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도시에 웰니스의 돌풍이 거침없이 몰아쳤다. 돌풍의 적절성을 따지고 말 여유도 없이 어디를 가든지 웰빙, 힐링, 헬스, 명상 등등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는데, 그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없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을 깊숙이 감춘 나의 맹수 친구들은 그 거센 대열에서 낙오될까봐 조바심을 내며 내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
문명화의 과도기를 거친 밀림 도시는 안정을 찾았고 이제는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당연한 수순이었고 모든 생명체가 추구해야 할 일이자 권리였기 때문에 나는 쌍수 들고 환영했다. 다만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이 선행하기 전에 열풍에 휩싸여 헬인지 웰인지 헷갈리는 게 문제였지만,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릴 뿐이었다.
어쨌든 몇 년 전에 지구는 기이한 변화를 겪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현재까지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것은 미처 예보되지 않은 폭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밀림의 밤이 고요한 썰물처럼 밀려나고 새벽 미명이 비쳐드는 그 찰나에, 갑자기 대지가 흔들리며 광풍이 몰아쳤다. 세상을 뒤집어 버릴 듯 미친 듯이 불어 닥치는 폭풍 속에서 밀림의 동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폭풍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난데없는 침입자들에 의해 목이 찔리고 사지가 찢겨나가는 듯 지독히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글로벌 관광회사의 가이드이자 수상스포츠 매니아였던 나는 그 때 밀림 근처의 방갈로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었다. 7박 8일의 휴가를 밀림의 거친 계곡에서 래프팅과 리버버깅을 즐기고 밀림 탐사를 하며 보낼 계획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깜짝 놀란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마어마한 폭풍이 밀림을 뒤흔들고 있었고, 중심부에서는 거대한 회오리 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 피처럼 붉은 소용돌이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아침이 되었지만 바람의 기세는 여전히 등등했고 동물들의 울부짖음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폭풍은 밀림에서만 휘돌았고 주변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계곡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센 물살로 나를 유혹했는데 물속으로 뛰어 들 때가 아니었다. 심장이 찢겨나가는 듯한 폭풍 속의 처절한 비명, 생명체의 그 미친 듯한 비명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지역사람들과 기자들, 그리고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밀림으로 몰려들었고 나도 끼어들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몇몇이 폭풍을 뚫고 밀림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바람의 울타리가 견고한 성곽처럼 밀림을 둘러싸고 있었고 무엇이든 다가가는 즉시 튕겨내 버렸던 것이다.
3일 째 되던 날, 새벽 미명이 비쳐드는 것과 동시에 회오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 또한 뚝 그쳤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기이했다.
정부 조사관들과 기자들과 동물보호협회 회원들과 (나 또한 동물보호협회 회원이었다.) 무장한 경찰들은 서둘러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밀림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놀랄 만큼 평온했다. 야자나무 한 그루 부러지지 않았고 풀숲은 여전히 우거졌고 거칠게 길을 막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쓰러져 있는 동물들이 한두 마리씩 보였다. 그리고 밀림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넓은 공터에 도착했을 때,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덩치 큰 멧돼지, 사자, 퓨마, 하마, 악어를 비롯한 모든 맹수들과 초식동물과 작은 두더지까지 포개지거나 겹쳐져 있고, 또 여기저기 너부러지거나 팽개쳐져 있었다. 회오리가 밀림의 동물들을 중심부로 집결한 뒤 모조리 질식시켜 버린 것 같았다. 그 괴이하고 섬뜩한 광경에 질려 어느 누구도 선뜻 다가서지도 입을 열지도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 조사관이 뾰족한 집개로 얼룩말의 엉덩이를 찔렀다. 그때였다. 완전히 탈진해버린 쉰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고도 정확한 발음으로 얼룩말이 이렇게 외쳤다.
“손대지 마! 회복하는 중이잖아!”
인간의 말, 동물의 입에서 나온 그 적확한 어휘와 표현에 사람들은 혼비백산 했다. 마치 폭탄이 터졌고 그 파편이 머리를 관통해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은 충격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그렇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그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고 괴성을 지르고 난리법석을 떠는데, 동물들은 또 다시 인간의 언어로 투덜거렸다.
“도대체 왜 나타난 거야?”
“그렇게 도와주고 싶으면 좀 적절한 때 와야지.”
“아, 목말라. 물이나 줘.”
“뭔 구경났어? 왜 몰려와서 X랄들이야!”
“3일을 굶었다. 먹을 것 좀 다오.……”
동물들이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목청을 울려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것 밖에 모르던 생물체가 갑자기 유연하게 혀를 놀려 말을 한다는 건 쇼크 중의 쇼크였다. 매스컴 마다 자국 정부의 입장을 표명했는데, 동물들의 언어 사용은 상상불허의 놀라움이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언어활동은 인간의 고유 영역인데 무차별적으로 침범을 당한 것이다. 동물들은 언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그 야성성이 한층 교활해지고 또 극렬해질 것이다. 따라서 장차 동물들이 인간 사회를 넘보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야생의 생물체가 언어를 사용해도 인간과 동등할 수 없다. 그것을 동물들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 라는 등등의 염려로 넘쳐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가축이나 동물원, 또 각지에 흩어져 사는 동물들은 언어구사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오로지 지구의 중간지대라 부를 수 있는 거대한 밀림과 강에 사는 거대 생물들만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동물들의 언어 사용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각종 국제기구와 강대국들이 대책이란 것을 내놓았다. 밀림을 봉쇄해야 한다. 밀림 주변에 연합군이 주둔해야 한다. 밀림의 동물들을 바다 한가운데의 섬으로 옮겨야 한다는 등의 대책에 밀림은 즉각 반발했다. 헛소리 하지 마라. 수중도시를 만들어 잠수를 타야할 인간들, 우리가 언어를 구사하게 된 것이 뭐가 문제냐, 우리의 터전은 우리가 정한다. 동물과 인간들이 협력해서 살아갈 방안을 강구하지 못하는 걸 보니 인간은 협력이란 단어를 잃은 게 틀림없다. 전전긍긍 어쩔 줄 몰라 하지 마라. 인간사회가 얼마나 허술한지 그렇게 낱낱이 보여줄 필요가 있나? 등의 비판과 비아냥을 쏟아냈다.
인간사회와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 사회의 구성원들이 뾰족하게 각을 세우고 좀처럼 의견을 좁히지 못했지만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보이지 않는 언어이자 저절로 주고받게 되는 대화와 같은 시간이 두 집단의 간격을 어느 정도 메워 주었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던 사실도 수긍하게 만들었다. 인간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자 동물들은 (동물이란 단어에는 인간보다 열등한 생물체라는 인식이 담겼기 때문에 동물 대신 동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동인은 생소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동물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즉각 인간의 문명을 받아들였고 보다 조직적이며 안정적인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다.
