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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ef Oct 27. 2024

선글라스 맨

 가스불을 끄고 손부채 몇 번 까부르자 뽀괄뽀괄 요란하던 된장뚝배기가 앙당거리던 주둥이 오므리듯 잦아들었다. 호박이며 두부, 청양고추 등속이 어우러진 달작하고 칼칼한 된장찌개냄새가 퍼져나갔다.

 “빨리 주세요.” 

 김이 재촉하자 주방장은 집게로 뚝배기를 들어 받침대에 놓고 휙 밀었다. 손등 위로 뜨거운 국물이 몇 방울 튀었지만 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잽싸게 랩을 잘라 뚝배기에 씌우고 가위로 구멍을 뽕뽕 뚫어 김을 뺐다. 

 밖으로 나온 김은 오토바이에 올라탄 뒤 헬멧과 선글라스를 썼다. 선글라스 밖 빛  바랜 세상은 ‘석양의 한탕’을 연상시켰다. 이때만큼은 가죽쟈켓을 입고 담배를 꼬나물고 개폼을 잡아도 될 것 같았다. 그것이 비록 유행지난 먼지 나는 로망이라 할지라도 김에게는 사뭇 감격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김은 선글라스를 쓰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업 되어 힘주어 스크롤을 당기곤 했다.

 김은 서른이 훌쩍 넘도록 선글라스는커녕 안경도 써보지 않았다. 아직까지 시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선글라스는 쳐다볼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눈에 군날개가 생겨 병원에 갔을 때, 군날개를 제거한 후 의사는 자외선 때문에 재발 할 수 있으니 배달할 때만큼은 선글라스를 쓰라고 조언했다. 또 다시 좁은 결막에 까슬까슬하고 자극적인 섬유조직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김은 의사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봄볕이 짱짱해져서 그런지 마트 입구에 선글라스 가판대가 나와 있었고, 50% 할인 행사라는 플랜카드가 붙어 있었다. 가게로 돌아온 김은 거울을 가리고 서서 블랙 렌즈의 스퀘어 선글라스를 썼다. 어딘가 어색하긴 했지만 그렇게 볼썽 사납지도 않았다. 다만 어머,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라던 마트 여직원의 감탄은 그러니까, 어깨 같아요. 라는 탄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웬 선글라스예요? 병원에서 그거 쓰래요?”

 서빙 하는 미스 박이 똥그란 눈으로 물었다. 김은 얼른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는 “어, 그러라는데….” 얼버무리곤 선글라스를 안경집에 집어넣었다. 김보다 다섯 살이나 적고 꼬치꼬치 묻고 따박따박 따지기 좋아하는 미스 박이 다시 물었다.

 “배달 다니면서 쓰려고요? 아주 이 동네를 주름 잡겠네요. 그렇잖아도 사장님 인상 쎈데, 이젠 무서워서 옆에 갈 수나 있겠어요?”

 미스 박이 동박새처럼 뾰족한 입으로 종알거리자 김은 저도 모르게 변명했다.  

 “눈병이 나을 때까지만 쓸 거야. 병원에서 꼭 그러라고 했으니까 따라야지.” 

 김은 선글라스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오후 시간이었다. 김은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길게 벋은 시장을 바라보았다. 색조가 바랜 거리가 김이 처음에 발을 디뎠던 그때처럼 보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하다 서울로 올라온 후, 김은 이 중앙시장만 뱅뱅 돌았다. 이모가 처음으로 소개해 준 우산 공장은 중앙시장 바로 뒤에 있었다. 그는 요리직업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고, 일 년 정도 벌면 원하던 학교에 가리라 여겨 우선 우산 공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월급을 받기도 전에 어머니가 아프고, 월급날을 기다린 것처럼 집 한쪽이 무너져 보수해야 했고, 동생의 학비가 필요한 상황이 이어졌다. 게다가 사장은 월급을 주다 말다 했다.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요리학교 등록을 염원하며 둥그렇게 자른 천을 우산살에 이어 붙이는 일을 1년 반이나 했는데, 그만 불이 나서 우산 공장은 문을 닫았고 밀린 월급도 사라져버렸다. 

 우울히 불탄 공장 주변을 배회하던 김은 하는 수 없이 중국 음식점 친구들을 따라 배달 오토바이를 탔다. 배달은 그의 욕망을 불살라주지 못했다. 배달보다는 주방으로 들어가 짬뽕국물 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주방 보조로 일하겠다는 김의 말에 사장은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나 사장은 밀려드는 주문 핑계만 대고 좀처럼 주방 구경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의 짧고 통통한 손을 두드리며 부지런해서 배달원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는 소리만 지껄여댔다. 

 배달은 기술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탈 줄 알면 되고, 번지수나 동호수를 읽을 줄 알면 되고, “식사 왔어요!” 라고 외칠 줄 알면 되는 일이었다. 밥벌이를 넘어 뭔가를 이루겠다면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요리 기술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바로 그의 말이었다.  

 중국집을 나와 어묵 상점 보조로 들어갔다. 직접 생선을 갈아 만드는 집이었는데 중앙시장의 명물이었다. 졸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데다, 특히 뒤끝이 깔끔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김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어떻게든 사장 눈에 들어 특급비밀이라는 비법을 배우고 싶었다. 

 성격이 까칠하고 입이 험한 사장은 기분 내키는 대로 김을 불렀다. 김빵아, 이건 애교였다. 짜식, 짜식은 장난이었다. 킹뽕은 짬뽕을 좋아하는 김을 배려한 별명이었다. 그러다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면 대번에 쌍욕이 날아오고 사장의 짱돌 같은 주먹이 김의 눈앞에서 위아래로 묘기를 부렸다. 더러웠지만 김은 꾹꾹 눌러 참았다. 속으로 X팔놈의 깽사장이라고 욕을 퍼부으며, 손바닥으로 빌고 입으로 용서를 구했다. 하루라도 빨리 비법을 알아낼 것이며, 그런 후에는 깽사장 맞은편에 점포를 열겠다는 의지로 견디었다.  

