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뚜벅 Apr 19. 2022

휴가 다녀왔더니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더위뿐만 아니라 일에 지쳐있던 

어느  여름으로 기억된다.

돌아가며 일주일씩 휴가를 다녀오기로 하고

꿀 같은 휴식을 마치던 저녁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잘 쉬고 있지? 내일 사무실 나오면 당황할까 봐

미리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눈치 보듯 머뭇거리는 선배 말투와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회의하는데 팀장이 화를 내면서

전날 네가 담당했던 영상 원고가 틀렸다고

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거냐며 험담을 하더라고.  

제작할 때 주의하라고 하는 말 같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팀장이 너한테 불만이 있어 보였어.

네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나까지 불쾌하던데 팀장이랑 

얘기   해보는  어떨까?"


충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 했건만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공개적인 험담이라니...

나는 선배에게 문제 된 멘트가 무엇인지 물었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원고 파일을 찾아 열었다.

그.런.데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원고는 정확하게 표기돼 있었다.

팀장이 완성된 원고로 성우와 더빙 작업을 하면서

성우가 잘못 읽은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마무리한 것이다.

억울하고 분통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팀장은 왜 내가 잘못했다고 믿어버렸을까?

평소 나의 태도가 문제였나?

그럼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

온갖 추측들이 말풍선처럼 머릿속을 떠돌았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팀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며 성우가 더빙할 때 잘못 읽었고,

그걸 바로 잡아야 할 분은 팀장님이었다고.

왜 저한테 확인도 안 해보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듣고 있던 팀장은 아차 싶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건네는데

그 순간, 더 이상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팀원이라고 생각했다면 진심이 느껴졌을 텐데

팀장의 태도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느낌이었다.


"저에 대한 신뢰가 여기 까지라면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편까지 제작하고 정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팀원들 앞에서 그날의 실수가

저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꼭 정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와서 팀원들에게 해명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명예회복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짧은 인연을 마무리하고 프로그램을 떠났다.


몇 년 후,  방송국 로비에서 팀장과 다시 마주쳤다.

순간 어떤 얼굴로 인사해야 할지 고민이 됐지만

다행히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이제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담담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됐으니 말이다.

'팀장님, 저는 방송 일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도 어려서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할 생각을 못하고 도망쳤던 것 같아요.

덕분에 신뢰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파이팅입니다.'






이전 01화 빨간펜 등장, 아카데미 나왔습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