밀림에는 인간 사회가 모르는 보석과 광물자원이 아주 풍부했는데, 파이어 오팔, 레드 다이야몬드, 백금, 희토류, 바나듐 등의 매장량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동물들은 인간들이 넘보기 전에 잽싸게 소유권과 채굴권을 확보해 밀림을 재편성하는 자본으로 삼았다. 밀림은 원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자연구역과 각종 건축물과 편의시설, 그리고 주택이 들어선 밀림도시로 나뉘어졌다. 자연구역은 휴양지였고 도시는 주거지였다.
밀림도시의 넘쳐나는 자본에 세계는 흥분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앞 다투어 밀림도시에 지사를 설립하고 호텔과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포함된 토탈쇼핑몰과 식당과 가전제품 대리점과 건강보조식품샵과 펍과 시네마 클럽 등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세계 각국의 식당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밀림 내에서의 사냥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육식동물들은 인간사회에서 도살한 가축을 먹어야 했다. 그것도 생식으로. 그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게 된 동물들에겐 꽤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맹수들의 번민을 알아차린 요식업계는 가축 본래의 생고기 요리를 지양하고 불을 사용해 조리하는 한편 각종 향신료로 버무려 뭐가 뭔지 모를 고기메뉴들을 개발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그것을 계기로 육식동물뿐만 아니라 초식동물들을 위한 전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문명의 맛은 굉장했다. 무엇보다도 더 나은 것, 뭔가 희한하고 색다른 것, 감촉이 다른 것, 즐거움을 층층으로 제공하는 것,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놀라운 것, 편리와 편리의 결합으로 더 편리한 것, 것, 것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밀림 도시에 갖가지 첨단 기술이 도입되었고 은밀한 재미가 제공되었고 각종 사치성,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호화로운 매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밀림의 경쾌한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문명의 이기는 욕망의 출구였다. 저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욕구를 충족시켜 줄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향락을 누리게 했다. 욕망이란 건 종류도 많아 사방으로 벋어나가는 나뭇가지처럼 끝이 없었고 무한의 자루처럼 쭉쭉 늘어나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었다. 입이 쩍쩍 달라붙도록 찐한 맛인데다 지속적인 갈증을 유발했다. 갈증은 그 속성대로 계속 탐닉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탐구의 영역까지 몰아붙였는데, 이것이야 말로 1석 대박이 아닌가. 지구에 동물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즉 왜 동물은 인간처럼 오래 살지 못하는가? 라는 획기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로소, 비로소 말이다. 밀림의 경쾌한 시대가 열렸는데, 동물들의 천수가 고작 10년에서 30년 정도라는 건 너무나 불공평했다. (코끼리와 거북이 등은 제외하고) 적어도 100년 정도는 살아야 산 것 같지 않겠는가!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그것은 바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라는 등의 이론은 모르겠고, 어떻게 하면 인간처럼 오래 살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거창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머리를 처박고 있기엔 조바심이 앞질렀고, 그렇다고 그냥 저냥 선대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는데,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보지 못했다. 따라서 몇몇 동물들은 서명을 갈겨 밀림최고위원회에 동물들의 천수를 개선해달라고 수백 번 민원을 넣었는데 매번 똑같은 대답만 날아왔다. ‘밀림최고위원회는 신들의 모임이 아님.’
당연한 대답이었다. 최고라고 나대는 놈들이 할 줄 아는 게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동물들은 허탈해 하지도 않았다. 엉덩이 깔고 끙끙대다보면 실마리라도 찾아낼지도 모르지 뭐.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삼삼오오 모여 불평을 늘어놓다, 한탄을 쏟아놓다, 막막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각각 주문처럼 읆조렸다. 인간처럼 오래 살고 싶다. 인간처럼 오래 살고 싶다. 인간처럼 오오래 살고 싶다. 라는 그 소망이 고속도로를 탔고 마침내 염원의 통로가 열렸다. 어느 날, 한 늙은 댄서의 한 마디가 팡파레처럼 울려 퍼졌고 드럼스틱처럼 날쌔게 튀어 올라 밀림사회를 신나게 두드려댔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것은 아주 사소한 한 마디였다.
밀림여행을 온 그녀는 숲속 공터에서 기린들이 록앤롤에 맞추어 긴 목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흥이 오를 대로 올라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엇박자는 물론이고 어찌나 막무가내 목치인지 서로 치고 박고 좌충우돌 쌈박질 댄스를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 긴 목이 꺾이거나 돌아가 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그들 사이로 뛰어 들어 좌우로 팔을 벌려 서로를 떼어 낸 뒤 외쳤다.
“자, 이렇게, 이렇게! 스윙, 스윙,”
그녀는 목을 돌리고 골반을 흔들고 다리를 교차해 가며 댄스라는 게 어떤 것인지 리얼하게 시범을 보였다.
“모두 다 같이! 목을 좌로 한번 돌리고 우로 한번 돌리고 턱을 위아래로 흔들고…….”
처음에는 무색하고 뻣뻣한 몸뚱아리가 말을 안 들어 기린들은 그냥 쭈뼛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까치발로 한 기린의 목을 잡고 뚠 뚠뚠 뚠뚠, 뚠뚠뚠~~ 리듬을 넣으며 부드럽게 돌려주었다. 두 번, 세 번째에 그 기린이 뼈 없는 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돌리는 거 아닌가! 오, 오, 기린들뿐 아니라 구경하던 동물들도 놀라 탄성을 터트렸고, 탄성이 식기도 전에 그 기린이 목뿐 아니라 엉덩이까지 리드미컬하게 흔들었다.
“좋아요! 아주 멋지게 해냈어요. 자, 이제 모두 다 함께 해봐요!”
