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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ef Oct 27. 2024

검은 자개 눈

 “음….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뭔가 구분이 있기 때문에 이름이 다른 거 아닌가요?”

 편집장이 빤히 바라보며 말끝을 올렸다. “이건 뭐 고양이도 아니고 살쾡이도 아니고”란 말을 삼킨 건 연진의 반응 때문이었다. 모욕적인 지적은 그녀를 흥분하게 할 것이고, 그러니까 표정이 굳고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등의 따위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았다. 

 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그린 살쾡이를 바라보았다. 짧고 뭉툭한 꼬리에 둥근 얼굴, 뒤쪽에 앙징맞은 흰 반달무늬가 있는 귀, 작고 빈틈없는 코, 사람 인(人)자로 찢어진 입,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불리는 양쪽 코에서부터 눈을 거쳐 정수리로 올라간 흰 줄, 그리고 검은 자개를 쪼개 박아놓은 것 같은 눈은 사실 큰 고양인지 살쾡인지 쉽게 구별되지는 않았다. 고양이와 살쾡이를 가장 쉽게 구분하는 것은 몸집의 크기와 반점, 그리고 이마의 흰 줄로 구분한다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눈이었다. 날카롭게 찌르거나 단번에 꿰어버릴 듯한, 아니 그 너머까지 움켜쥐어 비틀어버릴 것 같은 좁은 타원형의 검은 자개 눈이었다. 

 그것을 몰라서 반투명 눈동자에 창끝 같은 동공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이 볼 그림책이었다. 숲속 깊이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살금살금 나타나 “딱 닭 한 마리만. 어때요?” 라고 애교를 떠는 살쾡이는 어떨까 했다. 물론 편집장의 의도는 안다. 특징은 참이며 그 참을 통한 희화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특징을 살벌하게 그려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특징을 살려 다시 그려보세요.”

 편집장의 말에 연진은 움찔했다. 송곳 같은 그 눈이 무서웠고, 그 눈이 자신을 찌르고 드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다고 벌써 반 이상 진행된 일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동물 세밀화 작업은 보수는 괜찮은데 다른 데 써 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투 잡으로 연재 하고 있는 생활 툰에도 동물이 등장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통과되어야만 했다.  

 컴퓨터 화면에 눈을 박은 편집장의 옆모습이 완강해보였다. 그 따위 멘탈로 밥 먹고 살 수 있겠냐는 질책 담긴 모습에 연진은 풀이 죽었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정맥 현상이 뚜렷해졌다. 호흡까지 거칠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연진은 재빨리 고개를 꾸벅 숙이곤 돌아섰다. 그녀가 편집실 문을 여는데 학교 후배인 김대리가 따라 나왔다.

 “언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마. 편집장님도 언니 실력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얼굴 좀 펴. 살쾡이한테 한 수 배워라. 유연한 거 말이야. 이번에 그린 애가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지? 살쾡이가 그렇게 귀여울 수 있어? 때때로 두 얼굴도 필요한 거잖아.”

 “그래, 넘 귀여워서 차였다. 피곤해.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알았어. 얼른 가. 이따 전화할게.”

 김대리는 전화 거는 시늉을 하곤 사무실로 들어갔다. 낡은 건물의 일직선에 가까운 계단을 내려오는데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9층이었으니 엘리베이터를 탔어야 했는데, 탁탁 신발소리라도 내면서 걸어야 막힌 가슴이 뚫릴 것 같아서 계단을 선택했는데 잘못 한 거 같았다. 퇴짜 맞은 그림을 다시 그리는 건 마치 손에 깁스를 하고 그리는 것처럼 힘들었다.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제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금 전 퇴짜 맞은 건 살쾡이의 눈만 가시처럼 날카롭게 수정하면 통과될지도 모르지만 그러긴 싫었다. 얘는 얘고, 걔는 걔니까. 간신히 일층에 도착하자 숄더백 안의 전화기가 징징 울었다.          

