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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Jan 26. 2023

겨울의 봄


봄날 같은 날씨에 눈이 소복이 내렸다.

흐려있는 날이 많기에 기온이 마이너스로 내려가면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나의 일상에서 좋은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들 픽업 후, 코트 차림이어도 집에 돌아와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하루동안 쌓인 집안의 쓰레기를 밖으로 내 다 버리고, 공원을 산책한다. 내 일상이 시작된다.


눈이 쌓였다 녹은 공원을 걷는다.

비탈진 곳에는 눈썰매 자국이 남아있고, 눈 위로는 많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바닥에 쌓인 눈들을 굴린다. 주먹만 한 눈이 점차로 부풀어지더니, 키가 커지고 있다. 머리, 가슴, 다리 세 덩이의 눈을 굴려 사람을 만든다. 눈과 코, 입을 만들고, 손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내 모자를 벗어, 씌워준다. 그와 나는 그렇게 한참을 함께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도 나도 어떤 기억을 간직한 채, 서서히 소멸해 갈 것이다.


사는 곳 옆에 있는 크지 않은 공원이지만, 나는 이곳을 참  좋아한다. 아침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개와 산책하고, 많은 사람이 공원을 가로질러 그들의 길을 바쁘게 오간다.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난 후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연인들은 키스한다. 어떤 이들은 달리기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공원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모두를 담아내서,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추우면서도 상쾌한 공기 덕분에, 봄의 숨결이 여리게 느껴진다. 이맘때면 늘 느끼는 거지만, 새들은 봄을 일찍 준비한다. 덩치 큰 까마귀들이 많이 보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몸집이 작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량한 새의 소리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다. 내가 봄이 왔다고 느끼면, 새들은 벌써 새끼 새들에게 비행을 가르치고 있는 걸 본 적이 많다. 봄에만 들리는 새들의 소리가 있다. 새벽 시각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그 시각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금지된 곳, 소리만 엿들을 수 있어도 좋다. 잠을 깨우지도, 깊게 빠져들게 만들지도 않는 아주 적당한 소리가, 매년 봄만큼이나 기대된다.


모든 것들은 혼재되어 있다.

겨울과 봄, 슬픔과 기쁨, 고통과 성장, 나쁜 마음과 착한 마음, 부정과 긍정, 빛과 어둠.

출발선에서 바로 시작되는 것들은 없다. 그것들은 늘 섞여 있다. 잠시 멈춰서, 선택한다. 어찌할  수 없을 땐, 버텨야만 한다. 그때가 지나가면 박차를 가해, 바라는 대로 내달려 나가면 된다.


바람이 참 시원하다.

겨울이 길 것 같았고, 나무들은 멈춰있는 것 같았는데, 술렁이는 게 느껴진다. 땅이 꿈틀꿈틀 댄다.

봄이 샘물처럼 퐁퐁 튀어 오를 때를 놓치기 싫어, 조금씩 내다보게 된다. 마음이 들썩거려도, 애써 긋하게 기다려 본다.


사실 나는, 겨울이어도 좋고, 봄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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