그녀의 외침에 기린들 뿐 아니라 구경하던 동물들이 춤판으로 뛰어 들었다. 그녀는 한층 더 흥에 겨워 투스텝, 쓰리스텝, 한번 더, 두 번 더, 앞뒤로 스텝을 밟고 머리를 좌우로 꺾고 흔들어 털었다. 인간사회에서는 오래 전에 마감해 버린 유산소 운동인 에어로빅이었다. 동물들은 앞다리 올리고 뒷다리 차고 부르르르 털다 까강충 까강충 뛰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흔들어. 몸의 긴장이 풀리면 식사도 즐겁고 소화도 잘 되지. 밀림에도 웰니스가 필요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오오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 그녀의 그 한 마디는 모든 동물들의 귀에 쏘옥 들어가 힘차게 새겨졌다. 신나게 뛰고 흔들고 랄랄랄거리면 식사가 즐겁고 소화가 잘 된단다. 그러면 똥도 솨악 시원하게 쌀 거고, 뱃속이 편하면 만사가 편해! 건강에 최고야. 라고 해석했으며 웰 뭣인가를 덧붙이면 인간처럼~ 이라는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문이 밀림에 좌악 퍼졌다. 그리곤 웰니스란 게 웰빙을 앞지른 것이며 심신의 최고 컨디션 유지가 목표이며, 어떻게 해야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인지 상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거센 해일처럼 밀려와 밀림도시를 휩쓸어버렸다. 웰빙과 힐링, 웰니스를 외쳐대는 수만 가지의 상품과 대형 헬스장과 심리상담소와 명상센터와 식품 영양컨설턴트사와 스트레스치유기관들이 쭈르륵 들어서며 말이다.
마트의 상품 진열대에 진입하기도 전에 동물들은 웰빙을 알리는 광고판과 부딪쳤다. 오늘의 웰빙은 바로 이것! 명상 음악 듣고 가요! 무료로 심리상담 받아보세요! 건강도 잡고 맛도 잡고! 스트레스 쫘악 풀어주는 맵달식, 후후후 불어 한 입만 맛보고 가요! 근육은 건강의 지표, 이것으로 쫀쫀 근육 키워라! 과체중 조심!- 하루 한번으로 쉽게 조절해요!……. 이 모든 것들이 웰니스 패치처럼 동물들의 눈에 착착 달라붙었고, 이것도 저것도 집어 카트에 던지다 보면 어느 사이 가득 차 버렸다.
“세상이 이러는데 웰빙이나 웰니스를 입에 올리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니?”
내가 “그놈의 웰, 웰, 웰, 어이구, 멀미날 지경이야.” 라고 이맛살을 찌푸리면 나의 맹수친구들이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웰빙이나 웰니스가 좋은 건 충분히 알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를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인간처럼 몸에 좋은 것,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을 하면 할수록 건강이 지속되고 그에 따라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분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빠져 있었는데, 나는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듣기는 잘하는데 실천력이 부족하니 또 내 입만 아프지 뭐. 그리고 네 발로 야생을 누비는 동물들은 변비 따위에 시달리지 않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변비 때문에 고통을 겪는 동물들이 많았고 인간처럼 운동이 적극 권장되고 있으니 말이다.
웰니스의 시끄러운 파고를 따라 시간은 흘러갔고 새해가 되었다. 밀림광산 중 순위를 다투는 백만금개발회사는 새해맞이 밀림스포츠대회를 개최했다. 계열사인 ‘질주본능웨어’에서 출시한 보석 장식의 스포츠웨어 홍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나의 맹수친구들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웰니스를 찾을 기회라며 나를 초대했다.
오랜만의 외곽 나들이라 나는 살짝 불안했다. 밀림의 외곽은 그야말로 동물들의 야성성이 활발하게 질주하는 곳이라 인간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고, 관광을 신청하면 맹수 관리자 둘 이상이 동행해야 허가되었다. 담력 배짱이라도 부리듯 무작정 밀림 탐사에 나섰다 맹수들의 공격에 가랑이가 찢어져라 달아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간들은 이전처럼 무기를 장착하고 다닐 수 없으니 말이다. 인간은 예전처럼 밀림을 즐기기를 바랐고, 밀림통치위원회에 무기 착용을 허용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위원회는 결코 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밀림 깊숙이 혼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호랑이 리들과 늑대 호턴과 동행했다. 우리는 밀림의 자연구역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파킹한 뒤 5Km가 넘는 맹그로브 숲까지 걸어가야 했다. 자연구역은 철저하게 보호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당연히 자동차 도로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이전 보다 더 숲이 우거져 헤치고 나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자동차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리들과 호턴은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문명화된 동물답게 반바지에 나시 티와 셔츠를 입고 수염에 갖가지 컬러를 입히고 귀 끝에 우아하게 찰랑거리는 링을 달았지만, 밀림의 온갖 나무 향에 버무려진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건드리자마자 저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야수의 본성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던 것이다. 나와 같이 두 발로 몇 걸음 걷던 리들과 호턴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나에게 천천히 오라고 하더니 네 발을 터는 워밍업도 없이 질주하여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나는 두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렸다. 인간 혼자라는 것을 아는 순간 어떤 맹수가 덮칠지 모를 일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저 앞에서 리들이 소리쳤고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났다. 리들이 거칠게 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후우~, 내 등에 탈래?”
“오, 노.”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지금은 펍에서 호프잔을 들고 떠들어대던 그 리들이 아니다. 바람처럼 빠르게 숲을 가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움켜쥐고 송곳니를 박아댈 한 마리 호랑이다. 달리는 와중에 내가 나뭇가지에 얼굴이 찔리든 옆구리가 터져나가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질주해버릴 것이다.
“뭐해?”
곧이어 나타난 호턴이 두발로 껑충 서더니 앞발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보다 뒤돌아보았다. 저 멀리에서 늑대들이 울고 있었다. 호턴이 온 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다는 듯 이빨을 활짝 드러내자 리들도 달아올라 가르릉거리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한번 달려보자고. 그런데 이 느려터진 인간이 내 등에는 안 타겠다는데?”
“당연하지. 올라타는 순간 네가 털털, 털푸덕, 리듬도 경쾌하게 주저앉아 버릴 텐데, 얘가 그 민망함을 감수하겠냐?”
“걱정마라. 이 인간 정도 올려놓고는 시속 80km도 가뿐하다.”
“그건 예전의 네 기쁨이었고, 지금은 볼록 고양이보다 더한 걸?”
호턴이 리들의 불룩한 뱃살을 턱으로 가리키며 빈정거렸다.
“그래, 너 잘났다. 이 깡말라 뜯어 먹을 것도 없는 놈아!”
리들이 버럭 내뱉자 호턴이 활처럼 가지런하게 도열한 제 옆구리 뼈를 자랑스럽게 쓸며 깐죽거렸다.
“이 탄탄하게 드러나는 갈빗대가 건강의 지표라는 것도 모르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와는 비교도 안 된단다. 네 갈빗대는 어디에 파묻혔냐? 기름 범벅 속에? 뭐 네가 그런 거에 신경이나 쓰겠냐? 우선 먹고 보자인데.”
