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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May 22. 2021

미래의 결혼 축사

15살 아들에게 남기는 덕담

80년생의 시동생이 결혼을 한다.


늦게라도 결혼을 해서 다행이라는 주변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다행이라는 마음보다 '외로웠던 인생길에 든든한 짝꿍이 생겨서 앞으로는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이 앞섰다. 그래서 축하하는 마음에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제 남편이 덕담에 대해 얘기했다. 양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덕담을 해주는 시간이 있다고 엄마한테 연락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식장에서 엄마 대신 읽겠다는 얘기였다.


왜... 엄마가 직접 안 읽어?

양가 아빠가 읽는 거래.

우린 아빠 없으니까 엄마가 읽음 되잖아. 아들의 엄마, 딸의 아빠. 균형도 맞고 좋다~

아. 피곤하게 또 왜 그래. 그냥 내가 대신 읽을게.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엄마, 결혼식 덕담하시래요!

아~ 난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 못한다.

그럼 덕담 말씀이라도 좀 해주세요!

잘 살아라!

좀 길게 말씀해주세요...

더 할 말 없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덕담 많더라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읽어라.


화려한 글이 아니어도 엄마가 꾹꾹 눌러쓴 글을 전하고 싶었다. 인터넷 글을 읽느니 차라리 어머니 입에서  투박하게 나온 한마디 '잘살아라!'가 더 따뜻한 말처럼 느껴졌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내 아들한테 결혼 덕담을 써봤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잊지 말길 바라며.










오늘 너희에게 결혼 생활에서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알려줄게.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너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란다.


첫 번째, 너희는 싸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너희에겐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있단다.

싸우지 말고 잘살라는 얘기는 불가능한 얘기란다. 긴 시간 다른 삶을 살아온 둘이 만나면 싸울 수 있어. 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단다. 난 너희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눈뜨길 기도한다.


두 번째, 자신의 바람을 얘기하거라.

'담배를 끊어라. 다이어트를 해'와 같은 방법에 집착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움직이지 않을 때 사랑을 의심하게 될 거다. 난 당신과 건강하게 함께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하거라. 그러면 수만 개의 방법이 보이기 시작할 거야.  바람을 먼저 찾고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는다.


세 번째, 가족을 나에게 맞춰 바꾸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주길 바란다.

 배우자와 자녀는 너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 덕에 행복하다는 뜻은 너 때문에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무엇을 해주면 사랑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주렴.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존중이란다.


마지막으로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련다. 그 말은 시어머니의 거짓말이라고 하더라. 딸처럼 생각하고 허물없이 하는 말들이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난 내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너 또한 사랑받고 큰 귀한 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존중과 배려로 대하고 싶다. 네가 내 말에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  그래도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하는 일이 있거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얘기해주렴. 말은 마음보다 빠를 때가 있단다.


아들아 넌 항상 부인 편이 되어주렴. 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라 남아있는 마지막 내편이라는 뜻이란다. 아내가 실수하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늘 아내를 안아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편이 되어 도와주거라. 그것은 엄마와 함께 일 때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나의 바람들을 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난 너희를 사랑한단다.


너희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고 행복이었고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거라.










덕담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아들에게 인터넷에서 찾은 글과 내가 쓴 글 두 가지를 들려준 어떤 것을 읽어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두 번째 나의 덕담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유를 말한다.






엄마, 삶에서 뭔가 중요한 걸 말해주는 것 같아.





내 진심을 들어준 아들에게 고마웠다. 





28살, 부모 없이 홀로 결혼식을 한 나에게 이 덕담을 들려줬다면 내 삶이 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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