 전화기를 꺼낸 연진은 잠깐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하느라 전화를 인제야 받냐?”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놀라 전화기를 땠다가 다시 귀에 댔다. 수 십 년을 들어온 목소리지만 귀에 바짝 닿는 건 매번 낯설었다. 

 “별 일 없으세요?”

 “소화가 안 된다. 별로 먹지도 않는데 배가 불룩해서 힘들어. 소화제 좀 사와.”

 “요양원에 소화제 있을 것 같은데요, 소화제 좀 달라고 해보세요.”

 “나는 한방 소화제가 잘 들어. 그걸로 사와.”

 “…… 네. 알았어요.”

 시간을 확인한 연진은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침 9시쯤에 샌드위치 한 개 먹어서 그다지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지금 출발해서 요양원에 다녀오면 4시가 훌쩍 넘을 텐데, 김밥이라도 한 줄 먹고 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건너뛰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기 싫은 일, 마주치는 게 불편한데다 왜 나만 하느냐는 불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연진은 사소한 것 앞에서 갈팡질팡거렸다. 도깨비바늘이 우거진 풀밭을 걷다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을 떼 내는 것에 정신 파는 것처럼, 연진은 계속 김밥을 먹을까 말까만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김밥 집 두 군데를 지났고 ‘나만’ 이라는 불만이 가라앉았고 울렁거리던 속도 좀 진정되었다.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구매한 연진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전광 안내판에 15분 후에 요양원쪽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도착한다는 문구가 떴다. 연진은 건너편 과일 가게를 바라보며 감귤을 살까말까 망설이다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보고 길을 건넜다. 

 요양원에 들어서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연진을 맞이했다. 요양원 거실에 네 명의 노인들이 앉아있었는데, 엄마는 또 닭 장사 하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노인들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창밖을 보거나 서로 속닥이거나 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극을 재현하듯 침을 튀기느라 연진이 왔다는 것도 몰랐다. 요양보호사가 따님 왔다는 말을 하자 엄마보다 다른 분들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어 어디 아퍼어? 으으째 피죽도 못 먹은 꼬아지여(꼬라지여)?”

 뇌출혈로 심한 수전증에다 언어장애까지 온 엄마와 한 방에 기거하는 문태숙 할머니가 연진을 올려다보며 겨우 말했다. 

 “아니에요. 안녕하시지요?”

 연진이 문 할머니의 안부를 묻자 엄마가 눈을 흘겼다. 자기 안부부터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뇌졸중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은 엄마는 이전보다 더 왁살스러워졌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소홀하다 싶으면 눈부터 흘겼다. 바늘 끝 같은 눈초리에 찔끔한 연진은 마른침을 삼키곤 재빨리 가방에서 약을 꺼내주었다. 

 “엄마 어떠세요? 아직도 속이 불편하세요? 여기 한방 소화제요. 잘 듣는대요.” 

 흐응음, 엄마는 이내 약에 관심을 보이고는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썼다. 

 “생약 소화제. 갈근, 진피, 창출… 재료가 좋구만. 소화불량, 체함, 구역…에 좋다고? 딱 나한테 맞는 약이고만. 여, 여, 나 물 좀.”

 요양보호사에게 물을 청한 엄마는 연진을 보더니 입을 삐죽였다. 왜 너만 왔냐는 타박이 담겼지만 연진은 모른 체 했다. 

 “큰 딸이여?”

 명치까지 올라오는 복대를 찬 처음 보는 분이 연진을 보다 엄마에게 물었다.

 “쌍둥이여.”

 “긍게 큰딸이냐고? 큰 딸이 엄마 말이라믄 끔벅한다고 했잖여. 우리새끼들은 엄마를 개X으로 알아서 소화제 사오라고 하면 소화 좀 안 되는 것이 병이냐고 개지X을 했을 건디.”

 “내가 이것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지X을 하겄어. 내가 닭 피를 뒤집어써가면서 잠 한번을 제대로 못 자고 일하고 식구들 밥 해먹이고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학비 대줘가며 키웠어. 내가 그랬다고! 내 뼈가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그랬어. 연진이 너도 그런 건 다 알고 있잖어?”