“흥, 하루 종일 빨아봐야 헛고생만 하게 만드는 네 갈빗대? 그걸 알아달라고 보채는 거냐? 응? 이 삐쭉한 뼈다귀 놈아!”
“그래서 부럽다고?”
“그래 이 개뿔 같은 놈아, 아주 확 부러뜨려버리고 싶게 부럽다!”
리들이 거품을 물고 달려들자 호턴은 마치 발에 구름이라도 달린 듯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딱 리들과 한 뼘을 두고. 그것에 더 열을 받아 리들은 두 앞발을 번갈아 휘둘렀다. 순간 살 속에 숨어 있던 발톱이 창처럼 쓱 나왔고, 뾰족하게 구부러진 리들의 발톱이 사납게 공중을 그어댔다. 그야말로 걸리면 짝 찢어버리겠다는 일념의 액션이었다.
“어, 어, 작작 해라. 난 한 대 맞으면 백대로 돌려주는 놈이다.”
좌우로 피하던 호턴의 눈이 뒤로 찢어지며 열받은 표를 냈다. 하지만 이미 단계를 넘어가버린 리들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천대로 돌려주지 그래? 내 가죽에 스크래치라도 한 점 내고 싶으면. 이쑤시개처럼 말라붙어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놈아! 내 털 한 오라기라도 뽑아봐.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이 말라빠진 파리똥 같은 놈아!”
화라는 것이 한번 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습성이 있다는 걸 리들은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성질 사납기로는 호턴도 만만치 않았는데 윗입술을 말아 올려 있는 대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크르릉거렸지만 리들의 부아만 더 돋을 뿐이었다.
“이것이 어따 대고 추잡한 이빨을 드러내! 확 다 뽑아버릴 테니까 이리 와. 비쩍 마른 나뭇가지 같은 놈이라 요리조리 도망도 잘 다니는구나.”
“그만 하라고 했다.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겠지? 바로 지척에 있다는 걸 알아야지. 그 잘난 목덜미 간수하고 싶으면 조심하라구!”
“알지. 알지. 당연히 잘 알지. 벼룩 같은 놈들은 뭉쳐야 끽소리라도 내니까 뭉탱이로 몰려다니는 게 맞지. 모두 다 불러와. 내가 한방에 오지게 으깨 줄 테니까.”
호턴의 겁박에 리들이 넓적하고도 두툼한 발을 신나게 비비며 이기죽거렸다. 보자보자 하니 이것들이 아주 가관의 극치까지 달릴 폼이었다.
“그래서? 출발할거야? 말거야? 벨이 기다리다 지쳐 대회 다 망쳐버리는 거 보고 싶어!”
참다못한 내가 빽 소리쳤다. 리들이 유일하게 찍소리 못하는 건 벨이었는데, (어렸을 때 벨과 다투다 벨의 육중한 궁둥이에 깔려 죽을 뻔했다나 어쨌다나~) 아니나 다를까, 벨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자마자 리들의 빳빳하고도 굵은 목덜미가 번데기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래, 벨이 화나서 아무거나 들이 받으면 좀 곤란하지.”
때맞춰 호턴은 누구 들으라는 듯 한 마디 하더니 빨리 따라오라며 바람처럼 달려가 버렸다. 리들은 풀이 죽었지만 입만은 여전해서 호턴의 등 뒤에 대고 욕이란 욕은 다 쏟아 부었다. 그런 뒤 못다 한 욕을 털어내듯 부르르르 고개를 흔들더니 내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뭐해? 빨리 안가고?”
아주 가지가지였다.
“그게 지금 네가 할 소리야!”
짜증이 난 나는 주먹을 쥐고 흔들어 보였지만 때리지는 못했다. 녀석이 ~흐흥, 소리만 내도 간댕이가 오그라든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힘껏 눈을 흘겨주고 속으로만 투덜대며 걸었다. 두 녀석의 짓거리에 진이 다 빠져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걷는 게 고역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물결 넘실거리는 드넓은 강가에 훤칠한 맹그로브 나무들이 둘러서 있고, 숲 안쪽의 너른 대회장에 설치된 캐노피들, 그 위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과 바람을 따라 휘날리는 만국기 사이로 궁궁궁 신나게 노래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에이, 먼저 온 녀석들이 다 해 처먹었겠네.”
리들이 쓰게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다. 하긴 그 생쇼를 하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났으니 대회는 벌서 시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제 시작일 뿐이야. 너 날뛸 시간은 충분해.”
“정말? 오, 그렇겠지? 넌 역시……”
어떻다고 할지 뻔했다. 지금 이 시간만은 자기를 제일 잘 알아주는 최고의 베프라고 하겠지. 뭐, 1초 뒤에 최강의 나쁜 친구로 변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신나게 찢어진 주둥이를 들이밀며 나를 앙 물으려 했다.
“얘가, 얘가, 누굴 잡으려고!”
기겁을 한 내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부르짖자 리들이 호탕하게 웃었다.
“예뻐서 한번 물어 볼라고 했지. 인간들은 좋으면 물어 뜯더만.”
“넌 인간이 아니잖아. 이 폭력배 같은 놈아! 제발 좀 진중해라. 도대체 네 뇌 속에는 뭐가 들어 있냐! 기분 내키는 대로 좀 하지 말라고!”
나는 조금 전의 화까지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하지만 살짝이라도 때리지는 못했다. 그건 언제나 내게 남는 아쉬움이었다.
“어유, 어유, 침 튀기는 거 좀 봐. 드러워라~”
“잔소리 말고 빨리 가기나 해! 재밌는 거 다 떨어졌다고 난리를 치려면서……”
“알았어. 알았어. 1초 안에 도착한다.”
그렇게 말한 리들이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달리더니 어느 사이 사라져버렸다. 역시나 재미에는 사족을 못 쓰는 놈이었다.
리들은 조금 전의 일은 까맣게 잊고 호턴과 짝을 지어 2km 달리기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중석의 원터치 자동 풀장에 기대앉아 나를 향해 맨하탄 잔을 치켜 올리고 있는 악어 체루아가 둘의 서먹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스포츠대회 망치는 놈은 당장에 물어뜯어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것이다. 체루아의 기습적 물어뜯기 기술은 밀림 내에서 최고였으며 심기가 뒤틀렸다 하면 참는 법이 없었다.
“치인구, 이쪽으로 와.”