 깽사장의 콧대는 나날이 치솟아 한계치를 넘어버렸다. 땡전 장사치들이라며 시장상인들을 우습게보고 손님의 요구에는 콧방귀로 응했다. 시장 번영회 회장 선출에서 밀려나자, 시장 상인들을 다 적을 간주했고 씨근씨근 대며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 맞은편 정육점 사장과 대판 붙었다. “백정 놈의 방해로…”라는 한마디가 건너편까지 춤을 추며 달려갔던 것이다. 대형 냉장고에서 짐짝보다 큰 고깃덩이를 갈고리로 찍어내 껍질과 기름과 살과 뼈와 힘줄을 분리하는데 이력이 붙은 정육점 최사장이 득달같이 달려와 깽사장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케엑, 놔, 놔, 놔…” 냅다 목이 쪼인 깽사장은 캑캑거리다 튀김기에서 금방 꺼낸 뜰채를 최사장의 머리통에 엎었다. 뜨거운 어묵찌꺼기와 기름이 최사장의 머리부터 지글지글 구웠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최사장의 마누라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고소부터 했고, 깽사장의 방어수단이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깽사장이 경찰서와 법원을 오락가락 하는 동안 김이 그토록 고대해 마지않던 비법 전수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어묵 집에서 나온 김은 껑충 뛰어버린 나이에다 학교고 뭐고 하루하루 벌어야만 살아남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어머니의 건강도 문제였지만 동생의 말썽도 김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시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진출할 생각도 해봤지만 시도는 못했다. 가방끈은 토끼 꼬리만도 못하고, 재주도 기술도 없고, 숫기도 없었다. 변죽도 없어 입에 발린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김의 입장에선 무법천지 시장 밖에서가 아닌, 순대처럼 길게 구부러진 시장 안에서 효부를 봐야 했다.

 김은 중앙시장에서 제일 큰 두부집에서 콩을 갈아 끓이고 간수를 쳐 몽글몽글한 순부두부터 단단한 만두두부까지 만들다 그만 두고, 족발집 배달을 다니다 그만두고, 칼국수 집에서 밀대로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썰다 그만두고 두 명의 동업자와 시장 한 귀퉁이에 야채 노점을 냈다. 젊은 청년 셋이서 싱싱한 야채를 싸게 파는데다 배달까지 해주니 단골이 늘어났다. 제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품목을 늘여 과일까지 팔았는데 장사는 계속 잘 되었다. 

 박, 권, 김 셋은 입이 찢어져라 밥을 밀어 넣으며 조만간에 독립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나이순대로 사장, 부사장, 전무로 직책을 나누었는데 모두 사장이 되기로 한 것이다. 버젓한 가게를 얻어 과일 야채, 수산물, 정육 등을 각자 맡아서 하면 마트이면서 마트가 아닌 새로운 트랜드의 판매방식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윈윈이라며 실용실안 등록을 해서 분점도 내자는, 제일 연장자인 박의 의견에 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우걱우걱 씹었고, 김은 숟가락을 깃발처럼 치켜들고 환영했다. 

 그렇게 쌍수 들고 환영한 지 딱 한 달 보름 만에 김은 빚더미에 주저앉아 버렸다. 박이 그동안 모은 것은 물론이고 세 사람 명의로 대출 받은 것까지 몽땅 들고 튀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남은 생까지 은행에 저당 잡혀 놓고 튄 박이 찢어발기도록 야속하고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종적은 가족은 물론 경찰도 몰랐다. 울컥, 울컥, 한강 원정의 충동이 일었고, 몇 번 다리에서 몇 시에 뛰어 내릴까,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지만 시장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몸이 굳고 혀가 말려 움직이는 건커녕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은 동굴 같은 방안에서 몸부림을 치다 알고 지내던 형에게 끌려 나가 다시 배달 오토바이를 탔다. 페달을 밟자 낯선 공기가 밀려들었다. 쓰디 쓴 공기에 혀를 적시며, “사 살려면 다 다 달려야겠지.” 라고 말문을 튼 후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남들은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자동차를 사고 대출 끼고 집을 살 때, 김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뛰어 대출금을 갚고 똥 나오는 볼펜으로 빈 통장에 동그라미만 쳐댔다. 그리고 가끔 권과 마주앉아 밥을 먹고, 빠드득 소주병을 깠다. 김은 분기가 탱천할지라도 소주잔에 머리통을 처박고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 전체를 싸잡아 쌍욕은 하지 않았다. 지구 너머에까지 욕 폭탄을 쏘아대는 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와 개발, 소발, X발을 남발하다 잠이 들었다.    

 투잡, 쓰리잡 가리지 않고 2년 4개월을 꼬박 다리 부러지게 달린 뒤에야 연이율 12%의 대출과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끝났다. 끝났어! 감격에 겨웠던 김은 그날 밤 처음으로 대취했다. 인사불성이 되어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함께 소주잔을 꺾었던 치들의 증언에 의하면 탁자에 엎드린 채 숨죽여 울었단다. 좀처럼 울지 않는 김으로선 어리둥절한 말이었지만 그 끔찍한 빚을 다 갚았으니 개벽할 일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김은 또다시 아낌없이 몸을 부려 일했다. 일 년 삼백육십일 동안 시장 이쪽에서 저쪽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쉬지 않고 동분서주 해 목돈이라고 불릴 만한 액수를 모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재산, 즉 낡은 시골집을 처분해서 합치자 가게 보증금은 되었다. 

 김은 시장의 맨 끝에 있는 김밥집의 단골이었다. 그 집 김밥은 유명했다. 밥과 야채가 아니라 모래를 길게 반죽해 만 것처럼 거칠고 빡빡하기 짝이 없었다. 밥은 설고 계란은 빠삭한데 채 썬 생 당근조차 안 씹혔다. 그래도 김은 그 집에만 갔다. 주인이 장사가 안 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며 찬을 푸짐하게 얹어 주고, 때로는 남은 김밥도 거저 주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주인은 가게를 내놓았고, 김은 인수하기로 했다. 들어갔다 하면 일 년 안에 보증금 반 토막 나는 곳이라고 모두 말렸지만, 김은 이골이 난 배달로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부아아아앙~~ 소리도 요란하게 골목을 빠져나간 김은 언덕바지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빼곡해서 거미동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무허가 판자촌 시절을 거쳐 단독주택 밀집 지역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주택지 건너편으로 아파트까지 즐비하게 들어서서 구(區)내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았다. 주변 상인들을 들떴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김은 가랑이에서 쇠방울 소리가 나게 더 달려야 했다. 

