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웠지만 내 가방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의 말을 얘기하니 똑똑하게, 똑 부러지게 말 잘한다고 얘기했다.
어떤 이들은 남의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똘똘한 것이고 나의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기분 좋을 때는 야무진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이 기분 안 좋을 때는 예의 없는 아이라고 낙인찍기도 한다. 자신의 경계를 세우고 이야기하는 것은 삶의 주인으로써 당연하고 꼭 해야 하는 것인데 왜 거기에 여러 가지 꼬리표와 낙인들이 난무할까.
엄마에게 부드럽고 매너 있게 말하지 않았는데 왜 혼내지 않았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건, 이제 배우면 된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연습하고 난 후에 그것을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도 늦지 않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일 뿐이다. 하지만 마음이 단단해지는 연습은 하지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말 훈련만 하게되면 자신의 경계를 점점 잊어간다. 친절은 나의 불편함도 참아야 하는 것이고 친절하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경계를 세우고 거절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엄마 그건 제 가방이에요. 엄마가 제 허락을 받고 열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엄마가 제 가방을 동의 없이 열어보시는 것을 보니 많이 불편해요. 제게는 소중한 물건이거든요.
이렇게 말했다면 좀 나았을까?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이 말 또한 당신에게는 듣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 하는 사람의 경계를 보고 듣는 것이 쉽고 즐거운 일은 아닐 수 있다. 때론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존중했을 때 그 사랑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 사람 자신으로 내 곁에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돕지 않고 나와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면 사랑하는 사람은 곧 마음의 죽음을 맞이 할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둘 중 하나는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