 엄마가 오금을 박듯이 물었고 연진은 잠깐 엄마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는 기억왜곡 현상도 불러일으킨다고 하지만, 엄마의 기억 왜곡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연진은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엄마의 욕구가 반영된 희망사항이었는지, 아니면 그러지 못한 부채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늙은 할망구는 내가 닭 피 뒤집어 써가며 번 돈으로 옷 사 입고 지 좋아하는 고기 사 퍼먹으면서도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고. 절대로 용서 못 헌다니까. 그 늙은이 때문에 내가 피똥 싸면서 자식들 업어 키웠어. 아주 뼛골이 다 삭았다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엄마는 신세한탄을 이어갔다.

 “닭 잡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겄고만 뭔 자식들을 업어 키워. 애들은 노인네가 키운 모양이고만.”

 고관절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고순지 할머니의 말에 엄마가 눈을 찢었다.

 “우리 집 와서 봤어? 그 노인네가 우리 애들 키우는 거?”

 “보고 말 것이 어디 있어? 말만 들어도 다 알겄고만.”

 “하이구, 천재 나셨네. 말만 듣고도 다 아는 사람이 왜 이런 디서 생고생을 하고 있디야.”

 “또, 또, 또 쌈 나겄네. 그만들 혀. 어이 딸, 맛있는 거 갖고 왔으면 좀 내놔봐. 입이 심심해 죽겄다.”

 가슴 졸이고 있다 복대 할머니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연진은 후다닥 감귤 봉투를 열었다. 감귤 몇 개를 덜어 그간 친해진 이용희 요양보호사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한테는 매번 안 줘도 되요. 너무 얻어먹으니 미안하잖아요.”

 그 말을 엄마가 뚱하니 받아쳤다.

 “줘도 뭐라고 하네. 안 먹을라면 이리 줘?”

 “미안해서 그러지요. 어우, 올해 먹어본 귤 중 제일 맛있네. 다들 드셔보세요. 입에서 녹아요. 녹아.”

 이용희 요양사가 귤을 깨물며 넉살을 떨었다. 

 복대 할머니가 귤을 까 엄마에게 건넸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마비가 온 오른손을 떨며 왼손으로 다리를 주물렀다. 주무르다 주먹으로 때리는 모습에 연진은 조마조마해 하며 자신을 탓했다. 나는 왜 이렇게 비위가 없을까? 왜 넉살이란 걸 장착하지 못했을까? 엄마가 까칠해지면 아양도 떨고 스리슬쩍 넘어가도록 유도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엄마가 그럴수록 석상처럼 굳어서 가까이 가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했다. 지금이라도 엄마 곁으로 가 다리를 주물러주면 화가 풀릴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건 알지만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낯선 사람들이 쭉 둘러앉은 상태에서 언죽번죽거리는 게 쉽지 않았다.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눈앞이 빙빙 돌았다. 빨리 밖으로 나가 차가운 공기를 쐬어야 할 것 같았다. 연진은 좀 바쁘다며 그만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이년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는 거야?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얼마나 아프냐고 묻지도 않고, 약도 안 발라주구, 밥도 못 먹어서 살이 쭉 빠졌는데 불쌍하다고도 안 하고, 엄마하고 놀지도 않고 간다고 햐? 으어엉, 다 소용없어. 손톱이 까지도록 업고 물고 키웠지만 엄마만 미워하는 년이야. 흐허어어엉…”

 손바닥으로 당신 다리를 치면서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용희 요양사가 잽싸게 엄마에게 다가가 달랬다. 연진에게 빨리 가라고 눈짓을 하며. 생떼 써도 되는 대상이 옆에 있으면 좀처럼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연진은 사죄라도 하는 양 고개를 푹 숙여 몇 번 인사를 한 뒤 요양원에서 나왔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엄마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서둘러 버튼을 눌렀다.  


