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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Sep 20. 2017

세상의 마지막 날 읽을 책이 생겼다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나왔습니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요!"


남편이 물었다.

"뭐 시켰어?"

"아니 시킨 거 없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똑같은 얼굴을 가진 책 20권이 들어 있었다. 저자 증정본. (그럴 리 없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따뜻했다. 지은이에 나의 이름이 적힌 책과 함께 캐나다 여행을 갈 수 있다니! 한 권을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유독 사람이 많던 공항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누구보다도 나의 책을 기다린 아빠가 재빨리 가져갔다. 자리 조명을 켜고 열심히 읽고 계신 아빠의 모습을 보니 지난날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고, 웹매거진에 기고를 하고,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하고, 표지를 선정하고, 교정을 본 시간들... 모든 과정이 설렘의 연속이었기 때문일까. 막상 책을 받고 나서는 두근대는 마음보다는 안도와, 혹시나 이상한 점은 없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뒤엉켰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책 출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가장 설렜던 순간은 표지를 결정할 때였다. 카카오톡에 시안이 나왔다는 메시지가 떠있었다. 오전 회의 중이었다. 평소 회의시간에 그리 적극적이지도 호의적이지 않은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서. 회의실에서 나와서도 바로 열어보지 못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시안 파일을 열었다.


'와아 근사하다!'




몇 개 안이 와있었지만 이미 내 마음에 쏙 든 표지는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역시 그 표지로 표가 몰렸다. 오타루 손그림이 담긴 표지.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오타루였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야 늘 즐겁지만, 이제까지 보낸 그림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행복한 마음을 충분히 누리며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


엄마는 '원본 그림에도 눈이 있는지' 물었다.

"물론이죠!"


다 쓴 칫솔에 흰색 유성 물감을 잔뜩 묻혀서 흩뿌린 눈이었다. 내 생애 오타루에서 만큼 많은 눈을 맞았던 적이 없으니까. 눈은 충분히 뿌려야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빠 손에 든 <다정한 여행의 배경>의 표지는 그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신나게 칫솔을 튕겼던 밤, 가스 등불이 두터운 눈 위에 내려앉아있던 오타루의 밤. 쿡쿡 웃음이 났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도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LA에 닿았다. 그곳에서 우린 '더 라스트 북스토어'란 책방에 들어갔다.

"서점의 아름다움은 ‘책을 어떤 배경과 액자로 보여주느냐’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조시는 말한다. 지구의 마지막 날, 어떤 책을 읽고 싶을지를 생각하며 서점 안 서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시미즈 레이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두근거리는 미국의 도시여행을 꿈꿨다. 그러나 커다란 코리아타운을 안고 있는 이 도시에 와버렸다. 가까이에 할리우드가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LA에는 꼭 가보고 싶었던 작품의 무대가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때 책 한 권이 불현듯 생각났다. 구성이 아름다워 소장용으로 사둔 시미즈 레이나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었다.

- 『다정한 여행의 배경』 중에서


더 라스트 북스토어에서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나는 '세상의 마지막 날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무척이나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를 읽어야 할까. 당시 너무나도 깊이 빠져있던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을 읽어야 할까.



-

이젠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온다 해도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정한 여행의 배경 세상에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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