복을 껴입고 동료와 함께 영하 20도인 냉동실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바로 몸이 덜덜 떨림을 경험했습니다. 제 상태가 좀 이상해 보였는지 동료가 묻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떨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갔다가 나중에 다시 들어올까?"

"아니야, 계속 진행해"


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게 되어있는 냉동실에서 테스트를 할 때에는 안전문제로 항상 두 사람이 한 팀으로 들어가 업무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하루종일 떨렸고 집에 돌아와서도 몸이 풀리지가 않아 계속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습니다. 보다 못한 와이프가 잘 때 내복을 입고 자라고 하며 그동안 안 입어서 포장을 뜯지도 않은 내복 상자를 제게 보여주며 이야기합니다.


"취향에 맞춰 잘 골라서 입어봐. 얇은데 따뜻한 것이 정말 성능 좋게 잘 만들었어."




색과 모양이 다른 새 내복들을 이것저것 보고 고르면서 옛 생각들이 하나둘씩 기억 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중고등학교 어린 시절 무척이나 추웠던 겨울에 내복은 반드시 챙겨 입어야 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겨울철 교실의 난방시설이라는 것은 조개탄이라 불리던 석탄조각을 때우는 난로가 전부여서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 되면 모두 타버리고 추운 오후 수업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열악한 난방문제로 겨울방학은 12월 크리스마스 전에 시작하여 2월 초에 개학하는 일정으로 무척 길었습니다.


예전 난방용 조개탄은 요즘 바베큐에 사용합니다 (출처: Google)


그나마 고등학교 때부터는 사춘기에 겉멋이 들어 검은색 교복도 몸에 쫙 맞춰 입고 다니는데 스타일 망치게 내복이라뇨. 그때부터는 내복과 담을 쌓고 얼어 죽어도 내복은 입지 않게 됩니다. 친구들도 내복 입은 반 친구들을 보며 아직도 애라며 엄마 젖 더 먹고 오라며 놀리고 우습게 보는 일도 많아 일부러 추워도 내복은 입지 않고 등교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까지 이어지던 내복 안 입기는 군대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다시 입게 됩니다. 춘천에서 군대생활을 하며 겨울철 전방으로 작전지원을 나가면 도저히 추워서 견디지 못하고 내복에 스웨터에 야전점퍼 안에 솜으로 누빈 조끼까지 입으며 추위를 막아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 야전작전을 나가면 밤에 큰 천막 안 가운데 설치한 임시 난로 주위에 야전침대를 펴고 침낭 안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입대해서 처음 맞은 겨울 야전 훈련에서 천막 안에서 취침하게 되었는데 너무 추워 군복을 벗지 않고 보온 조끼까지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옆의 미군 동료들은 모두 속옷만 입은 상태로 벗은 군복을 침낭 안에 깔아놓고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추위에 저렇게 벗고 들어가면 잠이 오나' 이렇게 생각했지만 아침이 되자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채로 자고 일어난 저는 침낭에서 나오자 난로도 꺼진 천막 안 찬 공기에 바로 추위를 느끼고 떨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침낭 바닥에 깔고 자서 체온으로 따뜻해진 군복을 입으면서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법이 캠핑등 야영생활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상식인지는 몰라도 제게는 무척 놀라운 방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군복무 시절에 잠깐 입었던 내복은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게서 다시 멀어졌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한겨울의 추위도 못 느낄 만큼 뜨거웠고 결혼 후에는 아이와 가족을 위해 사느라 추위를 느낄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퇴라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지내온 추위가 한꺼번에 몸과 마음으로 몰려오나 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내복하면 떠오르는 것은 효의 상징으로 불렸던 ‘빨간 내복’이 아닐까 합니다. 붉은색이 액을 쫓는다고 해서 1960~70년대에는 자녀가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것이 오랜 전통처럼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빨간 내복이 많았던 진짜 이유는 부족한 염색 기술 탓에 내복의 원료인 나일론에 빨간 염료가 가장 잘 물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풍습으로 저도 한국에서 직장생활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부모님께 빨간색 내복을 선물로 드렸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캐나다에도 크리스마스에 입는 빨간 내복이 있습니다 (출처: Google)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저도 그런 선물을 받을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은 큰아이가 제게 묻습니다.


"아빠,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선물해 드릴게요"

"글쎄,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는데"

"그래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꼭 이야기해 주세요"


아마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받은 소중하고 큰돈이었기에 먼저 아빠 엄마에게 선물을 꼭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필요한 것이 없어서 그랬는데 옆에 있던 와이프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사용하는 진공청소기가 오래되고 무거워서 좀 불편하니 요즘 나오는 가벼운 무선 진공청소기를 선물로 해달라고 합시다"

"다00 무선청소기? 비싸던데..."


이야기를 전해주고 큰 아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물 패키지를 받았고 그 안에는 새 무선 진공청소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고마웠지만 비싼 물건이어서 너무 부담을 준 것이 아닌지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애들같이 조립하면서 좋아하고 만족해하는 제 모습에 큰아이도 흡족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그렇게 오래전 부모님께 선물했던 빨간 내복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무선 진공청소기로 바뀌었지만 선물에 담겨 있는 자식의 부모를 향한 마음은 변치 않고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면 사진출처: Best Pro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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