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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04. 2021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선긋기

우리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

시동생 결혼식이 끝나고 집안 어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6살 아이는 많은 용돈을 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받은 용돈을 모두 나에게 맡기던 아이가 이번에는 날 한 번도 부르지 않고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율아 돈 잃어버려 엄마한테 맡겨.

아니야, 나 가방 가져왔어. 내가 잘 챙겼어.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돈을 잘 모아놨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열어보고 있었다. 그러자, 숟가락을 딱! 놓고 아이가 정색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내 가방 함부로 뒤지지 마라.

어? 어. 미안해. 돈이 잘 있나 보려고.

내가 잘 챙겼어. 내 거야.

엄마가 함부로 가방 뒤져서 기분 나빴어? 미안해. 시율이 가방 맞아. 다음부터는 허락받을게.


당황스러웠지만 내 가방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의 말을 얘기하니 똑똑하게, 똑 부러지게 말 잘한다고 얘기했다.


어떤 이들은 남의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똘똘한 것이고 나의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기분 좋을 때는 야무진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이 기분 안 좋을 때는 예의 없는 아이라고 낙인찍기도 한다. 자신의 경계를 세우고 이야기하는 것은 삶의 주인으로써 당연하고 꼭 해야 하는 것인데 왜 거기에 여러 가지 꼬리표와 낙인들이 난무할까.


엄마에게 부드럽고 매너 있게 말하지 않았는데 왜 혼내지 않았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건, 이제 배우면 된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연습하고 난 후에 그것을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도 늦지 않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일 뿐이다. 하지만 마음이 단단해지는 연습은 하지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말 훈련만 하게되면 자신의 경계를 점점 잊어간다. 친절은 나의 불편함도 참아야 하는 것이고 친절하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경계를 세우고 거절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엄마 그건 제 가방이에요.
엄마가 제 허락을 받고 열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엄마가 제 가방을 동의 없이 열어보시는 것을 보니 많이 불편해요.
제게는 소중한 물건이거든요.






이렇게 말했다면 좀 나았을까?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이 말 또한 당신에게는 듣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 하는 사람의 경계를 보고 듣는 것이 쉽고 즐거운 일은 아닐 수 있다. 때론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존중했을 때 그 사랑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 사람 자신으로 내 곁에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돕지 않고 나와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면 사랑하는 사람은 곧 마음의 죽음을 맞이 할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둘 중 하나는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 된 사랑은 종종 통제라는 옷을 입고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


나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강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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