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자기인식 가운데 새로이 접하게 된 ‘문학치료’라는 학문은,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니고 있던 사고의 방향을 조금씩 전환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 여태까지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았던 나의 사고에, 조금씩 지각변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이론서를 읽어나갔다. 지난 나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고, 내가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내가 나를 잘 모르겠으니,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들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자 했다. 나를 알고 싶었다. 그 과정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변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마치 면죄부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 첫걸음은 대학원 첫 학기에 들은 <발달심리학과 문학치료> 수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러 학자의 이론들을 읽으며 자꾸만 멈춰서게 된다.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동안 날 괴롭혔던 사건들이 더욱 구체성을 지니며 선명해지기도 한다. 상담 사례도 아니고, 무미건조한 이론일 뿐인데, 자꾸만 눅눅한 늪지대가 되어서 날 수렁으로 빠트린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것이 버겁다. 속도가 나지 않아 힘들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계속 텍스트의 의미 사이에 갇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꼼짝달싹 못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동안 난 계속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계속 어릴 때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걸까. 왜 계속 화가 나는 걸까. 감당하지 못할 분노와 억울함이 시시때때로 떠오른다. 이 분노와 억울함의 이유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몰라서 더 불안하다.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2019년 1학기 <발달심리학과 문학치료> 필기)
하지만 첫 변화의 진통을 겪기란 마냥 쉽지 않았다. 숨구멍이 트이는 느낌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경험했다. 이론서를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마치 땅속에 있는 고구마가 줄줄이 나오듯, 여러 사건과 감정이 연속적으로 딸려 올라왔다. 그동안의 삶에서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침습적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의식의 지층 위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여러 매듭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채였다. 아직 미해결된 문제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자꾸만 새로운 화산이 연이어 생기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묻어두고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이 마구 올라오자 너무 당황스러웠다. 개중에는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벌레 같은 감각과 감정도 있었다.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던 묵은 감정과 기억들이 다시 부유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이 잔뜩 혼탁해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폭풍전야와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결국 허리케인이 강타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이 감정과 생각들을 소화하고 감당해야 하나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촉발되는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의 이유와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향해야 하고, 어디에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그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감정은 나를 더욱 우울감에 빠트렸다. 그 분노와 억울함의 대상이 ‘어머니’인 것까지 알아채다가도, 곧바로 포기와 체념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뭐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이 억울함과 답답함을 직접 얘기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더욱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동시에, 빨리 이 족쇄와도 같은 감정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무기력과 조급함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치이기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스러움을 잔뜩 끌어안고 일상을 살아가다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쓰러져 깊이 잠에 빠져들곤 했다. 기계의 전원을 끄듯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집에 도착하자마자 퓨즈를 차단하고 잠으로 회피했다. 생활이 조금씩 불균형해지기 시작했고, 마음속의 혼란함이 늘어나는 속도와 비례하여, 빨래나 설거지, 청소 등 챙겨야 하는 집안일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고인을 향한 분노는 애착 행동을 통하여 대상을 되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또한 죽음은 삶의 종착지와도 같은 것이기에, 사별 이후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무능감이 동반되는 불안정한 감정의 혼합체라고 볼 수 있다. 분노는 상실과 연관된 감정으로, 사별자는 애도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며 매우 혼란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다.
저는 석사 1학기 들어와서 들었던 발달심리가 저한테는 너무 힘들고 너무 충격이었거든요. 말해준 거랑 같은 맥락으로 너무 충격이었어요. (중략) ‘어릴 적에 부모랑 그렇게 애착 관계를 못 맺은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계속 그렇게 될 거야’라고 말한 학우분이 계셨거든요. 그 말이 제게 너무 큰 충격으로 남은 거예요. 나는 그거를 해결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그렇게 안 되면 나는 어떡하지 약간 그런 생각.
