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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2. 2021

됐다.

뭐가 되지 않아도 충분한 삶

어린이집 선생님 중 한 분이 확진 판정을 받고 어린이집은 2주 동안 문을 닫았다.

갑자기 생긴 일에 눈앞이 깜깜했지만 14일에 3일만 더하면 메추리가 태어나기에 딱 좋은 기간임을 기억했다.


메추리는 17일의 짧은 부화 기간을 갖고 있긴 하지만 6시간마다 알을 굴려줘야 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외출이 많은 날에는 낮에 알 굴리기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아지고 부화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기간, 아이와 갖게 되는 온전한 24시간은 나에게는 심리적 부담이지만 메추리에게는 더 없는 부화 조건이기도 하다.


특히 얼마 전 딸랭이와 짝꿍이 된 방울이는 매일 한 개의 알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알을 얻기 위해 마트를 방문할 필요도 없다.

매일,하나씩, 꼭 꼭 꼭 낳는 것은 닭만이 아니다


그렇게 6일 동안에 걸쳐 6개의 알이 부화기로 들어갔다.


그리고 17일의 시간이 지나자 마법처럼 알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메추리인 딸랭이, 꼬냥이와 꽃짝이 닭 형제를 부화시켰던 경험이 있었던 나였지만 파각의 순간은 늘 긴장된다.

완벽한 돌려깍기

 

콕만 해놓고 못 나오는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으니 하루 종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이와 부화기만 바라보고 있다.


나물이 꼬리리
구름이와 뽀로리

나물이와 꼬리리는 힘차게 돌려 깎기를 하고 나왔고 구름이와 뽀로리는 내가 도와줬다. 그리고 두 알은 죽었는지 5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공 파각으로 살아있는 한 마리를 발견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이틀을 돌봤다. 다리가 기형이었고 심한 탈장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살아만 나면 어떻게든 될 테니 제발 살아만 나라고 기도했다.


둘째 율이는 '냠냠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어서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는 의미란다. 하지만 냠냠이는 아무것도 먹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와 함께 냠냠이 장례를 치르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슬픈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슬퍼. 정말 슬퍼





 다행히 남아있는 생명들은 슬픔에서 빨리 나올 수 있는 힘을 준다. 다른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상자 문을 열었는데 신경을 쓰지 못한 이틀 동안 녀석들의 몸에는 이미 깃털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 둘은 가지런하고 단단한 다리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인공 파각으로 태어난 두 마리는 깃털이 삐죽삐죽해서 볼품이 없었다. 게다가 한 녀석은 다리가 짧아서 뒤뚱거렸다. 만약 냠냠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못난 모습에 속상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4마리 형제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깃털이고 다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살아서 먹고 뛰고 삑삑 거리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처음 박시와 율이,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도 신비롭고 기쁜 마음만 가득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주변의 말들 속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판단하지 않는 마음으로 아이를 보려고 애를 써도 글자를 좀 가르치라는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아이가 교실 뒤에서 벌을 섰다는 소식을 접하면 문득문득 엄격한 심판관이 고개를 들었다.




6살이면 한글을 가르쳐야지.

자기 일도 똑바로 못해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어?




그런 희한한 생각이 들 때마다 한글을 못 읽어도 책 읽기를 좋아하고 교실 뒤에 서있어도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됐다. 그 정도면 됐다.


공부고 학교고 그냥 살아있으면 됐다.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든, 어떤 부족한 부분이 있든 괜찮다. 뭔가 특별한 것이 되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충분하니까. 혹시 삶에 치열함 속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나의 목소리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미 넌 존재 자체가 기적이란다.







아마 우리를 창조한 신이 다면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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