 언덕배기 ‘미라클 헤어’ 앞에 도착한 김은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끼었다가 얼른 다시 쓰고 배달통을 꺼냈다. 일곱 평이 될락 말락 한 좁은 미용실이지만 온통 여자들뿐이라서 김은 사뭇 긴장했다. 주택지 미용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여자들에게 젊은 남자는 얼마나 만만한 국물인지, 여자들 중 누군가가 선창하듯 농담을 따면 낯 뜨거운 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건 물론이고, 와작하게 터지는 웃음소리는 그만 도리깨질이었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간 김은 선그라스 안에서 재빨리 여자들을 훑어보았다. 말라깽이 원장은 파마를 말고 있고, 고무줄을 집다 김을 본 조수인 미스 곽은 김을 곁눈으로 흘끔거렸고, 부스스한 머리에 빗질을 하고 있는 꼬치구이집 여자 옆에 새치름하니 낯선 여자가 발을 꼬고 앉아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어디에 놓을까요?”

 김이 배달통을 열자, 물기가 비어져 나온 눈가를 손가락으로 찍어 누르던 여자가 자기 앞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여자는 포개져 있던 다리를 내리고 엉덩이를 끌어 소파 끝으로 당겨 앉았다. 짧은 스커트가 말려 올라가 씻어놓은 무처럼 희디 흰 허벅지가 다 드러났다.  

 “또 다래끼 났대? 아주 눈병을 끼고 사나봐.”

 원장이 김을 힐긋 보며 물었다. 테이블 위에 반찬 종지를 늘어놓으며 김은 얼버무렸다.

 “아, 그러게요. 눈에 자꾸만……”

 군날개를 핑계로 쓰게 된 선글라스는 제 값을 톡톡히 했다. 시장 입구 대박그릇집에 배달을 갔을 때 얼김에 선글라스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대박그릇 사장이 김을 몰라보고 깍듯이 존대를 했던 것이다. 때마침 손님이 여럿 몰려 정신이 없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김은 이것이 바로 선글라스의 위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 김을 알아본 사장이 뒤통수를 갈기려 들었지만 말이다.

 다래끼가 났을 때도 선글라스가 한 몫 했다. 볼썽사납게 불거진 다래끼 때문에 밥맛이 떨어질까 봐 김은 양해를 구하고 선글라스를 쓴 채 배달통을 열었다. 김은 반찬그릇을 꺼내놓으며 앞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넓게 벌어진 콧구멍을 자꾸 쑤셔대고 있는 형제부동산사장의 지저분한 모습도, TV 쇼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던 미스 리의 깊은 가슴골도 주저할 것 없이 봤다. 자신의 벌게진 표정도 충분히 감출 수 있었던 건 물론이고 말이다. 다래끼가 다 나았어도 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매일 눈병이냐는 핀잔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만날 눈병이에요? 선글라스에 재미 붙인 거죠? 그니까 주구장창 쓰지…”

 미스 곽이 또 나불나불거리자 꼬치구이집 여자도 거들었다.

 “선글라스하고 뚝배기는 별로지 뭐.”    

 “아유, 요즘엔 배달도 스따일이라잖아. 난 뭐든 스따일 있게 하는 남자가 좋더라. 그쵸? 싸장니임.”

 새치름한 여자가 후루룩 된장국을 떠먹으며 김을 편들어주었다. 여자의 말에 원장이 입술을 비틀었다.

 “미세스 홍, 김사장 맘에 들어?”

 “아니이, 개성 있는 스따일이라는 거지. 나는 개성 있는 거 좋아보이더라고.”

 새치름한 여자의 말에 원장이 김을 보며 픽, 웃었다. 경멸 섞인 그 웃음에 부응하듯 김은 서둘러 배달통을 챙겨 미장원을 나왔다. 카메라 기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짙은 선글라스는 피사체의 잔상을 오래도록 남겨놓았다. 오토바이를 몰아 가게로 돌아오는 동안 그의 눈앞에는 손이 미끄러지도록 매끈한 여자의 다리가 죽 벋어 있었다.   

 점심시간 배달은 얼추 끝난 것 같아 김은 가게 밖 의자에 앉아 다리쉼을 했다. 저녁 손님들이 몰리기 전, 잠깐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었다. 밀려드는 하품을 손으로 막고 주머니에서 안경닦이를 꺼내 선글라스를 닦았다. 하아, 하아, 김을 내뿜어 구석구석 깨끗이 닦은 후 다시 썼다. 안정적인 시야 안으로 건너편 해장국집 사장의 우그러진 얼굴이 들어왔다. 정사장은 고개를 삐딱하게 튼 채 김을 보더니 곧 뛰어왔다. 

 “이렇게 잘 어울리기도 힘들지. 나하고 잠깐 저기 좀 갔다 오자.”

 정사장은 다짜고짜 김의 팔을 잡아끌었고, 김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다. 김이 개업을 한 뒤 위생 검사원에게 꼬투리를 잡혔을 때 정사장은 그 나부죽한 입으로 검사원을 설득했고, 급전이 필요해 동동댈 때마다 현금서비스라도 받아 빌려주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불나게 뛰는 게 가상해서 그렇다는데, 주변머리도 없고 연고도 마땅찮은 김에게 정사장은 형님이자 등짝이라도 비빌 수 있는 언덕이었다. 재게 발을 놀려 걷던 정사장이 턱짓으로 시끌짝한 대로를 가리켰다. 김은 곧 알아차렸다.   자동차들이 왕왕 달리는 대로의 우측 골목은 정육 부산물 거리였다. 동물 내장 냄새가 개울물처럼 고여 있는 두 번째 건물로 들어가며 정사장은 김에게 입다짐을 했다. 

