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자주 뭔가의 끝을 기다린다. 가령 엄마에게서 반찬을 얻어오면 음식이 상하기 전에 하나하나 신경 써서 챙겨 먹고 어서 반찬통을 비워서 엄마에게 가져다줘야지 생각한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 안에 있는 과일과 채소, 달걀과 밑반찬과 절임류들을 제때 먹어야지 생각하며 냉장고가 텅 비게 될 언젠가를 상상한다. 화장품을 바를 때마다 제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이걸 다 쓰면 서랍 안에 미리 사둔 제품을 써야지 생각한다. 용량이 큰 제품을 사용할 때면 뚜껑을 열 때마다 대체 이걸 언제 다 쓰나 싶어 지겨워지기도 한다. 세탁 세제나 샴푸, 치약, 화장지 따위의 소모품을 사용하면서 종종 그 물건을 다 쓰고 버리는 상상을 한다. 다 쓰고 새 물건으로 교체하고 나면 또 어느새 이걸 다 쓰는 언젠가를 떠올린다. 물건을 써서 없애는 일을 어떤 숙제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해야 할 일, 처리해야 할 일, 끝내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어서 모든 시험이 끝나고 채점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바라곤 했었다.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 끝나기를 바라는데, 따지고 보면 그 끝들은 완전한 끝이 아니고, 결국 나는 무한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상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