하마 프렌이 하몽 한 무더기를 입에 우겨넣으며 나를 향해 앞발을 마구 흔들어 댔다. 그 짧고 두툼한 발이 권투선수의 원투 펀치 같았으나 악의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막걸리 주전자처럼 소탈한 정감이 있는 프렌은 취기만 오르면 자기는 내 보디가드이니 밀림 생활은 걱정하지 말라고 떠들어댔다. 햇빛을 피해 내내 늪에 처박혀 있으면서 언제 보디가드 노릇할 거냐고 통박을 주면 이따 저녁 때 보자고, 밀림의 위험은 해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라고 받아쳤다.
드레곤후르츠처럼 외모는 울퉁불퉁해도 속은 푸딩처럼 부드러운 프렌도 영역 다툼을 할 땐 달라진단다. 또 자존심이 뭉개질 때도 예외이고.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본능이 치솟아오를 때 그가 얼마나 무자비한지 나는 본적은 없다. 다만 들은 바에 의하면 평소의 프렌은 잊으라는데……. 하긴 지적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상상이 된다.
“아니. 이게 뭐야? 식당 차렸냐?”
내가 깜짝 놀라자 코끼리 벨이 코로 내 등을 찰싹 때렸다.
“너 다 먹어. 네 빈약한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찢어진다.”
“난 상체형 인간이라 상대적으로 그래 보이는 거라고!”
의자에 앉으며 내가 항변했지만, 벨은 음식 접시들을 내 앞으로 마구 밀었다. 백금개발주식회사 오너의 아들인 벨은 언제나 친구들의 술과 음식을 책임졌는데, 이번에는 무려 다섯 대의 카트에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테이블에도 음식이 즐비했다. 관중석은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야외식당이었다. 커다란 테이블과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배기지 않을 쾌적한 의자가 제공되었고, 주문한 음식들이 속속들이 배달될 뿐 아니라 식당 뒤의 간이음식점에서 구매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먹기 대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밀림위원회에서 대회장까지 임시도로를 냈다더니 배달차량이 제일 큰 특혜를 봤을 것이다. 뭐, 외식업체도 만만치 않았을 거고. 그러니까 말이 스포츠 대회이지 버라이어티 페스티벌이었다.
“그릇이 작다. 작어.”
프렌이 푸아그라를 넣은 커다란 샐러드 접시를 당기며 말했고, 포크를 사용할 것도 없이 한번에 입에 쓸어 넣었다. 그 큰 입에는 조리통이 통째로 들어가도 부족할 터였다. 그것을 모를 일 없는 벨이 카트를 가리켰다. 마음껏 갖다먹으라고.
“스테이크는 안 먹냐? 먹어봐. 아주 부드러워.”
트러플 슬라이스와 함께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으며 내가 권하자 프렌이 글쎄, 고개를 갸웃하고는 접시를 바라보았다. 초식성이던 프렌이 육식친구들과 어울리더니 고기를 피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먹기 전에는 으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하는 척은 했다.
내가 스테이크 접시를 밀어주자 프렌은 또 한 입에 스테이크 접시를 쓸어버렸다. 나는 스튜에 졸인 완자 그릇도 밀어주었다. 프렌은 한번 핥아먹어보더니 입을 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후루룩 다 마셔버렸다.
여! 친구들! 응원해! 트랙 앞에 선 리들과 호턴을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트랙은 운동장을 지나 밀림까지 이어져 있었고 다시 출발선 앞으로 돌아오는 길이가 2km라고 했다.
리들, 호턴! 1등! 1등!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응원했다. 1등 책임져라! 상금은 우리한테 모두 넘기고! 달려! 체루아가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차렷! 탕, 소리와 함께 동물들이 튀어나갔다. 치타와 가젤, 타조, 스프링복, 토끼 등등이 달렸고 가장 앞질러 달리는 치타의 꼬리가 휘어져 공중에 호를 그었다. 앞발을 인간의 손처럼 사용하는 맹수친구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갑자기 네 발로 튀어나가 비호처럼 달리는 모습이 낯설었다. 나와 다른 종이 지금까지 내 친구였다는 사실이 이상했고, 동물들이 와글거리는 곳에 앉아 있는 내가 이방인 같았다.
등 뒤로 새해 바람이 밀려들었다. 밀림을 훑고 온 바람은 나무와 풀과 산새의 깃털 냄새까지 모두 싣고 있었다. 그 바람이 귀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세상은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이면 어떻고 동물이면 어떠냐?
“너희들은 참가 안 하냐?”
올리브를 입에 넣으며 내가 묻자 체루아가 점보 랍스터를 통째로 입에 넣고 와작, 와자작, 와자자작 요란하게도 씹으며 말했다.
“아암벽 든(등)반에 참가해 보려고 신청해서(했어).”
“뭐, 넌 육지에서도 꽤 놀긴 하더라만, 근데 해 본 적 있어?”
체루아가 서둘러 맥주잔에 담긴 보드카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당연히 아니지. 오늘 해보고 괜찮으면 제대로 배워보려고.”
“이 브리치즈는 덩어리째 먹어야 먹는 거 같더라. 음, 아주 고소해. 나는 자전거 타기에 신청했어.”
“수영이 아니라 자전거?” 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프렌은 혓바닥 위의 치즈를 입천장으로 눌러가며 말을 이었다.
“어으, 수영은 싫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우습더라고. 자전거가 나한테 잘 맞는 거 같지 않아?”
프렌이 잘 자란 겨울 무처럼 짧고 퉁퉁한 앞다리를 들어 천천히 돌렸다.
“……”
“왜? 이상해?”
치즈를 재빨리 삼킨 프렌이 크고 단단하고 긴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송곳니를 드러내며 물었다. 프렌은 궁금하거나 미심쩍거나 불쾌할 때 저도 모르게 눈이 뚱그래지며 왜? 라고 물었는데, 그때 저절로 동굴 같은 입이 쩍 벌어지고 거대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건 호랑이 리들의 포효처럼 결코 다독일 수 없는 공포였다. 하마의 최대 천적이 하마일 정도로 세상 무서울 게 없는 프렌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문제적인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거울을 보지 않으니까. 아니, 거울을 들이밀고 보여줘도 자신의 커다란 입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는 데 뭐.
“……자전거 부서지면 너 다칠까봐.”
말려봤자 안 들을 거 같아서 나는 대충 둘러댔다.
“자전거가 전부 작살나도 쟤는 괜찮아.”
아직도 식물성 음식만 고집하는 코끼리 벨이 갖가지 생야채를 코로 한웅큼 집어 최상급의 유기농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에 푹 담그며 말했다. 애주가인 벨은 과일로 만든 술은 몸에도 좋다며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을 번갈아가며 물마시듯 코로 쭉쭉 빨아 마셨다.
