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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마이너 Jan 26. 2021

중간거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

아주 가깝거나, 아주 멀거나.


아주 가까울 수 없다면 아주 멀어지고야 마는 못난 습관이 있다. 중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어도 좋으련만, 아주 가까울 수 없다면 아주 밀어내고야 만다. 눈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애써 더욱 밀어낸다. 눈에 보일 때마다 달려들어 안기고 싶은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까 봐서, 그 마음을 참아내는 것이 자꾸만 어려워서 저만치 밀어내고야 만다.






마음 둔 것을 열렬히 사랑하는 편이다.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없는 무언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나에게 고통이기도 하다. 그 고통이 힘겨웠던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두고 바라보는 것을 미처 익히지 못했다.


과거에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었다. 굳이 토해내지 않아도 될 말들로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그들은 내가 견뎌오던 흠을 잡아내어 네가 별 볼일 없다는 듯이 말하거나, 자주 내게로 향하던 눈길을 감추었다. 내가 아니라고 증명될만한 이유를 굳이 찾아내서 내 귀에 열심히도 들려주었다. 당시의 나는 침 한번 뱉고 일어나면 될 것을 꿋꿋이 앉아 그 말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진짜 나인 줄 알았기 때문에, 달리 반박할 말들이 생각속에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뿌리치는 것이 힘들었다.


때때로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기억들이 있다. 작은 베임 정도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붉고 굵은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미운 말들로 정의되는 나 자신이 미웠고, 그렇게 말한 상대방들을 두고두고 마음으로 미워했다. 못 배운 인간들부터 시작해서 무식하고, 천박하고, 몰상식하다며. 그렇게 수준 낮은 인간들이랑 왜 마주 보고 있었을까 하면서.


그런데 그런 마음들은 상대방에게 아무런 복수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던져주는 씨앗들이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곧, 내 마음은 그 씨앗 되는 단어들과 뒤엉켜 원치 않는 싹을 점점 틔우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에서 그 씨앗들이 마음을 뚫고 나오기까지 자라나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잘라내자. 잘라내자. 아니 뿌리를 뽑아버려야지.


마음을 열고 더듬더듬 찾아서 뿌리를 꺼내놓았다. 새파랗게 질린 그 뿌리를 요리조리 관찰하듯 살펴보다 그것은 중간거리를 찾을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구나.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거리가 불편하고 어려웠구나. 자신의 마음이 거절당할까 봐 지레 겁먹었구나. 그래서 나를 밀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미움으로 내 마음에 끌어당겨 왔구나. 어쩌면 그들도 무언가를 사랑할 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열정적이면서도 쉽게 서운함을 느끼는 여린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때때로는 거기에서 비롯되는 소유욕과 소심한 마음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나는 그 뿌리에서 소유욕과 거절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살살살- 잘라냈다. 그리고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훌쩍 어딘가에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 다시 마음을 열고 있던 자리에 심어주었다. 버려선 안될 결코 버리지 못할 소중한 하나의 경험이었으니까.


이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제는 조금, 중간거리를 찾아 나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마음의 쓴 뿌리를 한꺼번에 뽑아내려 애쓰기보다, 때때로 이렇게 다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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