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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3. 2021

넌 누가 더 좋아?

어려운 질문

율이는 승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승오가 놀러 오기로 한 날을 하루 앞두고는 떨려서, 좋아서 잠이 오질 않는다며 밤 12시를 넘겨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승오가 집에 온 날, 율은 자기가 갖고 있는 옷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엘사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엘사 옷만 보면 나는 긴장이 된다. 지금까지 여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는 서로가 엘사가 되겠다고 난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오는 엘사 옷을 입고 '널 얼려버리겠다!'라고 얘기하는 율이를 질투하지 않았다. 놀이 시작의 비언어를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안돼~ 살려주세요!'라면서 도망가는 승오를 보면서 율이가 승오를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하는 놀이는 기쁨의 감정을 발산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감정이 소모되는 순간들도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을 배우는 것이 놀이지만 어른이나 아이나 인간관계 안에서 불편한 감정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한참 더울 시간에 굳이 밖에 나가 물총놀이를 하더니만 지쳤는지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 아이들. 집에 와서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 찰흙 놀이를 했다. 






넌 누가 더 좋아?






승오 이름을 부르더니 누가 더 좋냐고 묻길래 어린이집 친구들 중에 누가 제일 좋냐는 질문인 줄 알았다. 승오와 단짝인 형식이? 아니면 성격 좋다고 소문난 소윤이? 나도 승오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승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하기 어렵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누구랑 누구 중에?






너랑 나 중에






잉?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율이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자신과 나. 누가 더 좋냐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모르겠어...


자기도 모르는 감정이 들었나 보다. 승오가 가고 율에게 넌 네가 참 좋아?라고 물으니 바로 응! 좋아.라고 얘기한다.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더니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고, 눈은 예쁜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좋고, 코는 숨 쉴 수 있게 해 줘서 좋단다.






난 내가 참 좋더라.






율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나와 감사하기를 많이 했었다.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우면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하나하나 내려오며 감사를 표현했다.


추운 바람에 머리를 따뜻하게 해 줘서 고마워 머리카락아.

볼록한 이마야 뇌를 보호해 줘서 고마워

오늘 멋진 구름을 보게 해 줘서 고마워 눈아

오늘 숨 쉴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코야

.

.

.

오늘 나를 잘 받쳐줘서 고마워 발바닥아 고생했지~ 호~~


이렇게 발바닥에 입김을 불고 온몸 감사를 끝내고 나면 잠이 든다.


이 감사의 시간이 자신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됐나 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바로 감사할 때 얘기들이 나온다. 이렇게 자기가 좋다고 얘기하는 율이 에게 자기 자신만큼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사랑의 경쟁 상대는 다른 친구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 사실 이건 나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놀랍기만 하다.


6살 율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난 네가 참 좋아. 지금까지 나 만큼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이 감정이 참 낯설고 어색해. 이게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어. 넌 어때?





나는... 내가 타인보다 좋았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 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나를 미워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온몸 감사는 내게 더 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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