[잠시 후에 태권도 경기가 열리겠습니다. 신청한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니가 좋아하는 거네. 왜 신청 안 했어?”
내가 묻자 벨이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의 수분을 일정량 제거한 뒤 꿀을 넣어 폭신폭신하게 만든 쟁반만한 반건조꿀샐러드를 입에 넣더니 코로 프렌을 툭 건드렸다.
“내 체급에 맞는 놈이 없잖아. 얘하고 맞장 뜨려고 했더니 절대로 싫단다.”
그 말에 프렌이 눈을 흘겼다.
“니 다리하고 내 다리하고 길이가 같냐?”
“야, 야, 이번에 한 종목씩 잡아.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라잖아. 운동 없이는 웰니스도 없단다. 나는 밀림 최고의 암벽 등반가를 목표로 삼고 싶은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
체루아가 대단한 걸 깨달은 것처럼 강조하고 목표를 정하는 사이 2km달리기 선수들이 들어왔고 리들과 호턴은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어라? 호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고 리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라들을 질질 끌고 관중석으로 올라온 호턴이 녀석을 확 패대기쳤다. 리들 성깔로 봐서는 패대기 당하기 전에 갈고리 같은 앞발을 휘둘러 호턴을 아작 내버렸을 것 같은데 별 일이었다.
“얘 이렇게 맛이 갔냐? 야, 리들 정신 차려!”
내가 리들 목덜미를 쥐고 흔드는데 호턴이 침을 튀겼다.
“이런 덩치를 내가 업고 달리다시피 했다. 얘, 완전 헛것이야. 발가락 한번 까닥하지 않고 처먹어대기만 하더니 1km 넘으니까 벌써 허덕이더라고. 그때까지는 예전처럼 바람이었는데 말이야. 근데 딱 거기까지더라. 다른 놈들도 다 마찬가지라서 이 꼬라지에도 동메달 받았단다. 참 어이가 없더라고.”
“아, 쒸, 시 시끄러. 배고파서 그랬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는 안 먹으면 한 발짝도 못 움직여. 먹어야 한다고. 한바탕 먹고 뛰었어야 하는데 아, 쒸.”
“됐고. 빨리 일어나. 스테이크가 뜯어 먹는 맛이 있더라.”
체루아 말에 리들이 눈을 번쩍 뜨더니 잽싸게 의자에 앉아 뼈째로 구운 거대한 스테이크를 잡고 뜯었다.
“이야, 레어로 잘 구웠다.”
순식간에 세 접시를 먹어치운 리들이 입가의 핏기도 닦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못 먹고 뛰었더니 뱃가죽이 등가죽이었다. 기운이 쭉 빠졌는데 어떻게 발을 놀리냐? 앞발이 나가고 있는지 뒷발이 처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더라고. 비만이고 허약이고 간에 먹고 기운 챙기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그래. 먹는 게 최고이긴 하지. 그래야 움직이는 거니까. 사실 먹는 거 보다 더 즐거운 것도 없고.”
체루아의 맞장구에 호턴이 삐쭉 혀를 놀렸다.
“신나게 처먹고 처먹어야 똥도 겁나게 싸지. 그래야 강물 속이 풍성해져 체루아 네가 좋아하는 물고기가 풍덩풍덩 거리겠지?”
“그거 진짜로는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지?”
하마 프렌이 호턴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 넌 아예 궁둥이를 흔들며 사방으로 똥을 내지르니 멀리서도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잖아.”
“또 시작이냐? 이것들은 모였다하면 단체로 지랄을 하고 자빠졌다니까. 호턴 너도 좀 먹어. 소중한 우리의 엘리스(‘이상한 나라의 엘니스’를 열 번쯤 읽은 벨은 웰니스를 꼭 엘니스라고 한다.)를 잘하려면 우선 기본 섭취는 해야지.”
호턴은 입 짧은 아이처럼 무척이나 가려먹었다. 원래는 무분별한 잡식성이었는데 오랫동안 설사를 쭉쭉 해대며 해골이 되도록 앓고 난 뒤 건강을 고민했고 그러다가 식품과 운동에 집착하게 되었다. 자신의 취약한 소화기관에 무리가 가지 않게 지방 덩이는 되도록 피하고, 육식과 채식을 적절하게 적당량을 섭취했다. 나와 호턴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식가에다 술고래들이었는데, 나는 위장이 작아 일정량 외에는 먹지 못하고 술에도 약해 양주 두 잔이 정량이었다.
끄어어억, 벨이 광 트림을 내뱉었다. 냄새 폭탄을 발포한 것처럼 온갖 음식이 뒤 섞인 냄새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맞은편에 앉아 그것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프렌이 물었다.
“호턴 넌 그렇게 먹고도 잠이 오냐? 난 항상 그것이 궁금하더라.”
프렌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듯, 고개까지 갸웃하며 물었다.
“과식하면 더 잠이 안 와. 자꾸 트림 나오고.”
“근데 나도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더라. 적게 먹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고.”
호턴의 말에 벨이 제 배를 쓸며 고개를 갸웃했다.
“뭘 그렇게 따져. 그냥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해. 그게 웰니스의 기본이지 뭐야.”
“너희들은 만날 입으로만 웰니스, 웰니스 노래를 부르고 건강에 좋다는 걸 사들이기만 하지 행동으로는 하는 게 없더라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성질나는 대로 폭발시키며 심신을 내동댕이치며 살고 있는데 뭔 웰니스야?”
벨이 대답하기도 전에 호턴이 꼭 찝어 말했다.
“깐족거리기 좋아하는 네 혓바닥부터 웰니스 세정제로 깨끗이 좀 닦아주지 그러냐? 아주 더럽게도 놀려요.”
리들이 호턴을 향해 사납게 눈을 찢으며 씨부렸다.
“이놈의 웰니스, 실천하자니 귀찮고 버리자니 아깝고, 몸과 생각이 따로 노니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체루아의 자조어린 말에 벨이 즉시 동조했다.
“뇌가 열리더니 탐(貪)까지 열린 거 같아.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긴 거 같더라고. 속이 꽉 차 더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먹고 싶은 욕구가 일어 견딜 수가 없어. 때때로 속이 불편해 자다 깰 정도야. 그런데도 먹고 싶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이래가지고 건강하게 오래 살겠냐?”
그러자 식탐 많지, 게을러터져 움직이는 거 싫어하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프렌이 가장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맞아. 먹는 걸 멈출 수가 없어. 내 머릿속에 커다란 그릇이 들어앉아 계속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는 거 같아. 먹고 먹고 먹어도 먹고 싶어!”