 “안에 들어가서도 선글라스는 벗지 말어. 알았지? 꼭 쓰고 있어야 해.”

 만약에 벗었다간 무사하지 않을 것 같아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은 정사장의 뒤를 따라 삼층에 있는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싸이키 조명이 꺼진 클럽은 적막했다. 희멀건 실내등이 부스럼처럼 번져 있는 가운데 텅 빈 무대와 테이블과 통로들이 대책 없는 오후처럼 너부러져 있었다. 바닥 위를 떠도는 쿰쿰한 냄새를 따라 두 사람이 주방 쪽으로 가고 갔을 때, 야간의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낮은 조도 때문인지 얼굴이 동굴처럼 깊은 웨이터가 “8시부터 영업합니다.”라며 두 사람을 저지했다. 정사장은 상관하지 마라며 김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누가 뭐라고 하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선글라스를 쓴 채로 삐딱하게 쳐다보다 빨리 가라는 손짓이나 해.”

 다시 한 번 정사장이 입다짐을 했다.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않은 김으로선 흉내조차 어려울 테지만, 선글라스는 벗지 않을 작정이어서 또 고개를 끄덕였다. 정사장은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고 주방으로 갔다. 서너 명의 웨이터가 물건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 중 한 명에게 정사장이 뭐라고 하자 그가 안으로 들어가 키 큰 웨이터를 데리고 나왔다. 그 웨이터의 구겨진 미간이 멀리에서도 다 보였다. 정사장과 그 웨이터는 서로를 변론하는 모양새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키 큰 웨이터가 양 손을 옆으로 펼치며 뭔가 하소연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뭐라고 뭐라고 하던 정사장이 뒤를 보며 김을 가리켰다. 웨이터들이 일제히 돌아보았고 눈빛들이 굳었다. 어쩐지 꺼려지는, 정말 꺼릴 수밖에 없는 어떤 존재를 발견했다는 표정들이었다. 자신에게 이목이 쏠린 김은 얼떨결에 선글라스 다리를 잡았다. 그러다 절대로 벗지 말라던 정사장의 말이 생각났다. 김은 선글라스의 다리를 들었다 제자리에 놓았다. 

 새벽녘에야 일을 마친 웨이터들은 ‘24시간 정씨네 해장국’을 대놓고 먹었다. 단골인 만큼 외상을 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자 외상값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사장이 외상독촉을 할 때마다 녀석들은 “금방 드릴게요. 금방 드릴게요.” 하고는 여섯 달을 버텼다. 장사를 못해서 그런다면 이해라도 하지. 백 이 십여 평 넒은 홀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손님이 많은데도 그랬다. 더군다나 웨이터들 뿐 아니라 부장들도 끼어들어 두 그릇, 세 그릇 먹고는 서로에게 결재를 떠밀어버린 탓에 외상값만 계속 늘어났다. 

 김을 대동하고 쫒아간 정사장은 주문을 담당하던 녀석을 찾아 으름장부터 놓았다.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이거 한 두 달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너희들 때문에 가게 문 닫게 생겼다. 라고 하자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다. 말로는 안 되겠다 싶은 정사장이 뒤를 돌아보곤 말했다. 

 “함께 온 선글라스는 사촌 동생인데, 별명이 미치광이 경찰이야. 한번 걸려들었다 하면 네 거기까지 까뒤집어버리는 놈이야. 지금 사복 근무 중이라서 못 믿겠지? 그럼 가서 말 한번 붙여봐. 쟤 말에 따르면 외상값도 사기죄에 해당한다던데?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불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속인 경우에 해당하지만, 정사장은 그 말까지 덧붙이지는 않았다.) 쟤는 내가 외상값 받으러 온 줄은 몰라. 영업 나온 줄로만 알지. 만난 김에 같이 여기까지는 왔지만, 뭐 너희들 얼굴 알아놔서 나쁠 건 없겠더라고. 여기 소문은 나도 다 듣고 있어. 세금 탈루에 변칙 영업에 폭행에…… 털려고 맘먹으면 끝도 없지 뭐.”

 정사장의 말은 그대로 영업부장에게 전달되었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던 덩치 작은 부장은 먹은 만큼 갹출해서 당장에 갚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제 몫으로 오만원 짜리 두 장을 내던졌다.  

 클럽을 나와 김의 어깨를 두드리던 정사장은 이런 낱낱의 사정을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어두컴컴한데서 선글라스 쓰고 앉아 있으니까 분위기 묘하더라. 네 덕 봤다.”

 분위기 묘하더라. 라는 말이 김의 가슴 복판을 훑고 지나갔다. 물론 정사장이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김을 힐긋 본 뒤 정사장도 훑어보았다. 김에게 겁먹었다 정사장에게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순전히 김의 억측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보장도 없었다.

 “외상값 오래 쌓아두지 마. 쌓일수록 내기 싫은 게 외상값이니까.”

 정사장의 말에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 기간은 정사장보다 훨씬 짧지만 체득은 오래 전에 했다. 신선한 아침 공기도 공짜로 마시고, 밤하늘 총총한 별도 공짜로 신나게 보는데, 그깟 밥한 끼 정도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꽤 되지? 여기 저기 깔린 거 말이야?”

 “그렇지요. 매일 마주보는 시장 사람들이다 보니 외상을 안 줄 수도 없고요….”

 “그러다 너만 거덜 난다. 요즘엔 고의로 외상 하는 작자들도 많아. 어떻게든 세상을 우려먹을 수작인 거지.”

 “그건 아는데, 재촉을 해도 주질 않으니…”

 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외상값 때문에 골이 빠개질 지경이었다. 

 “널 만만하게 봤다는 거지. 덩치는 뒀다 어따 쓸래?”

 “…………”

 “이런 주변머리 하고는. 주먹을 아끼려면 머리라도 써야지. 녀석들의 귓구멍이 타버릴 때까지 조르든지, 주먹이라도 들먹이며 엄포를 놓던지 뭔 수를 써야지. 한 마디 해보고 안 주면 그냥 맨 손으로 돌아 오냐? 먹고 살만한 놈들이 자꾸 외상값 미루는 건 공짜 심보가 놀부보다 더한 놈들이야. 너처럼 맹한 놈들이 밥이고.”