 연진의 엄마 양수민은 전국 5대 전통 시장이라고 불리는 왕명시장 골목 끝에 ‘효민닭’ 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남편 김효신과 양수민 두 이름의 첫 자와 끝자를 따 만든 상호였다. 김효신은 양계장을 운영하고 양수민은 닭을 팔았는데 ‘효민닭’은 왕명시장에서 꽤 유명했다. 흰 얼굴에 진한 눈썹, 선분홍빛 루즈, 커다란 링 귀고리와 붉은 매니큐어로 치장한 양수민은 굵은 통나무 도마에 닭을 올려놓고 한 손으로 닭을 잡고 탕, 탕, 탕. 탕 도끼칼을 내려쳤다. 그 일정한 리듬과 균일한 조각은 살벌하게 아름다우면서 묘기처럼 능란해서 닭을 사러 온 사람들은 자기 몫을 받고도 한참씩 그녀의 퍼포먼스를 구경했다.

 2층 살림집에서는 탕탕탕 소리에 맞춰 연진의 할머니 박대순이 욕을 퍼붓고 있었다. 연진과 그녀의 언니 미진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우며, 애 엄마라는 여자가 애들 교육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느니, 칼질에 미쳐서 살림을 개판으로 한다느니, 그 통에 늙은이 뼈가 다 삭고 있다느니 라며 끝도 없이 욕을 해댔다. 용호상박은 걸출한 영웅들의 갈등만은 아니었다. 어떤 관계에서든지 존재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보다 사납게 주변까지 찢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연진은 10살이 되기도 전에 알았다. 

 양수민의 현란한 차림을 보며 박대순은 집을 헐어 술집이나 차리라고 막말을 했고, 양수민는 며느리가 누더기를 걸치고 닭 모가지 내려치는 게 좋냐고 받아쳤다. 양수민은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되면 닭을 치던 그 기세로 무조각을 탕탕 쳐냈고, 파 한쪽도 타다다닥, 요란하게 썰어 제쳤다. 그러면 박대순은 칼을 함부로 휘둘러 집에 살에 끼어 콩가루 직전이라고 나무라고, 양수민은 칼질이 세서 장사 잘되는 줄 모르냐고 응수했다. 

 두 사람은 외양부터 완전히 반대였다. 박대순은 키도 크고 살집이 있었는데 반해 양수민은 작고 야무졌다. 박대순은 가무잡잡하면서 완강한 턱 선을 가졌는데, 양수민은 희고 고운 계란형이었다. 그런데 눈매만은 두 사람 다 매서웠다. 그것이 기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갈등으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데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건 똑같았다. 막상막하, 난형난제로 부딪쳤다하면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날씨를 가지고도 한번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는데 일테면 이런 식이었다.

 “내일 비 온다네.”

 “별이 총총 나왔는데 무슨 비냐? 비 안 온다.”

 “날씨라는 게 갑자기 흐려질 수도 있는데 뭔 별 타령이에요? 일기예보가 온다고 하면 오는 줄 아세요.”

 “일기예보 틀리는 거 한 두 번 겪었냐?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 하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정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살펴보면 실패할 일이 없다.”

 “어머님처럼 할 일 없어 심심해 죽는 사람이나 하늘 올려다보며 시간 보내지, 저처럼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은 쳐다 볼 시간이 없다는 거나 아세요.”

 “밤 열두시 넘어서까지 술 퍼먹을 시간은 있고? 그리고 내가 왜 일이 없냐? 나도 내 밥값은 다 하고 있다.”

 “제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줄 아세요? 그게 다 비즈니스라고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 다 니 맘대로 해먹어라.”

 “흥, 다 제 마음대로 할 테니까 제발 설치지 좀 마라고요! 지겨워죽겠다고요.”

 “뭐가 어째!”

 하루 온 종일을 이런 식으로 싸운 적도 있었는데, 양수민에게 기대 양계업을 하는데다 태생이 유약한 김효신은 발언권 한번 얻지 못하고 집 밖으로만 나돌았다. 