(집단상담 6회기 축어록, 20.12.22)
특히 발달심리학적으로 유년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돌봄과 양육을 받지 못할 경우에 대한 이론을 배울 때마다 생각이 계속 텍스트 사이에 갇혔다. 책에서 말하는 의미 맥락들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그때의 내가 겪었던 게 이런 의미인 걸까’라는 생각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댔다. 전체적인 큰 그림에서 선행 연구자들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야가 가로막힌 경주마처럼, 거듭해서 내 생각과 과거에 몰두하게 되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마치 꿈속을 걷는 것같이 흐릿한 기분이었다. 무엇도 명료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고, 생각도 또렷하지 않았다. 모호하고 몽롱한 것들 사이를 배회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밖에 비유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조차도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각의 일부였다. 내 주변을 비롯해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전부가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불안함의 대상이었다.
A씨는 여덟 살 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깊은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였다. 그는 애도 과정을 피하기 위해 억압과 고립의 방어기제를 사용했으며 아내를 만날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정서적 관계도 갖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 이상이었다. 가장 중요한 대상관계가 형성되는 데 지장이 생겼고, 이는 63년간 그렇게 작용했다. 안전과 우정에 대한 자원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그는 우울해지고 억압적이 되었다. (중략) 그러나 잠복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유아기 대상 분리의 발달선상에 멈춰서게 하였다.
Calvin A. Colarusso, 앞의 책, 임상 사례에 대한 추정 진단 부분, 231면, 밑줄은 인용자.
그러나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위로받는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평범한 이론서들을 통해서 받는 위안과 안도의 느낌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나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사례 속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마주하며, 내가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례 속 그 사람의 말과 상황에 공감이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사례들을 통해 선행 연구자들이 설명하는 어려움의 ‘원인’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 혹은 ‘증상’들은, 나로 하여금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런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지닌 것이 ‘어딘가 하자가 있거나, 단단히 고장 난 것’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오랜 시간 끈질기게 반복되어왔던 나의 자기 비난을 서서히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단기간에 한 번에 일어나지 않았다.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일어났고, 스스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그보다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과정 가운데 다시 자기비하 패턴을 반복하기도 하며, 관성적으로 익숙한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때의 이 위로받은 순간 얻은 힘과 경험을 원동력 삼아 계속해서 그 늪을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견뎌내곤 했다.
사실 나의 유년 시절이 지금의 나에게 그렇게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지닌 심리적인 어려움의 근원은 ‘어머니를 사별’한 경험으로 인해 생긴 외로움과 결핍에 있다고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별한 그 날’ 이후에 겪게 된 어려움만 다루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어머니를 애도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보다 더 깊은 곳에 존재했다. 이 내 안에 엉켜있는 이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내가 인식한 시간대보다 훨씬 이전의 타임라인으로 영점조절을 하여, 어린 시절의 나를 직면하는 일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이 암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쑥불쑥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들이 떠올랐고, 자동적으로 좌절과 절망, 고통, 우울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파편처럼 날아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나는 이걸 외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스스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안 된다며 질책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회피했다. 그래서 이런 감정들이 올라올 때마다 애써 덮어두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려, 집에 돌아오면 방전된 채로 누워있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보다 더 크게 자리했던 것은,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우울하고 답답한 이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침대 위에 잔뜩 쓰레기와 물건들로 어지럽혀진” 그 감정들은, 내가 어머니에게 가졌던 해묵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너무 오래되고 아교처럼 뭉쳐, 도저히 원래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그 기원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나는 잔뜩 썩고 부패하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끈끈하게 고착된 이 감정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동안 ‘덮어두기’에만 급급했던 그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조금씩 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현재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회피하거나 막지 말고, 그저 올라오는 대로 온전히 마주해보기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플라스의 소설을 우울증에 관한 것으로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벨 자』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을까? 조현병과 일상생활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렇듯이, 『벨 자』에서 묘사된 ‘우울증’은 격노와 공포를 점잖게 포장한 것이다. (중략) 내가 대학생 청중에게 “에스더/실비아는 무엇을 방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이 그 소설 전반에 걸친 지배적인 정서적 주제가 멜랑콜리의 무망감과 무력감이 아닌 분노와 공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George E. Vaillant, 김진영·고영건 역, 『행복의 지도』, 학지사, 2013, 330면. 밑줄은 인용자.
