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
‘아 ㅠㅠ 너무 귀여워’
사진 한 장과 한 줄짜리 멘트.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다. 별 것 없는 게시글은 빠르게 재게시 되며 인터넷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몇 초 만에 몇 백개의 좋아요가 찍힌다. 하트를 누르는 손길이 몇 천까지 쌓이는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유명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의 SNS가 아닌 일개 팬인 내 SNS 계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SNS 중 하나인 X(구 트위터)에서 아이돌 팬 계정을 운영 중이다. 내 최애 팬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소위 ‘네임드’계정의 주인이기도 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딥'하게 좋아하는 ‘찐’들은 주로 X에 모여 있다. X에는 뮤지컬, 드라마, 스포츠 선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교류하고 일상을 나눈다.
그 곳에서 활동하는 팬들은 크게 소비자와 생산자로 나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올린 사진을 재게시하며 앓기도 하고(너무 좋아서 끙끙 앓을 정도라는 뜻이다.) 영상을 쇼츠처럼 짧게 잘라 클립으로 만들어 한 순간의 귀여움에 대해 140자를 가득 채워 떠들기도 한다. X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팬들은 이렇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소비하는 소비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생산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자신이 직접 그린 팬아트를 올리기도 하고, 아이돌과 관련된 물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콘서트나 팬사인회 등 아이돌과 대면 할 수 있는 현장에 가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하기도 한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소속사에서 맡긴 것도 아닌데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동력을 써가며 그렇게 한다. 그렇게 팬이 올린 사진과 영상을 통해 새로운 팬들이 유입 된다. 일명 '찍사' 홈마' '대포' 등으로 일컬어 지는(아이돌 팬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 올리는 사람들을 말한다.)사람들은 적극적인 생산자이다. X는 최애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여 이런 방식으로 굴러간다.
나는 그중에서도 주로 팬사인회, 콘서트 등을 가서 찍은 영상과 사진을 업로드하는 축에 속한다. 사람들은 내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올려주는 영상을 보기 위해 내 계정을 구독한다. 나는 어쩌다 케이팝 세상에 발을 깊숙하게 들인 헤비 한 생산자가 되었을까.
이것의 시작을 이야기하려면 시간을 과거로 돌려야 한다.
2017년, 봄이 시작되기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이듬해 2018년 겨울의 시작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 2019년 겨울의 끝에는 코로나가 시작 됐다. 3년에 걸쳐 내 일상은 격렬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소리 없이 무너졌다. 쓰나미 같은 슬픔이 일상을 쓸어갔고 바뀐 상황에 적응할 새도 없이 익숙한 것들은 매 계절을 따라 사라졌다. 시간의 끝에 남겨진 나는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폐허와 같았다. 죽음은 나에게 인생의 허무함을 가르쳐 주었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연쇄는 나에게 사람의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고, 불안정하며, 하찮은 일인지 깨닫게 했다. 내가 믿고 확신했던 세계가 흔들렸고 가치관은 다섯바퀴 정도 돌았다.
죽음 앞에 당연한 수순처럼 인생무상, 허무주의가 찾아왔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던 중 갑작스런 병으로 돌아가신 아빠의 삶. 회고하면 할수록 인생의 계획이나 목표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일지 무용하게만 여겨졌다.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기에 삶을 이어 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가진 돈을 다 쓰고 서른 몇 살에 죽기로 결정했다. 경제 활동을 멈췄고 물보다 돈과 시간을 더 많이 허비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훨씬 전 중증 우울증으로 치료 중이었던 나는, 혼자 남겨진 뒤 우울이 몸집을 키워가는 것을 방치했다. 스스로를 돌볼 의지를 잃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져다 표본으로 삼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표본으로 살았다.