 맹한 놈이란 말에 김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첫인상은 센데, 알고 나면 편한, 아니 만만한 사람이 바로 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추켜올리곤 마음껏 이용해 먹었다. 김은 말없이 앞만 째려보았다. 그래봤자 선글라스 안이었다.        

 “정말 사정이 딱한 사람들도 있지. 김밥 한 줄이 몇 끼 곯은 배를 채워주는 건 뿌듯한 일이지만, 외상값과 자선을 동일시하지 말어. 외상값 못 받아놓고 자선 베푼 셈 치는 건 자기 기만이야.”

 정사장이 콕 찌르자 김은 찍소리도 못했다. 외상값을 날릴 때마다 그렇게 위안을 삼곤 했던 것이다.

 정사장과 헤어진 김은 가게로 가려다 아케이드로 방향을 돌렸다. 아케이드 안은 벌써 저녁이었다. 김은 잡화점 옆, 오렌지 빛 조명이 돋보이는 화장품 할인 매장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다홍빛 루즈가 반짝거리는 미스 홍은 오늘도 공쳤다고 징징대며 밥값 9만 사천 원 중 이 만 오천 원만 내놓고 나머지는 또 미뤘다. ‘대박 그릇 도매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 달 치를 두 말 없이 내놓았다. ‘OK빵집’은 역시나 한번에 OK하는 법이 없었다. 김밥이 너무 딱딱하다느니, 쫄면 양념이 매워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장사를 못했다느니 잔소리를 열 발이나 늘어놓고는 일주일 치만 잘라주었다. 그렇다면 빵만 먹고 살지 왜 밥을 시켜먹느냐는 말이 치밀고 올라왔지만 김은 꿀꺽 삼켰다. 어깃장을 부리고 이기죽거려 때려죽일 만큼 미웠지만 단골이었다.

 인천 수산에서 나와 두 번째 골목으로 꺾어졌을 때, 순대국밥 집에서 나오던 제일정비소에 근무하는 황군들과 마주쳤다. 녀석들은 김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재빨리 골목을 빠져나갔다. 

 근방에서 제일 큰 제일정비소는 사장부터 외상을 선호했다. 당연히 그 밑에서 일하는 녀석들도 쌍수 들고 환영했다. 그래도 녀석들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도조 형식은 아니지만 일을 배운다는 명분이 있어 월급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한 녀석이 정비소를 그만 두면서 밥값을 떼먹고 어딘가로 달아나버렸다. 그것이 동료들 눈에는 횡재한 것처럼 보였는지 남은 녀석들도 외상값을 갚지 않았다. 온통 외상만 그을 수는 없으니까 병아리 눈물만큼 찔끔찔끔 주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녀석들의 꼼수가 떠오르자 열불이 난 김은 좆아가 뒤통수를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충동은 힘이 아니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도 못한 혈기였고, 오백원짜리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또한 녀석들은 셋이나 되었고, 뒷주머니에 스패너를 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은 간혹 몽키나 바이스플라이어 등을 가지고 와 식탁 위에 올려놓고 김밥을 집어먹었다.

 김은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며 가게로 돌아왔다. 주말인데도 저녁 장사가 꽝이었다. 그 대신 진상 떠는 자들은 여느 때보다 많았다. 김밥은 황새다리처럼 가늘고, 라볶이는 짜고, 동태살은 스폰지보다 퍽퍽하고, 우동 면발이 작대기만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김치와 단무지 리필은 끝이 없었고, 초저녁에 떨어진 계란말이 대신 급히 어묵을 볶던 주방장은 집기들을 탕탕 내던졌다. 

 구름이 비를 몰아오고,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가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이 쓸어내 버리는 염원에 빠진 김은, 염원이 이루어지는 우르릉 거리는 소리에 놀라 가게 문을 확 열었다. 안으로 잡아당긴다는 게 그만 밖으로 밀어버린 샷시문이 마침 지나가는 남자를 세게 쳤다. 남자는 소리도 요란하게 쿵, 넘어졌다. 김은 달려 나갔다. 부축하는 김의 손을 남자가 거칠게 뿌리쳤다. 벽을 짚고 일어난 남자가 김의 팔을 낚아채 비틀었다. 새꺄! 라는 고함과 함께 레슬링 선수 같은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김은 그대로 날아가 도로 한가운데로 슬라이딩했고, 얼굴을 아스팔트 바닥에 갈아버렸다.

 김은 핏물과 빗물로 사태 진 얼굴을 들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빼고 김을 구경했다.  좆아 나온 미스 박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난리를 쳤다.

 “어디 안 부러졌어요? 아유, 덩치 값도 못하고 뭐하는 거예요!”

 어어, 으음, 으으으…, 어금니를 물어도 신음이 새어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아유, 조심 좀 하지. 어쩌다 이런 거예요? 이 얼굴 좀 봐. 어떻게 해? 아주 그냥 찰떡가루로 만들어놨네. 빨리 병원에 가요. 빨리요.” 

 타박과 걱정을 쏟아놓으며 미스 박은 김의 겨드랑이에 팔을 밀어 넣어 일으켜 주었다. 입안으로 비리고 짭짭한 물이 흘러들었다. 김은 음료처럼 삼키며 미스 박에게 손목을 잡힌 채 택시를 타고 근처의 응급실로 갔다. 눈두덩에 사방 교차로처럼 바늘땀이 났다. 

 가게로 돌아온 김은 선글라스로 밤탱이 눈을 가렸다. 선글라스는 완벽하게 김의 상처와 체면을 가려줄 뿐 아니라 위신까지 세워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손님들은 야밤의 선글라스맨을 보고 멈칫했고, 김은 여느 때보다 더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눈썹을 긁으며 아픈 시늉을 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김은 매장 안에서도 선글라스를 썼다. 손님들은 아주 조용조용히 밥을 먹고 주뼛거리며 단무지 리필이 되는지 물었고 포장을 부탁했고 정중히 계산을 하고 나갔다. 묘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던 김은 아예 야간용 선글라스를 장만했다.   

