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일을 막 시작했을 때다.
당시 나는 라디오 리포터에서 라디오 작가로
전향을 하며 꽤나 들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된 채로 시작한 것일까?
담당 피디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보 작가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니
입장을 바꿔보면 답답한 것도 이해가 됐다.
저녁 라디오 방송을 담당했던 나는
오후 5시 전후 완성된 원고를
그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라디오 원고는 처음이었지만
다른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면서
나름 공을 들여 원고를 작성했다.
물론 프로들이 볼 때는 부족하고
수정할 부분이 눈에 많이 보였을 것이다.
원고를 본 피디는 역시나
한숨을 지으며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모두가 알아차릴 정도로
노골적인 지적과 야단을 멈추지 않았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들을 던지며
라디오를 마칠 때까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몇 달을 그렇게 지냈는지 모른다.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한동안 그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더는 못 참겠다 싶은 사건이 터졌다.
초등생 받아쓰기도 아니고 국어학원도 아닌데
그가 빨간펜을 들고 내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
그날은 특정 표현이 마음에 안 든다며
기본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풍겨댔다.
‘대체 어떤 표현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그가 문제 삼았던 말은 “해피 바이러스”였다.
어떻게 바이러스라는 말 앞에
해피하는 긍정어를 붙일 수 있냐며
그야말로 이참에 나를 쫓아내고 싶은 사람처럼
강한 불쾌감과 강압적인 태도로 몰아붙였다.
나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당시 해피 바이러스 하는 표현은
행복한 기운이 바이러스처럼 퍼지길 바라는
현상을 나타낸 말이었고,
다른 언론에서도 활용되는 비유였다.
그렇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는 내 말에 귀를 닫았다.
이후 한동안 빨간펜을 들고 원고를 감수했고
자신과 다른 생각들을 지우고
글의 분위기를 바꿔놨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왜 그때 마음이 다치는 것을 돌보지 않았을까
그는 왜 그토록 내가 싫었을까?’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보내며
만약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한 마디를 남기고 싶다.
“팀장님, 저도 방송 아카데미 수료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