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는 현재의 물음표 앞에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대안학교를 말하면, 반응은 제각각이다.
“귀족 학교 아니야?”, “문제아들이 가는 곳이라던데?”, “학력 인정도 안 된다며?”
그 말들이 전부 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안학교는 늘 시선 밖의 학교, 제도 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대안학교란 도대체 어떤 학교인가요?”
아마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학교일 것이다.
나 또한 다양한 결의 사람들을 만났다.
교육의 문제점에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싶은 교사,
아이들을 진심으로 만나며 성장에 동반하고 싶은 청소년지도사,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돌보고 성장하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회복지사,
자전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어른,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를 찾는 사람들,
자녀만은 입시에 찌들지 않고 자유롭길 바라는 학원 원장,
공동육아로 시작된 교육을 청소년기까지 이어가려는 맞벌이 부부,
성적은 낮지만 재능이 넘치는 자녀의 개성을 지켜주고 싶은 부모,
그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겪고 정든 교실을 떠나야 했던 아이,
또, 교실 한가운데 앉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어느 청소년.
정답 경쟁을 거부하고,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아이까지.
학교에 참여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이, 대안학교에 있었다.
그래서 대안학교는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질문의 모양에 가깝다.
처음 대안학교라는 이름이 등장하던 무렵,
나는 학부모들과 함께하는 방과후 대안학교인 '창조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땐 ‘대안’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권위적인 학교, 다양성이 사라진 교실.
우리는 그런 교육에 작게 저항하며
‘따로 또 같이 학교’, ‘민들레 캠프’, ‘또문 캠프’ 같은 실험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 유성의 한 숙소에서
“이런 교육적 실험을 대안교육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시작됐다.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낯선 것을 이름 붙이는 일.
그것은 단지 명명이 아니라 존재를 스스로 규정하는 행위였다.
얼마 후 교육부 토론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양희규 선생님은 간디학교의 시작을 이야기하셨고,
영등포여상의 교장 선생님은 더 이상 ‘주산과 부기’가 필요 없는 시대를 말하며,
상업고의 변화를 강하게 역설하셨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특성화중고등학교법’,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대안학교’라는 이름.
법은 결국, 늦게 따라온 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안학교는
1990년대 후반,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되었다.
2000년대엔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생겨났고,
어느새 ‘대안’이라는 단어는 너무 흔해졌다.
입시를 피하려다 더 과열된 경쟁을 낳기도 했고,
학교에서 ‘부적응’이라 불리던 학생들이
‘대안학교’로 분류되며 편의적으로 이름 붙여지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0년.
이제는 어떤 대안학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을 얻었고,
어떤 곳은 그때의 이상만을 고이 간직한 채 머물러 있다.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의 대안학교는 여전히 ‘대안’인가?”
학생 수는 줄고,
AI는 교육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만나고, 지식을 전하고, 삶을 안내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답 중심 교육을 비판해 왔던 우리가
어쩌면 다른 방식의 정답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더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자란다.
이때, 우리는 너무 ‘구체적인 경험’만을 강조하며
너무 ‘직접적인 관계’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대안학교는 과거의 정답이 아니라,
현재의 물음표를 살아야 한다.
시대는 전진하고, 세대는 바뀐다.
아이들은 이미 다른 언어와 감각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다.
대안학교가 다시 ‘대안’이 되려면,
다시 스스로를 실험대에 올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선 길을 먼저 걷는 사람들.
그 몇 사람의 질문이 모여,
학교를 다시 만들고, 교육을 다시 설계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ps) 대안학교에 대한 첫번째 논의는 용인수지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참석한 첫번째 모임이 대전이라 개인적 경험을 살려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글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