 5월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 9시 30분쯤에 제일 정비소에서 김밥 열 줄과 우동 일곱 개를 주문했다. 김밥재료가 떨어졌다는 핑계를 대지 못한 미스 박을 탓할 수는 없었다. 김은 탁 소리가 나게 주문서를 내려놓았다.     

 김의 오토바이가 탈탈거리며 정비소 앞에서 멈추었다. 황군과 송군 등 정비사들이 내장을 다 드러낸 그랜저 앞에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김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김을 본 정비사들은 웃음을 멈추었고, 김이 부피가 꽤 큰 김밥을 꺼내자 (무거워서 그랬겠지만) 송군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고, 우동그릇 또한 (뜨거워서 그랬겠지만) 황군이 두 손으로 받아 옮겼다.

 “야, 밥 왔냐? 빨리 가져와.”

 사장의 걸걸한 목소리 끝에 “자, 스페이스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이구야! 외침도 이어졌다. 그럴 줄 알았지만, 막상 확인하자 욕이 절로 나왔다. 영진인테리어 사장, 춘식품 대리점 점장, 명품만 받는다는 양전당포 양사장, 일흥슈퍼 건물주 등등이 정비소 사무실에 모여 포커를 치다 야식으로 김밥과 우동을 주문한 것인데, 이제 계산서는 바람에 날리듯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배달통을 거칠게 닫은 김은 검지 끝으로 선글라스를 밀어 올렸다.    

 “밥값은 누가 계산해?”

 “글쎄요…, 사장님!”

 황군이 사무실 쪽에 대고 사장을 불렀다.

 “왜 불러? 외상 달아!”

 한 달음에 말한 사장은, 한꺼번에 준다니까 떼먹을까봐 저 지랄이라고 다 들리게 말했다. 

 무참했다. 김의 속에서 주먹만 한 것이 오르락내리락 거렸지만 꺼낼 수도 가라앉힐 수도 없었다. 김은 선글라스 다리를 잡아 올렸다 내려놓았다.    

 “외상값이 한 사람 당 삼십 만원도 넘게 밀렸다는 거 알지?”

 김은 김밥을 우겨넣고 있는 황군들에게 말했다. 

 “밥값으로 고소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우리도 장사를 하려면 수금이 되어야 하잖아. 지금 얼마라도 주었으면 좋겠는데.”

 김이 잇달아 말하자 송군이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이번 달 월급을 못 받아서요. 받으면 드릴게요.”

 “지난달에도 못 받았다고 미루더니 또야?”

 “경기가 안 좋잖아요. 요즘 통 손님이 없어서 사장이 잔뜩 뿔이 났거든요.”

 송군이 머리에 손가락을 세우며 말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죽일 놈들입니다. 배고파도 참고 먹지 말아야 하는데, 제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오군이 흘러나오는 면발을 후룩 들이켜 삼키곤 비장하게 말했다.

 “장난 말고 빨리 돈이나 내놔!”

 “돈이 있어야 드리지요. 교통비가 없어서 집에도 못가고 있어요. 월급만 받으면 봉투째로 드린다니까요.”

 열 번을 재촉해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할게 틀림없었다. 김은 선글라스를 거칠게 잡았다놓았다.  

 “근데 밤에 웬 선글라스예요.”

 한 번에 김밥 두 개를 밀어 넣던 황군이 외상값보다 더 중요한 발견이라도 한 듯 물었다. 모두의 입이 배시시 벌어졌다. 김의 대답에 따라 비웃음이든 뭐든 터질 참이었다. 

 “요즘 장사도 안 되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려고!”

 황군 등은 물론 김 자신도 그 말에 놀랐다. 느닷없는 엄포는 개그보다는 허세에 가까운 것이다.   

 “사장님도 그런 말을 할 줄 알아요? 에이, 어울리게 놀아야죠.”

 송군이 밥알까지 내뿜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에 김의 눈은 비틀려졌고, 화기에 젖은 입이 다시 불을 뿜었다. 

 “나를 맹구로 보는 모양인데, 좋게 말하면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야? 그럼, 대가리라도 깨부숴 줄까! 그래야만 외상값도 갚고 고분고분 해질래!”

 김은 당장에라도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야, 왜 이렇게 시끄러! 조용조용히 밥 먹지 못해!”

 정비소 사장이 고함을 빽 질렀다. 찔끔한 황군이 소곤대듯 말했다.  

 “아이, 김사장님,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하세요. 월급만 받으면 드릴 거예요. 우리도 몇 달이나 밀렸다니까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야, 야, 우동 식는다. 빨리 먹자.”

 황급히 쉭쉭대는 분위기를 가라앉힌 황군은 우동 그릇을 들어 후루룩 국물을 마셨다. 황군 등을 쏘아보던 김은 빈 배달통을 오토바이에 던져 넣었다. 

 이륜 바퀴가 밤바람을 찢어 발겨도 가슴 속의 주먹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수천 개의 주먹이 중구난방 좌충우돌 난리를 쳤다. 김은 스로틀을 힘껏 당겼다. 배기통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치솟은 속도가 아스팔트를 깔아뭉갰다. 김은  대로를 달렸다. 밤은 깊고 차량 행렬은 줄어 있었다. 오토바이 속도에 맞춰 바람이 김의 정면으로 돌진해 왔다. 바람은 김의 가슴 정면을 치고 어깨 뒤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가슴 속의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목동 지나 지역난방공사까지 달리던 김은 오토바이를 되돌렸다.

 오던 길을 따라 바람처럼 달려 내려간 김은 제일 정비소 사무실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영업이 끝난 정비소는 괴괴했다. 사무실 안쪽에서만 사람 소리가 났고, 오토바이가 급정거 하는 것과 동시에 껄껄대던 웃음소리도 뚝 멈췄다. 사무실 문이 휙 열렸다. 얼굴을 내민 정비소사장이 김의 위아래를 훑었다.  

 “뭐야! 오밤중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똥 싸러왔어!”