약을 타러 병원에 가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번 같은 말을 당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약을 먹고 잠드세요. 규칙적으로 식사 챙겨 드세요, 운동을 하세요. 바깥에 나가 햇볕을 쬐세요. 당연한 일상들을 당부 받아야만 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은 입원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일까.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파괴하진 못했지만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었다. 내 손에 남겨진 것들을 미련없이 허비했다. 일주일 넘게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잤다. 배가 고프면 아무거나 허기가 가실 정도로만 먹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요량으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며 전방위적으로 나를 방치했다. 뇌를 마비시키고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를 찾아다녔다. 그중 효과적인 수단은 단연 인터넷이었다. 인터넷 속에서 정신없이 헤매다 보면 하루가 사라져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 시간을 죽일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유튜브의 신은 그런 나를 가엾게 여겨 알고리즘의 축복을 내렸다. 한 아이돌 그룹의 자체 콘텐츠 영상 앞으로 데려가 주었는데 별 기대 없이 재생한 영상은 의의로 재밌었다.'재밌다' 라는 감각을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그들이 그간 쌓아놓은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업로드되는 콘텐츠 역시 기다리게 되었다. 알고리즘은 이어 나를 그들의 무대로도 이끌었다. 가벼운 관심과 더불어 한 멤버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찾아온 봄 기운에 눈이 천천히 녹아 내리듯, 깨닫지 못한 사이에 한 사람의 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스텝으로 이어졌다. 유튜브 바깥에서 그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팬들이 모이는 X에서 그 그룹을 위한 계정을 만들고 몇몇 계정과 친구가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최애의 생일이 되었다. X에서 사귄 친구가 함께 생카(생일카페) 투어를 가자고 제안을 해왔다. 생일카페로 일컬어지는 생카는 팬문화 중 하나로 주인공 없이 팬들끼리 여는 일종의 생일 파티이다. 한 명의 팬이 주최자가 되어 카페를 섭외해 컨셉을 잡고 최애와 관련된 물품으로 카페를 꾸민다. 음료를 사면 주최자가 만든 최애와 관련된 굿즈들을 받아 갈 수 있다.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주간이 되면 이런 생카가 합정과 홍대입구 사이에 몇 십 군데씩 열린다. 이렇게 열린 생카 중에 마음에 드는 몇 곳을 골라 가는 것을 생카투어라 한다.
X에서 사귄 친구 두 명과 함께 이 생카투어를 돌기로 했다. 말은 친구였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닉네임으로 무슨 님 누구 님 하고 부르는 사이로 본명이나 나이, 직업 등 현실의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어진 사이였다. 인터넷으로 사귄 친구를 만나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어색하진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알록달록한 파티풍선으로 꾸며진 카페 앞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는 인터넷 세상에서 보다 더 나에게 친절했다. 함께 카페 몇 군데를 방문하고 최애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떠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신기한 경험이었고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덕분에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인터넷 친구들과 오프라인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나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도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회에서는 절대 만날 일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정확한 직업도 나이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친구가 됐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벗어난 어린 친구들이 내 인터넷 아이디를 이름처럼 불렀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귄 친구들과는 벌써 6년 넘게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회사도 집도 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달라져서 같은 팬 활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만난다. 유명한 맛집에 함께 가고, 휴가를 맞춰 해외여행을 떠난다.
영원히 방안에서만 머물다 종말을 맞이 할 것 같았던 내 세계는 최애 덕분에 예상치 못한 곳으로 확장되었다. 죽기로 결심했던 서른 몇의 나이를 넘기고도 여전히 살아있다. 어른들은(물론 나도 어른이지만) 아이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걔네 좋아하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걔네가 밥을 먹여주냐? 그런다고 너를 아니?” 추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이돌이 밥? 먹여준다. 나? 알아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은,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내 최애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 줬다. 내가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고, 내가 가리라 여긴 적 없었던 곳을 가게 해 주었다. 약물도 상담도 친구도 구원하지 못했던 나를, 무너진 세계 속 우울 안에 매몰되어 있던 나를, 끄집어낸 것은 최애였다.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때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런 바보 같은 일이 나를 구하기도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