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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희매 Apr 27. 2020

사교육을 싹둑 자르는 삶의 변화

아이의 교육에 즐겁게 참여하고픈 분들께

2019년, 제게 주어진 육아휴직 기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1년이었습니다. 솔직히 5살짜리 둘째를 위해 사용한 휴직이었지만 10살 첫째를 위해서도 무엇인가 꾸준히 함께 해주고 싶었습니다.


휴직을 해서 수입이 많이 줄었으니 사교육을 끊고 집에서 아이를 직접 가르치며 판에 박힌 내용 말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나눠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은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고 아이와 친구들도 많이 만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 녀석을 앞에 놓고 혼자 이것저것 가르칠 생각을 하니, 그다지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좋은 의도로 시작했으나 중간에 내가 소리 지르는 마녀로 변해있거나 모자간에 의가 상하는 형국으로 끝을 장식하면 어쩌나 싶었지요.

저는 고민 끝에 동네 아이들에게 오픈된 ‘엄마표 수업’을 만들어서 좀 더 재미있으면서도 제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만 선생님이 되면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이 제한적일 것 같아 판을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휴직과 함께 동네에 ‘교육품앗이’라는 공고를 붙여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과목들을 공지하고 다른 부모들 중에서 함께 품앗이 수업을 진행해 줄 수 있는 분을 찾았습니다.


남편은 힘들게 얻은 휴직이니 편히 쉬라고 만류했고, 저 역시 대학시절 과외를 해본 게 고작인지라 ‘과연 초등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없을 이 휴직기간을 그냥 평범하게 흘러 보내기는 너무 아쉬워 용기를 내고 다짐했습니다.

내 아이를 포함해서 딱 3명의 학생만 모이면 무조건 수업을 개설하고 진행할 거다!

제가 가르치기로 한 과목은 책 읽기(독서), 보드게임, 고무줄 수업이었습니다.


독서는 제가 좋아하는 취미이기도 했거니와 첫째 아이에게 꼭 필요한 과목이라 생각되어 빠질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독서지도자 과정’ 같은 자격증은 없었지만, 성대모사를 하며 누구보다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자신이 있었습니다.


보드게임은 수업이라기보단 오락시간인데, 너무 공부에만 치중되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업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 아동권리 헌장에 보면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누리며 다양한 놀이와 오락, 문화, 예술 활동을 자유롭고 즐겁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쓰여있던 것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고무줄은 제가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놀이인데, 이제는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사명감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아들은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1년간 모든 고무줄놀이를 다 배웠습니다.

누가 이런 갑작스럽고 엉뚱한 의견에 동조해주겠냐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뜻을 함께 해준 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엄마표 ‘중국어 수업’, ’ 역사 수업’, ‘경제 수업’,‘건축 수업’이 개설되었습니다.


장소는 아파트 단지관리사무소에 부탁을 하여 잘 사용하지 않는 대표자 회의실을 주된 강의실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때때로 지역 도서관과 지자체 빈 공간을 신청하여 활용하였습니다.


수업은 동네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형으로 개설하였고 수업료는 재료비를 제외하고 회당 3천 원에서 5천 원 정도로 저렴한 비용을 받아 진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3명으로 시작되었던 수업들이 점점 늘어나 8~10명의 아이들이 참여했습니다. 사교육비 줄이자고 생각해낸 것인데 나중에는 적은 금액이지만 어느 정도 용돈도 생기게 된 샘입니다.

돈, 시장, 금융에 대해 가르치는 경제수업,


건축물 모형을 직접 만들어보고 설계하는 건축 수업,


라스베이가스를 연상케 할 만큼 다양한 게임들을 하며 웃음이 터지는 시끌시끌한 보드게임 수업,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딱~따구리 구리 마요네즈! 마요네즈 케첩은 맛있어!” 낯선 노래를 배우고 땀나도록 뛰어보는 고무줄 수업 등이 1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나와 우리 아이가 경험한 품앗이 수업 풍경은 그동안 보아온 학교나 학원 일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지고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과목이 특이해서 그런지, 소수정예여서 그런지, 부모가 가르쳐서 그런지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는 있었지만 수업 중간에 이르면 그 경계는 어는 정도 허물어져 있었고 나중에는 배우는 자의 참여와 주도가 훨씬 가르치는 자 앞에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과 규칙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함께 수업을 듣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하고 정말 예쁘게 보였습니다.


큰 아이는 말했습니다.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1년간 큰 아이와 거의 매일 함께 품앗이 수업을 하며 공부하고, 놀고, 뛰고 웃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복직과 함께 품앗이 수업은 마치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과 제 기억 속에는 이 소중한 추억이 평생 담겨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가는데 둘째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엄마는 여기서 선생님이잖아. 그렇지? 보드게임 선생님?”

“어~~ 마자! 엄마는 보드게임 선생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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