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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6. 2021

내성적인게 뭐 어때서?

내성적인 것이 싫은 나_자기혐오


남편: 내일은 율이 등원 못해줘

:  왜? 무슨 일 있어?

남편: 내일 중요한 PT가 있어서 일찍 나가야 해

: 몇 시에?

남편: 8시 30분.

나: 딱 좋은 시간이네. 낼 숲 놀이 가서 일찍 등원하는 날이거든.

남편: 안돼. 중요한 PT라서 등원 시킬 수 없어.

나:  그래... 내성적인 사람한테는 많이 긴장되는 일일 테니까... 알았어.

남편:  뭐?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와? 너 혈액형 믿어? 너 MBTI 신봉자야? 그거 다 믿을 수 없는 거야. 그걸 믿어?


난 MBTI강사 자격이 있지만 사람을 유형화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특별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그저 내성적 성향을 가진 남편이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발표할 때 긴장감을 크게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향적 성향이 있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훈련에 의해 긴장감을 조절할 수도 있고 노출 빈도에 따라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사람을 유형화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면 중요한  PT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기질과 상관없이 긴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은 자신은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남편:  너도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야!

나:  응, 맞아. 나도 내향적인 면이 있지.

그런데 왜 화를 내... 예전에 어른들이 당신 보고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뭐라 했었어? 그것 때문에 혼난 적 있었어?

남편:  아니야! 난 내향적인 사람 아니라고!



옆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박시야 내성적인 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





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야. 그건 사람의 특성일 뿐이야.'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답을 할 때가 다.


맞다. 사람 따라 다르다. 박시는 자신의 내향적 성향을 싫어하지 않는다. 바다를 보며 혼자 감상에 젖거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상상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다. 시골로 내려보내야 하는 꽃짝이와 꼬냥이 형제 곁에 앉아 한참을 슬퍼하고 마음을 달래던 모습도 박시가 갖고 있는 따뜻함이다.


이런 모습을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내자식이 숫기가 없다고.


내성적 성향은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주변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내성적인 특징을 어떻게 판단하는가고 받아들이느냐에 결과가 달라진다. 아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 맞아 사람에 따라 다르네. 좋고 나쁜 게 있는 건 아닌데.

낯선 사람을 보고 인사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수 있어. 그래서 엄마는 박시가 어른들에게 눈 보고 인사하는 거 어려워할 때 강제로 하라고 하지 않았지. 그건 천천히 배우면 되는 기술이거든.

사회생활하면서 훈련해야 하는 것들이야. 함께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남편: 애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어떻게 해. 애 교육 잘 시킨다. 예의바르게 행동해야지!

나:  아빠도 회사생활하면서 많은 기술을 익혔어. 내일 해야 하는 발표도 그런 거야.



남편은 내성적인 것은 나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나 보다. 혼자 술 마시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나면 반드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소수의 인원과 마음을 나누며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주변에서 유쾌하고 쾌활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큰 웃음소리를 내며 가짜 웃음을 짓는 남편을 볼 때면 참 안쓰럽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나이 드는 것에 좋은 점을 물어봤었다.


나: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살지 않아도 돼서 참 좋아. 웃기지 않을 땐 웃지 않고 편하게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이 참 좋더라. 난 나이 먹는 게 좋아.

남편: 적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잖아.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돼. 난 나이 먹는 게 하나도 안 좋아. 몸만 늙고 아프고.

나: 하지만 이제 두려운 것도 많지 않고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던데...

남편: 난 원래 무서울 것 없었어. 네가 약했던 거지.

나: 좋겠다. 원래부터 강해서. 난 지금이 참 좋아.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넌 좋겠다~ 하고 마무리를 지은 대화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직도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직도 온몸에 힘을 주고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주사 바늘을 앞에 두고 잔뜩 힘을 주는 것은 바늘보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바늘이 두려워서이다. 진짜 강함은 여유와 받아들임 안에서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가진 모습들 중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부정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때 강해질 수 있다.





내게는 내성적인 성향이 있어요.
때론 불편할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많죠.
하지만 좋을 때가 없어도 상관없어요.
이게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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