“너희들 탐(貪)의 출구는 먹는 건가보다. 탐(貪)의 본질은 채우는 건데, 바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그 갈증 때문에 미치는 거야. 뭐, 사는 게 탐욕의 줄다리기라서 어쩔 수 없긴 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미친 듯이 끌어 모으고 모아도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고, 끝없이 그 명령을 좆다가 마는 게 삶인지도 몰라.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해. 따라서 어떤 이는 깨우침을 따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어떤 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욕망을 좆아 달리지. 뭐 욕망이 본성에 가장 가까운 거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몰라.”
“뭔 말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냐? 그냥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해. 적당히 좀 먹으라고. 근데 있잖아. 적당히 먹다 삐쭉 말라빠지면 그건 누가 책임 지냐? 그리고 말이야, 먹고 후회하는 게 낫냐? 안 먹고 후회 하는 게 낫냐?”
다소 진지한 내 말을 리들의 진심 진지한 표정으로 받아쳤고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적당히 먹으라는 거잖아? 건강식이면 더 좋고. 안 그래?”
체루아가 핵심을 짚어내자 리들이 어쩐 일로 잽싸게 반응을 보였다.
“건강식이라면 채식 아냐? 하긴 내가 고기만 먹어 대서 그런지 비곗살이 너무 늘어나는 것 같더라고.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는 게 아주 영(호턴을 힐끗 보고는) 그래. 그렇다면…….”
리들이 어울리지 않게 미간을 좁히더니 말을 이었다.
“당분간 고기는 양념으로만 먹고 채식을 할까? 좀 괴롭겠지만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말이지……”
“그건……”
안된다고 말리려는데, 프랜이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잘 생각했다. 오늘 배터지게 먹고 내일 부터는 콩고기 뿌린 샐러드 같은 거만 먹고 살 쫙 빼라.”
“채식 식단은 너하고 어울리지 않아. 너 한번이라도 네 태생이 어떤지, 네 소화 능력의 범위에 대해, 또 네 몸의 독특한 구조가 어떤지 머리빡 터지게 고민해 본 적 있어?”
호턴의 지적에 리들이 발끈했다.
“어이구, 그러셔? 나는 내 머리 터지는 거 싫으니까 너나 머리빡 터지게 고민해!”
“어유, 그만 주둥이들 좀 닥쳐!”
보다 못한 체루아의 일갈에 모두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데, 자전거타기와 암벽 등반 선수들은 입장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우리는 벌떡 일어나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스포츠 팬츠를 입은 들개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자전거 종목의 메달은 들개들의 차지가 될 건 당연할 것 같았다. 날렵한데다 자전거 페달을 밟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졌으니까. 껑충 선 들개들이 헛둘, 헛둘, 뒷발을 앞으로 벋으며 몸을 풀었고, 그 포스에 기가 죽은 프랜이 우리 등을 밀었다.
“자 자전거 경주 코스는 운동장 밖까지 이어져 있으니까 응원하기가 쉽지 않잖아. 암벽 타는 체루아 응원하러 가.”
“그래. 너 출발하는 거 보고.”
선글라스를 쓴 리들이 팔짱을 끼고 버티고 섰다. 깐에는 포스 작열하는 폼으로 들개 녀석들의 기를 꺾겠다는 의도였지만, 이미 달리면서 무너진 폼이 그런 것 정도로 회복될 수는 없었다.
프랜은 더는 말하지 않고 뒤뚱뒤뚱 걸어갔다. 방향이 이상하다 싶어 살펴봤더니 몸무게 1톤 이상의 자전거는 따로 있었는데, 일반 자전거 쪽으로 가고 있었다.
“프랜! 거기 아니야!”
내가 주의를 주었지만 프랜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고, 벨도 소리쳤지만 프랜은 듣지 못하고 자전거에 올라탔, 아니, 그 육중한 엉덩이가 안장에 닿자마자 와자자작! 주저앉아버렸다. 쪼개진 자전거가 프랜의 엉덩이를 찔렀고, 으어어허허어엉! 허어어어엉! 괴성이 연이어 터졌다. 몸무게 1.5톤에 육박하는 하마의 울음소리는 천둥처럼 울렸는데 마치 하늘에서 불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프랜을 향해 달렸다.
삐익! 삐익! 삐……익! 가까이 가지마라는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주최즉 관리자들이 들것과 약품 상자를 들고 달려갔다. 우리는 주춤주춤 프랜에게 다가갔다.
“프랜, 많이 다친 거야?”
“아 아니야. 으어헝엉, 엉덩이가 좀 찢어진 거 같아. 아픈 걸 보면 10센치쯤 되지 않을까 싶어.”
“바지 좀 내리겠습니다. 관계없는 분들은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
얼룩말이 간호요원으로 파견되었는지 그렇게 말하며 프랜의 바지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멀찍이에서도 절개된 부위가 다 보였다. 엄살 많은 프랜으로선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우리는 임시처치를 받은 프랜을 부축해서 나무 그늘 아래 간이벤치에 엎드려 쉬게 하고 체루아를 보러갔다.
높이 20m가 넘는 인공암벽을 타는 동물들이 의외로 많아 우리는 놀랐다. 표범, 원숭이, 들고양이, 다람쥐처럼 나무타기의 명수들은 출전자격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도 암벽 위에는 동물들이 우글우글했다. 도시화 된 밀림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분출한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사람처럼 동물들도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한 모양이었다. 체루아는 느리지만 침착하게 홀드를 잡고 한 발 한 발 올라가고 있었다. 악어는 진화가 느려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더니, 갑옷처럼 단단한 등과 방어막처럼 도열한 돌기와 톱날을 연상케 하는 꼬리가 오직 힘으로만 주변을 압도하던 고대시대의 전사처럼 완강해보였다. 우리는 신이 나서 응원했다.
“체, 체, 체루아 파이팅!”
“금메달, 금메달! 올라가! 올라가! 1등으로 올라가!”
우리의 응원이 등을 밀었는지 체루아가 기분 좋게 꾸욱! 꾸욱!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우리는 호프집에서처럼 예의 그 시끄러운 톤으로 떠들어댔다.
“야, 체루아 잘 올라가네.”
“그러게. 강에 사는 악어가 암벽 등반이라니, 토픽감이다.”
