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배경여행, 도쿄 진구구장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나는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 중략 …)
1 회 말, 다카하시가 제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이제 와선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아침부터 화가 잔뜩 나있었다. 화가 난 상태로 진구구장(明治神宮野球場)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구구장 바로 옆에는 치치부노미야란 이름의 럭비장(秩父宮ラグビー場)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무작정 직진하던 나(=방향치)는 한창 경기 중인 럭비장을 가로지를 뻔했다. 뒤따라오던 남편(아마 내가 화가 난 원인 제공자였을 것이다)이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왜 아무도 나를 안 말린 거야?
럭비 경기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경기였는지, 사람들이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었다. 게다가 관중은 적었고, 필드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막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럭비경기장에서 나와 한참을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 날로부터 정확히 40년 후. 4월. 역시 쾌청한 오후에 나는 진구구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기대와 달리 프로야구가 아닌 대학야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누구와 누가 경기를 하고 있는지, 어느 팀이 홈팀인지, 좌석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일단 매표소에 가서 가장 싼 표를 두 장 끊었다. 나에게 이곳은 하루키란 소설가를 탄생시킨 자궁과도 같은 공간. 일단 들어가 보는 것이 목표다. 자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면 하루키가 있었던 외야석을 가려했는데, 아마 가장 싼 표가 외야석이겠거니 넘겨짚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선택이 얼마나 섣부르고 어리석었는지는 정확히 10분 뒤에 밝혀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가 된 에피소드는 사실 최근에 발간된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도 등장하고, 하루키의 팬이라면(팬이 아니어도)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남편(안티팬에 가까운)은 “소설가로 성공한 다음에 나중에 포장한 거지.” 의심하곤 했다.
그게 하루키의 매력이라니까.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야구장인 진구구장은 무려 1926년에 세워졌는데, 아직도 현역이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 속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Tokyo Yakult Swallows, 하루키가 팬인 팀)의 홈구장이자, 도쿄 6 대학 리그, 도토 대학 리그 경기, 전 일본 대학야구 선수권대회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다. 일본 서부지역에 고교야구의 성지인 고시엔 구장이 있다면, 이곳은 대학야구의 성지. (양대 성지가 동부 서부 균형을 맞춰 있구나) 오래된 야구장이란 정보 없이 다녀왔는데 내외부가 깔끔하고 시설도 최신 야구장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뒤떨어진단 인상이 없어서 90년 넘은 구장이라는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다. 오랜 기간 잘 가꿔온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500엔씩을 주고 야구장에 들어선 우리는 이 좌석이 싼 이유를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응원석’으로 응원단과 함께 ‘매우 열심히, 온몸을 움직여 격한’ 응원을 해야 하는 자리! 자릿값을 적게 받는 이유가 있다. 잠시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계속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손짓을 하고, 스케치북에 있는 응원 구호를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너무 지친 나머지 잠시라도 의자에 앉으면 응원단원 중 한 명이 우리 앞으로 와서 아주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응원을 유도한다. 불행 중 다행(이랄 것도 없지만)은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5점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덧 우리는 메이지대학 야구팀의 팬이 되기 시작한다.
아니, 아니. 하루키 배경여행에 와서, 와세다(하루키 출신 대학, 곧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도 생길 예정이란다)를 상대로 이렇게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다니.
‘링에 어서 오십시오.’
이 문장은 왜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떠오르는 것일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첫 번째 장 ‘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에서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첫 소설이 좋은 작품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쓰기란 어렵다 이야기한다.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사람만이 남아 소설을 지속적으로 쓴다고. 그런 사람이라면 소설가의 링 위에 올라오라는 것. 솔직히 이야기하면 하루키 작품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보는 나에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만큼은 완독의 장벽이 다소 높았다. 우선은 지나치게 진지(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겠지만) 해서 하품이 났다. 나에게 하루키는(그의 문장은) 영원히 30대에 머물고 있으며 냉소적이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고, 스스로를 그리 못 생긴 얼굴은 아니라 생각하며 여자에게 은근 인기가 좋고, 저녁엔 맥주를 마시고, 와인, 위스키, 칵테일에 해박하고, 그럼에도 수영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탄탄한... 그런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으면 한다. 이 책에는 60대,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설가의 모습이 너무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위의 ‘링’ 이야기처럼.
어찌되었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확히 40년 전 이곳에서 소설을 쓰기로 생각했다.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첫 소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