 양수민과 결혼 말이 오갈 때, 김효신은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고 했고, 양수민 또한 아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들 한 명뿐이라는 허전함을 누르며 살아온 박대순은 아이는 많을수록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렇게 저렇게 닦달을 해도 김효신이 시큰둥해 하자 박대순은 며느리인 양수민을 들볶았다. 결혼 일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이 소식이 없자 “너 혹시 문제 있냐? 왜 아직까지 아이 소식이 없냐?”라고 돌직구를 날리곤 했다. 그 말 듣고 가만히 있을 양수민이 아니었다. 집이 뒤집어지지만, 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박대순의 닦달 때문인지 피임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양수민은 결혼 6년 차에 쌍둥이 딸을 낳았고 산후회복이 되자마자 불임수술을 했다. 늘어진 뱃살을 커버하기 위해 거들로 허리를 조여 매고 닭을 잘라 팔았다. 쌍둥이 자매는 박대순이 키웠다. 엄마 젖 대신 할머니의 쳐진 젖가슴을 조몰락거리고, 엄마와 할머니처럼 자매 또한 물어뜯고 할퀴고 때려가며 나이를 먹었다. 

 한집에 산다는 건 많은 것을 공유해야한다는 뜻이다. 공유한다는 건 다툼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 것, 이라는 소유욕이 생기면서부터 아이들은 툭하면 투닥거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연진이 울음을 터트리고, 할머니의 잔소리와 회초리가 쌍으로 등장하고, 박대순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양수민은 야구방망이로 천장을 쳤다. “차라리 가게를 따로 낼 걸.” 이건 가족 모두의 바람이었다. 

 애초에 연진은 미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진은 말보다 몸을 먼저 움직였다. 손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꼬집혔다하면 바로 상처가 났고 손톱독까지 올라 빨리 낫지 않았다. 그래도 독을 오른 손등의 상처를 긁어대며 연진은 악을 썼고, 미진은 기다렸다는 듯 킥을 날렸다. 거친 행동력 때문인지 미진은 옷부터 신발, 학용품까지 항상 먼저 차지하고, 맛있는 것을 통째로 퍼먹을 수 있는 첫째의 위세를 고스란히 누렸다. 어쩌면 엄마와 할머니의 싸움을 보며 먼저 치고 나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일치감치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자매가 부당한 관계로 자라고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박대순에게는 양수민 뿐이었고, 양수민에게는 박대순 뿐이었다. 미움도 사랑 못지않게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보다 더 막무가내로 달렸다. 두 사람은 모든 촉을 세워 서로를 주시하고 틈을 노렸다. 그것을 서로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듯 생을 이어갈 기본 에너지만 빼고 남은 것은 모두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투에 쏟아 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수민이 음독을 했다. 여느 날과 달리 탕탕탕 소리가 나지 않아 들여다 본 이웃 채소가게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며 할머니를 찾았다. 연진은 그때,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는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할머니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웃집 아저씨가 엄마를 들춰 메고 병원으로 달려갈 때도 할머니는 뒤따라가지 않고 구석에 쌓여 있던 술병들을 박스에 담아 슈퍼로 갔다.

 연진은 죽음도 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할머니는 엄마를 꿰뚫어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결코 치사량은 넘기지 않을 거라는 것을. 엄마 또한 약을 털어 넣으며 치밀하게 계산을 했을 거고. 소동 이틀 만에 집은 다시 전장으로 변했다. 아니, 이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공기조차 창끝처럼 날카로워져서 아무나 찌르고 아무데나 후벼 팠다. 창끝 같은 공기 속에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양수민과 박대순, 미진과 연진의 공고한 대결 구조 가운데 김효신은 홀로 관전했다. 김효신로서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딸들에게라도 아버지의 위엄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미진은 양수민 편에, 연진은 박대순편으로 나뉘어있었으니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모두가 김효신에게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게 나 몰라라 하냐고. 그러면 김효신은 벌컥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누구 편에 붙기를 바라는 건데!”

