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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의 축제 Oct 27. 2024

3. 반복해서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순간들

어머니를 사별한 이후, 그녀와 유사한 면을 지닌 사람을 대면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대응했던 패턴을 답습했다. 내 안에 자리한 ‘내적 작동 모델(an internal working model)’이 자동반사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볼비는 아동이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주 양육자와의 관계 패턴이 개인의 내적 세계를 구축한다고 하였다. 아동은 주 양육자를 비롯하여 다른 중요한 타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에 대해 아동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학습하고 내면의 작동 모델로 구축하게 된다. 나는 과거에 어머니와 맺었던 관계 패턴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재현했고, 이는 타인을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타인에게 어머니를 오버랩해서 바라보았으며, '이 사람도 어머니와 똑같겠지'라는 고착되고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다.


이러한 패턴은 타인 앞에 선 '성인인 나'를 자꾸만 '어린 시절의 나'로 회귀하도록 만들었다.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사별 이후 약 9년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알게 된 계기는 직장에서 상사의 맥락 없이 쏟아내는 분노를 공개적으로 겪은 뒤 호흡곤란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그때 당시 난 직장상사를 대할 때면 자꾸만 나도 모르게, 마치 유년 시절에 어머니에게 혼나던 경험을 하던 때와 똑같은 기분을 반복해서 체험하고는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왜 그런지 스스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꾸만 그녀 앞에서 기가 죽고, 얼어버리는 자신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상사에게 ‘유능한 팀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강하게 들었다. 당시에는 그저 자타가 공인하는 예민한 상사 아래에서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조금 힘든 것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반복하는 ‘얼어버리고 패닉에 빠지는’ 패턴들은 보다 더 근원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패턴의 기원이 결국 어머니와 맺었던 애착 관계에서부터 기인했음을 알게 된 것은, 대학원 입학 이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모호했던 당시의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이러한 부정적인 관계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의 기인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의 불안정 애착을 경험했던 나는 회피형 애착 방식을 고수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고, 이러한 모습은 더욱 애도를 직면하지 못하고 지연시키도록 만들었다. 고인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회피형 애착 유형의 경우, 외상과 관련하여 거리두기, 회피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며, 이는 결국 애도 지연을 가져온다. 


회피형 애착은 어린 시절 엄격하고 강압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거나, 혹은 계속 관심과 애정을 갈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거부되거나 방치되었을 경우 생기는 유형이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감정을 수용 받고 채워지는 경험보다, 계속해서 거절과 거부를 당하는 것을 학습해왔기 때문에, 타인에게 애정을 충족 받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원활한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며, 심리적으로 어려울 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기개방을 하기보다 동굴로 들어가 혼자 머물기를 선택하게 만든다. 


주양육자와의 애착 관계에서 경험하는 반복된 거절과 거부는 아이로 하여금 감정을 억누르고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도 이끌기도 하는데, 이는 거절로 인한 상처가 자신을 망가뜨리고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생존방식으로 감정을 거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즉 회피형 애착 유형이 감정을 억누르는 이유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직속 상사는 성격이 예민하고 고집이 쎈 편으로 어머니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약간은 히스테릭한 면이 있어서, 그녀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부장님이나 다른 팀원들조차 그녀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눈치를 보는 것과는 그 결이 사뭇 달랐다. 나는 그녀가 두려웠다. 상사가 조금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사고가 정지했고, 얼어버렸다. 나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자꾸만 상사 앞에서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그녀가 언제 화를 낼지 몰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 위해서 온종일 고민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떤 때는 결국 질문을 하지 못하고 퇴근할 때도 있었다. 상사 앞에 선 나는 마치 혼이 나 잔뜩 풀이 죽은 7살 꼬마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하루는 상사에게 업무 사항을 확인받는데, 갑자기 “나 지금 너무 화나서 소리 지를지도 모르니까, 저리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한참 후에 다시 업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녀는 결국 40명 가까이 모여 함께 일하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녀의 신경적인 데시벨이 큰 사무실에 울려 퍼지자마자, 수많은 파티션 사이에는 적막만이 가득 찼고, 나는 순식간에 잔뜩 얼어버려 패닉에 빠졌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은 나에게 수치심을 줌과 동시에, 이인감을 느끼게 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지금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멀어져, 발이 붕 뜨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 시기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됐을 때,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감각이었다. 이러한 해리 상태는 자동으로 차단되는 밸브와도 같다. 정서적으로 압도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일반적인 심리적 방어로, 위험에 임박했을 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머릿속은 빨간 경고등이 켜진 채, 정신없이 사이렌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상사가 소리 지르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고, 마치 그 고함이 내 존재를 부정하고 무가치하다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돌림노래처럼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내 정신을 마비시켰다. 그러면서도 순간적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올라왔다. 유년시절 어머니 앞에서 혼날 때면 자주 느끼던 감각이었다.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고, 난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옆자리 팀원이 나를 톡톡 치며 괜찮냐고 물었는데, 그제야 나는 내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고, 숨 쉬는 걸 힘겨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지만 갑갑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종종‘숨을 쉬어야지,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자주 하게 되었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강하게 밀려 들어올 때면 나는 곧잘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쉬는 것을 잊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해왔던 일이, 이제는 의식적으로 심호흡하며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상사 앞에 설 때면, 나는 늘 밀려드는 공포스러운 기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모두 다 써버려, 기진맥진해지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숨 쉬는 것이 버거웠다. 이때부터는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회사 계약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이후로 그날만큼 심하게 호흡곤란이 올 때는 없었지만, 내 안에서 뭔가 삐걱거리며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날 강하게 사로잡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 시절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어머니를 사별한 지 9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그 영향 아래에 메여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암담해졌다. 


이즈음부터 나는 스스로를 어딘가 ‘고장’난 상태라고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럽게만 여겨졌다. 여전히 사별한 어머니 그늘에서 못 벗어난 것만 같은 내 모습도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자신을 향해 ‘또?’,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야?’라고 말하며 무언가에 쫓기듯이 불안해했다. 빨리 어머니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내 안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 것 같다. 나를 고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지배하며 따라다녔다.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나를 살리고 싶어’ 발버둥 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문학·예술치료학과로의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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