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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19

손가락 지우개

내가 지워줄게

그 작은 얼굴이 분노로 타오르고


매일 사랑해를 오물거리던 입


난 엄마가 싫.어.


라는 단어를 뱉어내고 있었다


4살의 분노는 그렇게 4년의 사랑을 뒤엎는 파도가 되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처럼 작은 자동차 안을 치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웠던 나는 똑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네가 싫.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나중에 상처가 되려나. '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쉽게 내게 '싫어'를 외치는 꼬맹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잠들기 전 다시 평온을 찾은 딸에게


아까 엄마가 싫다고 해서 미안해. 아까 엄마 말은 율이 기억에서 지워야겠다


라고 말하며 아이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작게 문질렀다


그러자 아이는... 내 이마를 똑같이 문지르며




우리 같이 지울까?



서로의 마음에 쓸데없는 낙서가 남 않도록  우린 열심히도 지워댔다.



우리에겐 오늘, 아팠던 말들도 후회되는 일들도, 잊고 싶은 날들도 모두 지울 수 있는 손가 지우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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