 김효신은…. 김효신을 생각하면 연진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빠 라는 사람 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빠와 손을 잡았다거나 얻어맞아본 기억이 없다. 아빠가 뭔가 말을 해준 적이 있었던가? 언젠가 아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 깊이 가라앉은 그 눈이 무슨 말인가를 할듯할듯하다 말았다는 안타까운 기억만이 가슴에 박혀 있을 뿐이었다. 

 시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 박대순은 나날이 늙어갔지만 분기만은 여전히 탱천했다. 엄마 양수민 또한 중년의 나이를 넘기고 노년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팔팔하게 맞섰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엄마는 어째서인지 말이 없어지더니 식사량까지 줄어들었고 급속도로 늙어갔다.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주름이 깊이 파이고 어깨가 늘어지더니 수전증이 생겼다. 수전증이 엄마를 일깨웠는지 한 동안 등산을 하며 기력을 되찾는 듯싶었는데, 뇌경색이 왔고 오른쪽이 마비되고 길을 잃고 물건의 소재를 기억하지 못해 온 집안을 들쑤셔 놓는 등 치매증세를 보였다. 병원에서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더 이상 심해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자진해서 요양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요양원 생활 후 점점 기력을 회복하더니 어느 정도 예전의 전투력을 되찾았다.    

 엄마가 뇌졸중으로 치매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들어간 지 4일째 되던 날, 아빠는 양계장을 처분해서 시골로 내려왔다는 것을 톡으로 알려왔다. 그 말에 외에는 엄마의 안부도 딸들의 안부도 묻지 않았고 아빠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다는 말도 없었다. 마치 세 줄짜리 기사를 읽는 것 같았다. 아빠 방에 들어간 연진은 언제나 잠겨 있던 아빠의 서랍이 비어 있고 옷가지와 가방, 면도기 등도 다 가져갔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4일 전에 왔다 갔는지, 어제 왔다갔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가족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았고 그녀도 미진도 굳이 아빠의 행적을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진은 아빠의 빈 서랍을 닫으며 어쩌면 아빠는 오래 전에 피난처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 앞으로 온 편지가 있었다. 편지 봉투 안에 마른 꽃잎인지 뭔지가 들어 있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궁금해서 살살 뜯어보고 있을 때, 마침 들어온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며 편지를 낚아채 갔다. 뭔 귀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지를 들고는 서둘러 방문을 닫던 아빠의 모습이 더 궁금증을 키웠서, 연진은 살금살금 걸어가 방문 앞에 귀를 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울든지 웃든지 해야 하는데 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지 이상해 하며 몇 발짝 물러서 있을 때, 아빠가 방에서 나왔다. 표정이 희한했다. 아마 숨겨놓은 보석 밭에 구르면 그런 표정이 될 것이다. 얼이 빠진 것 같으면서 신이 난 것 같고, 신이 난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알면 안 된다는 묘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때 아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댈 곳이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의 숨통 조이던 그 관계에 무심했던 거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를 책임지는 대신 자신의 세계를 새로 구축해온 아빠를 비난해야 하는 걸까? 연진은 창문에 어룽지는 어스름을 바라보며 잠깐 생각했다. 

 “너 또 요양원에 갔냐?”

 벌컥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미진이 짜증이 연진의 귀청을 찔렀다. 그 순간, 연진의 속에서 불덩이가 확 치솟았다. 

 “야만인이냐? 노크 같은 거 할 줄 몰라!”

 “노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져 있을 때냐? 니가 자꾸 요양원에 가니까 엄마가 전화해대잖아!”

 “전화하는 게 뭐가 문제냐?”

 “엄마는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하잖아! 너 그게 얼마나 미치는 일인지 알어!”

 “빨리 받으면 해결될 일이고만. 니 심뽀가 문제라는 걸 알아라.”

