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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Jun 16. 2022

의식의 등장 (2)

사람의 모순

정확한 시기에 있어 완전히 합의된 사항은 없지만 인지과학자들의 탐구에 의하면 사람은 약 20만 년 전에서 7만 년 전 사이에 인지혁명을 거치며 나타났다. 즉 사람을 정의하는 핵심은 인지혁명이 결정하였다. 이때 사람의 내면에 나타난 어떤 본성이 있었는데, 이 본성은 다음과 같은 특수한 성질을 포함한다.


우선 사람에게는 스스로가 주위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이 거대한 에너지 흐름의 일부라는, 평소에는 크게 깨닫지 못하는 인식이 생겨났다. 에너지의 흐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겪고 있는 현실에 해당한다. 에너지가 없다면 무엇도 가능하지 않으며, 여기엔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애석하게도 앞서 언급한 우연한 계기로 에너지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 안의 에너지를 통해 일정한 통찰을 얻었는데, 즉 사람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무분별(無分別)'함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에너지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또한 에너지는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이것은 원한다면 사람을 무로 되돌릴 수도 있다. 이러한 에너지의 통제 불가능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에너지가 갖는 무지막지한 힘 앞에 대응하려는 주관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즉 사람은 에너지에 순응하거나 맞설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다.


이러한 숙명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변의 것들을 분류하거나 분리하는, 또는 구체적인 요소에서 같거나 다른 점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그래서 결국 온갖 것을 사물이나 이치(理致)로 이해하고 학습하는, 우리가 늘 그렇다고 착각하는 두 번째 인식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이 능력을 '분별(分別)'이라 부른다. 사람은 이 능력으로 주위를 둘러싼 물질을 특정한 사물로 규정하거나, 물질들 사이의 특정한 패턴을 찾아내 원리나 법칙으로 정립하는 작업을 멈춘 적이 없다. 위와 같은 특수한 주관의 총체를 우리는 의식이라 부른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세계는 모두 의식에서 나왔다. 의식은 처음에 매우 미약하였으나, 의식의 지속적인 확장은 이윽고 자신의 바탕이 되는 사람조차 넘어서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빅뱅처럼 인지혁명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빅뱅처럼 사람의 내면에서 에너지의 인지와 의식의 등장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 때 탄생한 의식은 자신을 대변하는 세계를 형성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의 세계는 의식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의 얽힘에 해당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세계를 실재가 아닌 이야기라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 우리가 겪는 고통이 집약되어 있다. 즉 사람은 의식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에선 의식의 같음과 다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우리의 특정한 관점을 형성하는, 가능한 한 모든 주관을 만들어낸다. 반면 에너지는 이렇게 생겨난 특수한 주관과 기본적으로 불일치하고 계속해서 반목(反目)한다. 에너지는 그 어떤 주관도 쉽게 허용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붕괴시킨다. 이런 창조와 파괴의 순환을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사람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인식 사이에서 헤매는, 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적 창조물이 현실을 반영하는 실재가 아니라 사람의 고통을 재현할 뿐이기 때문에 이야기라 말한다. 또한 이러한 고통의 재현을 통해 의식은 확장의 원동력을 얻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의 신뢰 획득과 사람들 사이의 상호 연결도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의 고통스런 노력이 없다면 무엇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의식은 사람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를 써냈고, 세계는 그런 사람의 일생을 의식적으로 확장시킨 총체(總體)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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