현재 느끼는 감정들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하고 나서 경험하게 된 발견-깨달음의 순간은 한참 동안 나를 발견의 환희에 젖어 들도록 만들었다. 조금 더 깊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감정의 기원을 파악하고 싶어, 이론서의 행간에 머물렀다. 수업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고 다양한 논의가 오고 갔지만, 난 계속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평범한 이론서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표면적으로 인지한 나의 무력감과 우울감의 기원이 ‘분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나의 자기이야기를 탐색하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 가운데 그동안 무명의 감정으로만 존재했던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농도가 짙은 목마름이 해갈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내가 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정,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들끓었던 정서의 동요가, 분노. 그것도 격한 분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고, 지금까지의 내 감정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느끼는 감정에 ‘분노’라는 이름표를 붙여줄 수 있다니. 그동안 뿌옇게만 느껴졌던 나의 심리적 어려움이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발견-깨달음을 기점으로 하여 나는 계속해서 더욱 나를 알아가고자 힘썼다. 다음으로 탐색하게 된 것은 ‘그렇다면 이 분노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이 질문이 뇌리에 맴돌았다.
나는 그동안 쉼 없이 2008년 시간에 멈춰서 있는 어머니를, 객관화하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또 그러면서 점차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지점들이 생기기도 했다. 홀로 죽음과 싸울 수밖에 없는 고독한 지점들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지. 그리고 그런 고독한 싸움 중에서 남아있을 어린 딸의 유약함이 참으로 초조한 마음이 들게끔 만들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기까지 상당기간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나’는 거대한 ‘어머니’에게 저 외침을 남기기를 원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내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장면을 통해, 내가 완의 위치에서, 나 역시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말들은 완의 입을 통해 나온 나의 말이 되었고, 내 몸짓이 되고, 내 눈빛이 되어, 대변해주는 대상이 되었다. 물론, 100% 일치하는 해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일정 부분 완의 입을 통하여 나온 파편들이, 내 안에 존재하는 화학작용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준 것이다.
(2019년 1학기 <현대문학과 문학치료> 기말 과제)
하지만 인지함과 그것을 수용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직면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곧바로 인식의 전환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것이다. 나의 상태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인하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2019년 1학기에 <현대문학과 문학치료> 수업 기말 과제로 제출한, TV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성찰한 삶의 지점들을 보면, 그러한 부분이 잘 드러나 있다. 여전히 내면에서 ‘거대한 군주’로 자리한 어머니를 내리지 못한 채, 인식한 사실 요소들을 표면적으로 나열한 수준에 그친 것이다.
이때의 내가 빠졌던 딜레마는 바로 내 안에 자리한 ‘분노’와 ‘죄책감’의 양립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죄책감의 부채가 ‘분노’를 온전히 발산하고 해소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 두 감정의 괴리감으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분노가 맞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도 들었다. 또한 과연 이 두 개가 양립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이러한 사고 이면에는 이전부터 내가 감정을 인지하고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에, 스스로의 깨달음을 신뢰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과연 어머니를 분노의 대상으로 봐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내 안에서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 즉 ‘화’라는 감정은 종국에는 용서를 견인하는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라는 단어가 어머니와 나 사이에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그 질문들에는 쉽사리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감히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 안에 맺힌 출생에 대한 죄책감은 나의 이런 질문을 거세했다.
난희의 대사*가 나올 때는 내 내면에서 더 격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완이가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된 것도 나와 동일한 접점이었으며,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의 꿈’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의 ‘나’가 너무 가엾게 여겨져 억울함이 치솟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억 안 나? 나는 너무나 또렷이 기억나는데”라는 완이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다. 스스로 안전해지기 위해서 봉인해두었던 기억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유년 시절, 아마도 나만이 기억할, 일방적인 정서 고립의 상황들이 물밀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내 안의 ‘나’는 완이와 함께 외치고 있었다. “난 엄마로부터 그만 벗어나고 싶어.” (중략) 하지만 이어서 나오는 완이의 고백** 또한 나의 고백이었다.
