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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Oct 20. 2021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계단 앞에서 우는 날이 온다면

나는 25년이 넘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15년의 시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해온 아파트는 얼마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것은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에 3번이나 갇혀서 진땀을 뺐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두려웠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를 교체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잘됐다! 이제 맘 편하게 다닐 수 있겠어!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공사 공고가 붙었을 때는 좋기만 하지 않았다. 공사기간이 한 달이나 된다는 것이다. 7층까지 6살 아이를 데리고 등하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장을 봐서 들고 나를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게다가 공사일은 7월이었다. 가장 더운 날 장바구니를 들고 6살 아이와 함께 7층을 걸어 올라간다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은 더 싫었다. 게다가 내가 힘들다고 멈출 수 있는 공사도 아니지 않은가?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힘듦을 공유하고 장을 봐서 집에 올 때마다 계산대 아줌마와 수다를 떨며 괴로움을 나눴다.


몇몇 지인들은 이번 기회에 운동한다고 생각하라며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면 좋지 않냐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1주가 지난 어느 날, 하원을 한 아이와 1층 계단 앞에 섰는데 서자 마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힘든데, 얼마나 힘든데






계단을 오르는 일이 힘들다고 운다.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내게 자신을 업고 올라가라고 생떼를 피우기 시작했다. 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상황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좀 전에 산 초콜릿이 기억났다.

그래서 아이에게 '괴롭지. 생각만 해도 힘들어? 엄마도 힘들고 올라가기 싫은데 율이도 싫구나. 맞아 힘들만하지 우린 7층이니까, 우리 초콜릿 하나 먹고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말했다.


아이와 계단 앞에 서서 초콜릿을 까먹으며 짜증스러운 감정을 토닥여줬다. 그러고 나니 계단 위에 발을 올려놓을 정도의 힘이 났다. 그렇게 한층을 어찌어찌 올라가니 3층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올라갔다. 3층에 올라간 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한층만 더 올라가면 의자가 있어! 조금만 참아!




맞다.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리 아파트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관리인 아저씨가 4층에 의자를 갖다 놓으셨다. 아이는 그것을 기억하고는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 잠깐 앉아봐. 그러면 다시 힘이 생기더라.'


'이 녀석아 짐 들고 거기 앉았다 일어서는 게 더 번거롭다. 아까 네가 울고 불고 했던 게 더 힘들었다. 난 이미 진을 다 뺐으니 그냥 가자.'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엉덩이를 살짝 걸쳐봤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그게 뭐라고 몸에게는 도움이 됐는지 다시 일어나서 3개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아이와 집에 갈 때 1층 계단에서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계단 앞에 섰을 때지 막상 발을 올려놓고 나면 어떻게든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찮아도 4층 의자에 한 번씩 앉는다.


삶을 살다 보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있다. 그것이 큰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게는 냉장고 청소나 창고 청소 같은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해야 할 일이 처음이라 막연한 두려움일 때도 있고 때로는 이미 경험이 있어서 힘듦을 알기에 엄두가 안나기도 한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미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땐 '5,4,3,2,1 발사'와 같은 카운트다운을 외치라고 말한 멜 로빈스(5초의 법칙 작가)의 얘길 들어보면 이렇게 미루고 피하는 것이 나만의 특성은 아닌가 보다.


엘리베이터 공사는 자주 접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또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아이와 괴로운 상황 앞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배웠다.


1. 우선 발부터 얹어라

계단 앞에서 울고 있다고 7층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나의 발을 첫 계단 위에 올릴 수 있는 미끼를 찾아라.


2. 중간 의자를 이용해라

괜히 강한 척하지 말고 중간, 중간 잠깐씩 나를 돌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라. 머리가 하는 채찍질에 몸이 망가진다.


어느덧 4주가 지나고 엘리베이터 수리가 완료되는 전날이 되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젠 할만하지?








이제 초콜릿이 없어도 울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7층을 올라갈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내게 그 일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3. 힘을 키워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면 더 두렵다. 능력치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라.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모르게 능력이 생겨있을 수 도 있다. 그러니 능력이 없어 괴롭다면 우선 1부터 시작해라.





그래, 계단 앞에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초콜릿을 입에 넣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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