 “식사는 잘 하셨는……”

 애써 고운 말을 찾는 김의 말을 사장이 가로채 빈정거렸다.

 “식사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이 밤중에 뭘 훔쳐가려고! 외상값 대신?”

 그 말에 김의 뚜껑이 확 열렸다. 김은 정비소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사장님하고 똑같은 줄 알아요! 나도 다 들었어요. 사장님은 정비 대금을 하루만 미뤄도 광폭 스패너 들고 쫒아간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남의 외상값은 개똥으로 압니까! 왜 안줘요! 밥 먹고 똥 쌌으면 똥구멍만 닦지 말고 외상값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뭐? 똥구멍? 이 자식이 정말!”

배불뚝이 정비소사장의 눈에서 스파크가 일었지만, 김은 이미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상태였다.

 “내가 없는 말 했어요? 사람한테 똥구멍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죽은 목숨인데, 산 사람이란 말이 뭐가 고까워서 죽일 듯이 노려봅니까? 됐으니까 외상값 줘요! 속에서 천불이 나서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빨리 내놓으세요! 내가 주먹을 쓸 줄 몰라서 안 쓰는 줄 알아요! 아으으, 진짜 열불이 나서 돌아버리겠네!”

 김이 쇠망치 같은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불을 뿜었다. 정비소 사장이 움찔해 뒤로 물러났다. 몇 년 동안 김을 봐왔지만 이런 기세는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해져 응수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등짝이 송글송글하고 묘한 기분에 휩싸인 김은 자신이 핀이 빠진 수류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입이 제멋대로 놀았다. 생전 사용해 보지도 않은 단어들이 매끄럽게 김의 입술을 통과했다. 김은 선글라스 다리를 잡았다 놓으며 빨리 외상값 내놓으라고 윽박질렀고, 정비소 사장의 뒤의 포커판 멤버들도 한 마디씩 했다.     

 “장판교의 장비 나오신 거여?”

 일흥슈퍼 건물주가 이기죽거렸고 전당포 양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철든 장비는 행패는 안 부렸지 아마?” 

 “행패요? 이게 행팹니까?”

 “밤중에 선글라스 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게 행패지 뭐여!”

 일흥슈퍼 건물주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럼, 경찰 부르세요. 아, 제가 부를게요.”

 김은 휴대폰을 꺼냈고, 큼큼, 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었다.  

 “그렇잖아도 법원에 미수금 소송을 신청하려던 참인데 잘됐네요. 먼저 경찰한테 물어보죠. 외상값 독촉이 행패인지, 잘 나가는 사장님이 배터지게 시켜먹고 돈 안주는 게 행패인지.”

 “뭐, 뭐여!”

 얼굴이 벌게진 정비소 사장 앞으로 김이 휴대폰의 메모앱을 열어 들이밀었다.

 “여기보세요. 사장님이 주문하신 날짜와 시간, 메뉴, 금액 다 나와 있지요? 외상 총액도 여기 있고요. 이건 기록 날짜가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사기 칠 수도 없어요.”

 정비소 사장이 똥 씹은 표정으로 메모를 들여다보다 인상을 팍 구겼다. 주문 날짜 옆에 외상 며칠째 인지까지 써 있었던 것이다. 꼼꼼한 녀석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치밀할 줄은 몰랐다. 맹구인 줄 알았더니 음흉한 너구리였다. 정비소 사장은 에이, 화를 삭이더니 카악, 가래침을 뱉었고, 김은 사장 이하 포커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 112를 꾹꾹 눌렀다. 

 “뭐하는 거여!”

 일흥슈퍼 건물주가 김의 휴대폰을 쳤다.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비소 사장이 후다닥 집어 들었다. 액정이라도 깨졌으면 백배로 물어내라고 악을 쓰고 고소할 놈이었다. 개물렁탱이인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의 대가리를 깨부숴버릴 악랄한 놈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이 났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시원한 밤바람을 따라 세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김은 묘기를 부리듯 도로 위를 유연하게 미끄러지며 오토바이를 운전해 매장으로 돌아갔다. 혼자서 매장을 지키고 있던 미스박이 늦었다고 퉁박을 늘어놓았고 김은 이빨이 드러나게 웃었다. 거기다 콧노까지 덧붙였는지 미스 박이 한 마디 했다.

 “오다가 미스코리아 손이라도 잡은 거예요? 오밤중에 뭔 노래예요?”

 “어? 아냐. 아냐. 밀린 외상값을 받아냈더니 속이 시원해서 그래.  ”

 “아유, 외상값 두 번 받으면 옷 벗고 춤추시겠네요?”

 “흐흐흐흐, 걱정 마. 그런 추태는 안 부릴 테니까. 늦어서 미안해. 빨리 퇴근해.”

 김의 말에 미스박은 꿍얼대면서 가방을 챙겼고, 김은 금전함을 열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다 보니 거의 카드결재였지만, 그래도 아직 아이들은 현금 결재를 했다. 김은 서둘러 마감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이제 막 고삐리에서 벗어났을까, 싶은 새파란 녀석 둘이 또래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 앞에서 똥폼을 잡으며 을러대고 있었다. 몇 미터 앞이 대로인데, 배 째라는 배짱인지 소리까지 지르며 아가씨의 턱 밑으로 주먹을 들이댔다. 앳된 아가씨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아구지 찢기고 싶어?”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녀석의 망치처럼 커다란 주먹이 아가씨의 볼을 쳤다. 

 “아악! 왜 때려요!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아가씨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김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또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면 빠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성질 돋우지 마! 쥑여버릴 수가 있어!”

 검정셔츠가 주먹으로 아가씨의 정수리를 쿵, 쳤고, 비명이 더 커졌다. 김은 잽싸게 선글라스를 쓰고 다가섰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저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김을 흘깃 본 검정셔츠가 찍 내뱉었는데, 녀석의 표정이 성마른 하이에나처럼 사납기 짝이 없었다. 

  “괜히 행패부리는 거라면 가만 안두겠어!”

 녀석의 표정이 부추켰는지 자신도 모르게 거칠게 내뱉은 김은 선글라스 다리를 잡았다 놓았다. 