“대회 끝나고 나서 요 앞에다 ‘암벽 등반하는 체루아’ 라는 프랭카드를 걸어놓으면 어떨까? 그러면 밀림위원회에서 여기에다 ‘암벽 등반하는 악어’ 공원을 만들지도 몰라. 대회 마치고 나면 걔네들 심심해서 죽으려고 할 텐데 일거리 던져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냐.”
“그거 재밌는 생각이다. 자연구역에도 헬스기구 갖춰진 최신식 공원이 필요하지. 그냥 넓은 공터만 던져주고 실컷 뛰라니 신세대 애니멀이 뭔지도 모르는 처사지 뭐야.”
“넓은 공터를 던져주기는! 길도 제대로 안 만들어 놓았잖아. 거주구역이 유토피아라면 자연구역은 원시 그 자체야.”
“맞아. 자연구역은 개발할 필요가 있어. 맹그로브 숲 안쪽을 다 뒤집어엎고 산책로를 내고 헬스기구와 암벽등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열나게 흔들 스테이지도 좍 펼쳐놓으면 얼마나 멋지겠냐?”
“그럼 멀리 산에까지 갈 필요 없이 바로 요기 앞에서 등반을 하면 되겠네. 등반이 지루해지면 신나게 흔들고, 땀에 절면 저 앞에 있는 강으로 뛰어 들어 수상스포츠도 즐기고, 저쪽 전망 좋은 곳에 고급 숙박시설도 구비해 놓으면 아예 여기서 먹고 자고 운동하고 얼마나 좋아. 토털 쇼핑몰까지 있다면 그게 바로 유토피아지 뭐야.”
우리는 신이 나 침을 튀겨가며 떠들었다. 일분만 더 지나면 갖가지 놀이기구와 공연 무대와 카지노뿐 아니라 활주로까지 갖춰진 국제적인 시범 단지까지 등장하게 할 판이었는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수달과 여우가 끼애애애액! 끄어어어억! 소리와 함께 떨어져내렸다. 그러다 아예 안전매트가 세차게 출렁, 튀어 올랐는데 체루아도 떨어져버렸다.
“으으으, 체루아 좀 조심했어야지.”
여우 곤달이가 아파죽겠다는 듯 엉덩이를 문질러댔고, “꼬리, 꼬리, 아, 꼬리가……” 수달 해리는 꼬리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연거푸 읊어댔다. 용기백배한 체루아가 궁둥이를 흔들며 홀드를 잡다 꼬리로 양 옆의 동물들을 친 모양이었다.
어, 어, 어어어! 체루아가 허리를 뒤틀었다. 두툼한 안전매트가 충격을 흡수했을 텐데 허리 아프다고 난리를 쳐댔다.
“나, 아무래도 운동부족 같다. 잘 올라가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힘이 쭉 빠지더라고, 매일 술만 펐더니 근육이 다 빠져서 충격을 고스란히 다 받아 버렸나봐.”
자조적인 체루아의 말에 리들이 빈정거렸다.
“어이구, 등반 한번 하고 운동마니아 되셨에요? 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고기 뜯으면서 한잔 해. 그럼 통증이고 뭐고 다 사라질 거야.”
“너 채식으로 바꾼다며? 뭔 고기?”
호턴의 지적에 리들의 눈꼬리가 휙 치켜지다 제자리를 찾았다.
“나 말고 얘. 얘는 아직 육식주의자잖아.”
체루아를 끌고 관중석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리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서 먹기 대회 한다. 우리 한번 가보자.”
바로 전까지 앓는 소리를 내며 끌려오던 체루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디서? 궁금하니까 우리 한번 가보자.”
“니 허리가 가고 싶대?”
호턴이 이기죽거렸지만 리들과 체루아는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나와 벨이 프랜을 데리고 갔을 때, 리들은 벌써 대회에 참가했는데 채식 쪽이었다.
“오, 리들이 채식주의자 될 기회를 잡았나봐. 리들, 축하해!”
프랜이 제 일처럼 좋아하며 앞발을 흔들었고, 리들도 앞발을 모아 쥐고 챔피언이라도 된 것처럼 흔들어댔다. 원을 그리며 몰려선 동물들은 푸드파이터! 푸드파이터!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난감, 난처하고 어이 또한 없었지만 녀석을 끌어낼 수도 없었고, 끌어낼 방법도 없었다. 순식간에 채식호랑이는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했고, 진행자들은 리들을 건강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부각시키며 열렬한 박수와 응원을 끌어냈다.
“밀림의 왕, 호랑이 리들! 리들! 문명화된 밀림의 건강 아이콘으로 새롭게 등극한 우리의 리들에게 모두 사랑의 포효를 퍼부어줍시다!”
우우우어어엉! 뿌우우우우, 어흐흐흐엉! 동물들의 포효가 천지를 흔들었고 리들의 기분 또한 구름을 타고 날았다. 관중을 향해 한 앞발로 하트모양을 만들며 세레머니를 한 리들은 의기양양 표정으로 야채 한 무더기 집어 입안에 밀어 넣었다. 질겅, 질겅 씹었다. 어? 왜 자꾸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지? 미끄러워, 미끄러워 안 씹혀! 급한 성질대로 한다면 퇴, 뱉어버렸겠지만 수 많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리들은 야채를 우겨넣고 꿀떡 꿀떡 삼켰다. 야채가 목구멍까지 찼고 바구니가 완전히 비었을 때 리들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어때, 어때? 맛이 괜찮았지? 살이 쭉쭉 빠지는 소리 들렸어? 겅강이 쫙쫙 올라가는 거 같았지?”
프랜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리들은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 똥 참지 마. 빨리 싸는 게 이로울 거야.”
내 말에 리들이 풀 죽은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해야 빨리 싸는데? 풀 냄새가 뇌를 붙잡고 토하는 거 같아. 너무 힘들어.”
“가볍게 뛰어. 뭐 그러지 않아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바로 바로 나오겠지만 조금 더 빨리 싸고 싶으면 뛰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근데 나 왜 이러냐? 건강식을 먹었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 건데 좋기는 개뿔,”
“니 울퉁불퉁한 어금니로 잘도 섬유질을 씹어 삼키겠다. 육식에 맞는 네 짧은 소화기관은 어떻게 할 건데? 채식에 맞추어 떡가래처럼 쭉쭉 잡아 뽑을래? 으이구, 네 몸의 생리구조가 어떤지 그에 대한 인식부터 제대로 되어야 한다고. 과식하는 습관 고치고 운동하는 게 웰니스의 기본이야.”
다음 날 모임에 리들은 나오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계속 끙끙 힘을 주며 모임 장소를 화장실로 바꾸지 않는 한 나갈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