(2019년 1학기 <현대문학과 문학치료> 기말 과제)
* 난희의 대사:
자신이 엄마의 소유물이냐고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차 소리치는 박완을 향해 장난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연히, 넌 내 거지!”, “넌 내가 낳았는데, 나 죽을 생각하면서, 널 어떻게 두고 가! 널 어떻게 두고 가!” 해당 대사는 지문을 제외하고 장난희의 대사만 가져왔다. (노희경, 『디어 마이 프렌즈 1』, 북로그 컴퍼니, 2016, 42면)
** 완이의 고백:
“(N) 비열하고 비겁한 박완. 왜 너는 삼십 년 동안 묻어둔, 그 얘길 이제야 이렇게 미친년처럼 터트리는 건데.. 너는 그때도 엄마를 이해했고, 지금도 엄마를 이해해. 근데, 왜 너는 지금 엄마를, 이렇게 원망하는 건데. 정말, 그때 그 일이 니 평생의 한이었다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단 한 순간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고? 아니. 너는 알고 있어. 그때, 엄마가 잘한 짓은 아니어도 그럴 만했단 걸.” (노희경, 『디어 마이 프렌즈 2』, 북로그 컴퍼니, 2016. 43면).
2019년 1학기 당시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했던 부분은 두 모녀 캐릭터 ‘박완(고현정)’과 ‘장난희(고두심)’의 갈등이 폭발하는 씬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왜 이렇게까지 어머니에게 분노의 감정이 치솟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제 막 내 감정이 ‘분노’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름을 붙여줬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가진 ‘분노의 기원’을 제대로 들여다보길 외면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감정들과 함께 따라오는 이 의문들이 불편했던 나는, 질문하기를 멈춘 채 회피해버렸다. 내가 어머니에게 가져도 되는 감정인가에 대한 죄책감 내지는 불안함이 엄습하여 직면하기를 거부했다. 분노의 기원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감정의 표층만을 파악한 상태에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저 현재 느끼는 감정이 ‘분노’라는 깨달음에만 머물기를 취사 선택한 것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이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파악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깊이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은 나를 주지화의 방어기제를 쓰도록 만들었다. 표면으로만 인식만 것을 얼기설기 끼워맞추며, 내가 느끼는 감정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으로만 접근했다.
하지만 그 상태는 나에게 계속해서 불안함만 더해줄 뿐이었다. 나 홀로 구명정에 탄 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만 같았다. 위로는 작열하는 태양이, 그리고 아래로는 해수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이 나를 괴롭게 만들며 갈증이 나도록 만들었다. 이 갈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드넓은 바다에 혼자 외딴섬처럼 둥둥 떠 있다고 생각하니,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그리고 또 어떻게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첫 학기 당시 내가 분석한 자기이야기는 ‘분노의 원인’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보다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 덮어두는 것과 같았다. 내 감정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분노의 뿌리를 탐색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때의 나는 도대체 내가 왜 화가 났는지도 알 수 없는 칠흙과 같은 어둠을 걷고 있었다. 당연히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비워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호함은 ‘분노’라고 이름을 붙인 감정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이후에 죄책감에 대한 무게가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자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러한 분노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분노를 촉발한 부당함을 해결하고 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분노는 사그라든다. 더는 화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나의 이런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지만, 본 연구를 통해 지난 자료들을 살펴보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회피한 감정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때는, 거의 반년이 지나고 난 이후인 다음 학기 말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제6절 ‘잃어버렸던 자기이야기의 회복’ 부분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대학원 첫 학기 당시에 성찰한 삶의 지점들이, 약 5년이 지난 이후인 2023년 1학기 <연극과 문학치료> 수업을 들으면서 비로소 서서히 이해되고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모든 과정과 지난 5년의 시간을 지나오기 전의 나는, 차마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와 내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힌 응어리진 것의 정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말 그대로 내 안에 자리한 ‘도토리’ 혹은 ‘여걸’의 부름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 안에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강렬하게 나를 살리고 싶다는, 그리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욕망은 나를 문학치료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이 책에서 분석한 자료들은 그전에 언어화했던 것들도 있고, 또한 인식까지만 하고 언어화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렀던 것들도 있다. 그리고 과거에 언어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과 내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전의식 차원에서만 받아들이고 넘어간 사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순간이 지금의 이 논문 작업을 통해 조금씩 더 구체화 되어가기 시작했으며, 내 안에 작용했던 깊은 의식의 층위까지 살펴볼 기회로 새로이 탈바꿈되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차마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어질 분석부터는 그러한 지점들이 조금씩 더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