  “아저씨도 한 주먹 하는 모양인데, 어때요? 짬짜미해서 사이좋게 나눠먹을래요?”

  삐뚜름모자가 이기죽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놔!”

  “혼자 차지하려고요?”

 검정셔츠가 이빨까지 보이며 능글맞게 웃자 아가씨가 몸부림을 치며 또 다시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걸 확!”

 김이 녀석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치지 마요. 만약 세게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 안 있을 거예요!”

 키가 훌쩍 큰 검정셔츠가 눈 꼬리를 짝 찢었다. 김은 난감했다. 그냥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과 계속 실랑이 할 수도 없었다. 

 “가만 안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엉!”

 김이 고함을 질렀다. 애들뿐 아니라 김으로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에 김은 또 한번 감격했다. 자신에게도 누군가의 귀청을 뚫어버릴 만큼, 누군가가 쫄을 만큼대단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내친 김에 김은 녀석들을 몰아부쳤다. 

 “머리통을 뭉개버리기 전에 빨리 손 놓지 못해! 주먹맛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겠어! 네깟 녀석들은 한 방으로도 충분해!”

 힘깨나 쓴다고 소문난 김이었다. 순해서 다행이지. 함부로 주먹을 휘둘렀단 여럿 다쳤을 거라고 시장 사람들이 수군거릴 정도였다.     

 “쳐요! 쳐! 치라고요! 아이 씨…”

 삐두름 모자가 면상을 치켜들고 김의 턱밑으로 붙었다. 김보다도 작고 호리호리한 몸피였다. 김은 녀석을 밀쳐버렸다. 휙 밀려난 녀석이 벽돌담에 머리를 쿵 찧었다.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제 갈 길로 가버렸다. 검정셔츠는 여자 애의 팔목을 움켜잡은 채 쌍소리를 섞어가며 내질렀다. 

 “아이 씨X, 또 쳐봐. 쳐보라고! 얘 팔목을 확 분질러 버릴 테니까!”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계속 장난질이야!”

 김은 폭발했다. 정비소 사장이나 황군들이나 녀석들이나 순순한 말로는 듣지 않는 족속이었고, 이런 것들은 거품을 물고 이빨을 박아 넣어야만 한다는 것을 조금 전에 깨달은 만큼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네 팔목부터 분질러 주지!” 

 “어디 해보시지.”

 삐두름 모자가 잽싸게 아가씨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아악! 아악! 살려줘요! 살려줘요! 아가씨가 자지러지며 비명을 쏟아냈고,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김이 녀석들을 향해 주먹을 벋었을 때였다.

 “뭐하는 거야!”

 단호하고 위압적인 목소리에 녀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도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김이 뒤돌아서기도 전에 녀석들은 꽁지 빠지게 달아나버렸고, 김은 목소리들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아, 저 저기, 이 아가씨가 쟤들한테 자 잡혀서요……”

 김이 더듬거렸다.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김을 일별한 턱이 각진 젊은 순경이 앳된 아가씨에게 물었다. 

 “어흐흐……, 내가 지나가고 있는데 애들이 나를 잡고, 이 아저씨가 막 소리치고 무서워서 죽는 줄 알고……”

 우느라 그랬는지 정말로 김을 무서워해서 그랬는지 앳된 아가씨의 말은 김을 두둔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겁박 했다는 뉘앙스마저 풍겼다.  

 김은 더는 해명도 못하고 앳된 아가씨와 경찰관들과 함께 지구대로 갔다. 

 “선글라스 벗어요.”

 안경을 쓴 무궁화꽃봉오리 세 개인 경장이 김의 위아래를 훑으며 말했다. 그때서야 김은 자신이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선글라스를 벗은 김의 눈자위는 땀에 젖어 번들거렸고, 김을 흘깃 본 아가씨는 선글라스 아저씨가 주먹으로 녀석들을 위협하고 자기를 뺏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은 절대로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고, 녀석들의 위험에서 구해주려고 한 것뿐이라고 애걸하듯이 말했지만 경찰관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밤중에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니면서 그딴 핑계를 대면 누가 믿어요? 대체 무슨 꿍꿍이로 얼굴을 가리고 다닙니까?”

 “저 눈두덩이가 찢어져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찢어진 눈두덩이 보일까봐서요?”

 “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며 김은 찢어졌던 눈두덩을 만져보았다. 상처는 말끔히 나았고 흉터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이 쩔쩔매며 변명하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형, 아니 김사장님이 웬 일이세요?”

 “어? 아 아니, 그러니까…”  

 순찰 나갔다 막 들어온 박순경을 올려다보며 김은 민망히 뒤통수를 긁었다. 

 “아는 분이야?”

 안경 쓴 경장이 물었다.

 “네. 저기 골목 시장의 또오리김밥집 사장님이세요. 누구하고 싸울 분이 아니신데, 뭔 오해가 있었던 거죠?”

 “폭행시도는 목격했는데, 폭행까지 갔는지 조사해봐야지.”

 “폭행이요? 손님들 진상 짓도 다 받아주시는 분인데요? 우리 사촌 누나가 사장님네서 홀 서빙 하는데요, 만날 속 터져 죽으려고 해요. 한 대 맞으면 두 대는 때려야 본전이라도 뽑는 건데, 사장님은 한 대 더 맞고 있다고요. 사장님이 때리는 시늉을 했다면, 그 인간은 순한 사람까지 분기 뿜게 하는 아주 잡놈이었을 거예요.”

 사교성이 좋아 만난 날부터 형, 형하고 따르던 김순경이 요란하게 변죽을 울려준 통에 김은 더는 변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진술도 면했다. 

 지구대를 나온 김은 집을 향해 걸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선글라스의 위력이 아니라, 김의 야성성이 깨어나 질주한 것이라 해도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김은 인정했다. 걸음을 멈춘 김은 호주머니에 넣어 놓은 선글라스를 꺼냈고, 안경닦이로 살살 문질러 닦으며 나직이 말했다.

 “너무 날뛰지는 말자.”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선글라스에게 하는 말인지 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해? 김은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불빛 휘황한 밤거리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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