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you've got a friend in me"
(넌 나라는 친구를 가졌어)
-영화 토이스토리 ost-
영화 토이스토리에서는 장난감들에 생명이 깃들어져 있어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인다. 주인이 나타나면 아무런 영혼 없는 딱딱한 장난감들처럼 위장을 하다가 주인이 사라지면 집 안팍을 돌아다닌다. 통증, 맛 같은 감각부터 기쁨, 초조함, 사랑, 우정 같은 감정까지 모두 느낀다. 토이스토리의 대표 ost 중 하나인 위 노래의 뜻에도 우정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으니. 어릴 적 집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가진 장난감도 서로 대화를 나누며 움직이고 있을까 싶어 몰래 방안을 감시했던 기억이 난다.
난 지금도 가끔, 내 주위의 사물들에도 영혼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한다. 잠결에 들어간 화장실에서 마주하는 반쯤 짠 치약을 보면서, 이 치약에 영혼이 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반쯤 짜여져 있으니 중년의 아저씨일 것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젊은 치약은 짜질 때마다 급속도로 나이가 들어 다 사용했을 때 즈음이면 깡마른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혼이 깃든 치약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돌돌 말린 두루마리 휴지는 한 칸 한 칸 뜯길 때마다 새로운 영혼이 깃들 것이다. 그들은 사용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자신의 이 방에서의 여정은 끝났음을 깨닫고, 방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쓰레기통에 먼저 들어가 있던 것들과 인사하며 쓰레기가 되어 움직이는 새로운 여정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불을 꺼서 어둠이 찾아오면 잠들며 말이다.
회사로 이동을 하면 부식으로 먹는 과자가 제일 눈에 띈다. 과자는 처음에 큰 덩어리가 되어 자신을 감싼 포장지와 유대감을 쌓은 상태에서 나에 의해 강제로 이별당해 슬퍼할 것이다. 하지만 이별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분해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거치며 변화의 신비로움에 매혹될 것이다. 회사 깊은 서랍에 잠들어 있는 알록달록 색종이는 젊은 아가씨일 것이다. 가끔 서랍을 열 때 내리쬐는 밝은 빛을 보며 빛을 동경하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내가 서랍을 정리하기 위해 꺼내면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있던 것들과 다시 또 만나자는 말을 남기면서도 새로운 장소에 자리잡을 것이란, 혹은 드디어 사용될 것이란 기대감에 빠질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물은 이런 모습, 어떤 사물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겠다' / '어떤 사물은 어떻게 되면 어떻게 되겠다' / '어떤 사물은 지금 이런 상황이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재미 없고 딱딱한 사물이 아니라 재미 있는 장난감이나 애완 물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되니 휴지 하나를 쓰고 버릴 때도 "멀리 가거라", "고마웠다"와 같은 한마디를 던지며 피식할 때도 있다.
누가 보면 이상할 때도 있지만, 이런 상상에 빠지다 보면 이 사물 친구들은 내 주위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물 생명 같기도 하여 말을 일부러 걸고 싶을 때도 있다. 사물과 생명, 어울리기 어려운 단어이기에 둘이 어울리는 것을 더 상상하고 싶고, 더 바라고 싶고, 더 흥미롭게 여기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5년 정도 되었으니 나이는 중반일 테고 성별은 남자. 여기저기 얼룩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수염이 듬성듬성 난 모습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면서
라고 외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물에 생명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제대로 씻기지 못했다니, 새삼 노트북에게 미안하다. 오늘은 물티슈로 구석구석을 닦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