 “삐질 삐질 일감 얻어오는 프리랜서라는 작자하고 대기업 대리하고 입장이 같냐? 어? 넌 대가리라는 게 없어? 하긴 너 같은 똥멍청이는 회의 중에도 전화질일거다. 지 밥도 제대로 못 찾아먹는 너 같은 개똥은 누가 좀 찾으면 납작 엎드려서 여봉세용, 저 쩐진인데용…”

 짝! 소리와 동시에 미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번개처럼 일어나 따귀를 갈긴 연진도 맞은 미진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고, 연진이 폭력을 행사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야! 먼저 상황을 알아챈 미진이 소리를 꽥 질렀다. 뭐! 이년아! 연진의 눈에서 불이 활활 뿜어져 나왔고 다시 손이 날아갔다. 몸을 굽혀 간신히 피한 미진이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연진이 잽싸게 문을 잠갔다. 너 오늘 죽여 버릴 거야! 연진이 칼날을 문 것처럼 뱉어냈고, 미진은 하얗게 질렸다.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화를 내면 말릴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났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도움을 청하려야 청할 사람이 없었다. 딸들이 무지막지하게 다퉈도 부모는 말리기는커녕, 중재도 할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둘이서 피를 튀겨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미진은 물러서지도 용서를 빌고 싶지도 않았다. 육박전을 치르던지, 어디가 부러지든지, 아니면 죽는다 해도 그건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연진을 제압할 방도부터 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군림까지는 어렵다 해도 설설 기지 않을 수 있었다.

 “너 미쳤어?”

 “태어나면서부터 미친년이 누구 보고 미쳤냐고 물어!”

 연진이 어금니를 아득 문채 내뱉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살기어린 목소리에 미진은 마른 침을 삼켰다.  

 “너 같은 악마는 가족도 자매도 아니야. 죽어 마땅한 족속일 뿐이야.”

 “소설 빌리지 마. 그저 소설일 뿐이야.”

 ‘죽어 마땅한 사람들(피터 스완슨 저)’을 읽고 있던 연진을 떠올리며 미진이 달래듯 목소리 끝을 내렸다.

 “흥, 겁나냐? 내 손에 작살날까봐?”

 “뭐, 죽이고 싶으면 죽이든지. 내가 그 동안 너 엿 많이 먹였는데 분풀이하려면 지금 해. 앞으로 다시는 이런 기회 없을 테니까.”

 “미친 년! 악마 같은 년!”

 악담을 퍼붓는 연진의 눈이 검은 창끝 같았다. 미진으로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빛이었다. 어쩌면 끝이 올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슬프지도 않았다. 지치게 봐온 집안싸움이 자매에게서 끝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니가 입버릇처럼 말했지! 선제권이 중요하다고. 먼저 기세를 잡아야만 부려먹을 수 있다고도 했지. 아주 좋은 걸 깨우쳐 주셨어!”

 연진이 빈정거렸지만 미진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렸을 땐 니 사악한 손찌검 때문에 저항을 못했지만, 커서는 더러워서 반응하지 않았다는 거나 알아라. 사람이 사람 같은 짓을 해야 반응을 하는 건데, 넌 사람도 아니니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섞겠냐?”

 “뭐?”

 “너 나하고 언제 말해봤는지 생각해봐. 싸울 때 외에 차분하게 말해 본 적이 있어?”

 “…… ……”

 연진의 마구잡이 말도 연진이 내뿜는 살벌한 맹독도 설득력이 있어 보여 미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가!”

 연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떤 폭력으로 표현될지 몰라 미진은 움찔 옆으로 피했다.

 “나가라고!”

 연진이 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졌다. 박스가 날아와 미진의 얼굴을 쳤고, 철사로 골격을 만든 인형이 날아와 머리를 가격했다.

 “적당히 해라.”

 “나가라는데 왜 안 나가고 지랄을 하는 거야! 너 정말 죽고 싶어!”

 연진이 악을 썼고, 미진은 순간 알았다. 연진이 더 꼭지가 돌면 분명히 사달이 날수 있다는 것을.

 파장을 한 시장 골목은 낮 동안의 북적거림을 잊을 정도로 고요했다. 발걸음이 뚝 끊긴 고적한 밤이었지만 이층 벽돌집은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각자도생을 해야 할지, 아니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할지, 기로에 선 자매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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