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스로에게 사랑을 주는 어른으로
여전히 거절하는 것이 불편하고 남들의 표정을 살피며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의 마음을 조금 더 빨리 파악하여 표현하는 방법이 익숙해졌다.
나는 주말에 나가 놀 때나 일이 있어도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주말에는 아예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면 때로 부모님께 먼저 연락 오고는 했지만, 요즘에는 서로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매일 떨어져 지내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 잠깐씩 나가 놀거나 여행을 다녀올 때 수시로 연락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지만 마음한구석에서는 또 싫은 감정들이 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왜 늘 그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을까. 왜 나는 불편함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렇다면 내 과거의 이야기는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맏이였고 내 밑에는 동생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의도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꽤 있었다. 동생들을 챙겨야 했고 언니기에 양보도 많이 해야 했다. 그 임무가 실패할 때에는 '언니가 되어서...'라는 말을 듣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 중에 하나는 백화점인지 마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필요한 물건을 사 오겠다며 놀이방에 잠시 셋이 놀고 있으라 했다. 언니니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잘 보고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엄마는 자리를 떴다. 엄마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막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를 찾았다. 나는 엄마가 곧 오신다면서 다른 것 하고 놀고 있자고 했다. 하지만 막내에게는 내 말이 이미 들리지 않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엉엉 서럽게도 울어댔다. 나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잘 놀던 둘째도 내 옆으로 오더니 막내와 함께 합창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주변에 있던 어른이 다가오셔서 왜 우냐고 물으셨다. 나는 동생들이 엄마를 찾는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달래 봐도 내 동생 들은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어른이 물으셨다. 부모님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고. 안내방송을 들으시면 엄마가 곧장 오실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성함과 우리의 이름을 말해줬다. 방송에서는 우리 이름과 엄마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가 저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동생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다. 나는 그제야 눈물이 났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언니가 돼서는 왜 울고 있어. 동생들 잘 보고 있으라니깐!" 꽤나 화와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나는 울음을 금세 그쳤고, 그렇게 우리는 집에 돌아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린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되니, 세 딸을 데리고 나가 장은 봐야 했을 엄마를 생각해 보면 꽤나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쳤을 것이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였고 엄마의 임무를 멋지게 완수하고 칭찬받고 싶었던 아이였었다. 임무가 실패했을 때는 위로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아이 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 당시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그냥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했던 한 아이였다. 그 인정과 사랑을 아직도 스스로 갈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해준 밥을 잘 먹는 착한 딸로, 공부를 잘해 남들에게 인정받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어엿한 딸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물론 부모님도 우리를 최선을 다해 키우셨다. 그들이 그때 당시의 줄 수 있는 사랑은 다 주었고 최대한 금지옥엽으로 우리를 대하셨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그 속에 있었던 어린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과 상처들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건 누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때의 그 상황이 그때의 상태가 그랬던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위로나 인정과 사랑은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인정해 줬다. 어린데도 동생들 챙기느라 수고했다고. 너는 최선을 다했었다고. 어려운 임무를 해내려고 한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정했다. 과거에 꽤 녹이지 못한 강렬한 기억들이 존재했다. 처음엔 엄마가 날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라는 불만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그 불만들은 오히려 나를 그 과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문득문득 내 속에서 쌓아놨던 상처받았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고는 한다. 처음에는 매우 괴롭다. 이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그 불편한 감정들을 느껴보려고 한다. 충분히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미워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그때의 나를 위로해 보고 그러다 보면 또 그때의 주변이 보이게 된다. 그러면 그 주변의 상황과 환경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해는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과거 속에서 쓱 빠져나와, 현재는 더 단단해지고 더 커진 나의 내면을 토닥여 줄 수 있다.
나는 이제 꽤 부정적인 감정에서 괜찮아졌다. 우리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졌다. 하지만 그 사랑은 스스로가 줄 수도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해주고 있다면, 남들의 시선과 사랑은 내 안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글픈 날이면 밤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에서 휘둘리다가 결국에는 오롯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이제는 좀 터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