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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Jun 10. 2022

휴가비 때문에... 2박 3일 빌딩에 갇히다

“오랜만에 같이 손발 맞추면 좋잖아요. 같이 할 거죠?”

몇 년 전 같이 일했던 피디가 급한 일이 있다며

2박 3일만 같이 고생하고 돈 벌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일을 쉬고 있었고 여름휴가도 앞두고 있던 터라

휴가비도 벌고 현장감도 익힐 겸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피디와 지지고 볶던 추억을 떠올리며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선에 줄을 섰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 잘했네. 나 지금 기차 타러 왔는데

그 주소로 가면 되는 거지?”

눈으로는 기차 번호를 확인하며

피디에게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작가님, 죄송해요.

제가 어제 영상을 밤새 살펴봤는데

시간 내에 편집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동생이 많이 아파서 옆에 있어야 할

상황도 있고… 어쩌죠?

회사에 제 사정은 말했고 작가님은 그냥 하셔도 돼요.”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기차를 타고 약속대로 일에 뛰어들지

피디 핑계로 나도 못하겠다 집으로 가야 할지…

내 손에는 피디에게 줄 빵 간식이

기름 냄새를 풍기며 행선지를 묻는 듯했다.

“나는 기차가 왔으니까 사무실에 가서

설명을 듣고 판단할게요. 같이 못해서 아쉽네.”

기차는 출발을 알리며 달렸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그때 기차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닥칠 불행을 모른 채 약속은 지킨다는

그 망할 놈의 신념으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설명을 듣고 보니

해외 촬영을 다녀온 영상팀이

무슨 이유인지 일을 놓고 증발을 했단다.

하지만 방송일은 이틀 뒤였고

8-10분짜리 영상을 두 개 완성해야 하는데

알바 피디나 나 역시 영상 내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꼬박 이틀 밤을 새야 가능할 것 같았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프로덕션 대표의 절절한 부탁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처음 보는 피디와

영상을 살피고 편집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니 왜 어려워했는지

짐작이 됐지만 물러설 곳도 없고

오기가 생기도 했다.

문제는 사무실 환경이었다.


나는 서울에 거처할 곳이 없었고

밤에 사무실에서 일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담당 피디는 집에 가서 하겠다고 하고

사무실 직원들도 그날따라 일찍 퇴근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밤 10시를 넘길 쯤이었다.

간식을 사러 1층에 내려갔는데

건물 경비아저씨가 믿기 힘든 말씀을 하셨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분이 아닌 것 같네.

여기 12시 되면 밖에 못 나가요. 건물 다 잠기고

엘리베이터 작동도 안 되는데 알아요?”


아니 빌딩숲인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있다니?!

순간 모텔을 잡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아르바이트비를 숙박비로 쓰고 싶지 않아

하룻밤이니 괜찮다고 안도했다.

그런데 12시가 되자

건물 셔터 닫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꺼지는 걸 확인하자 불안했다.


‘이 건물에 나 혼자 갇힌 건가?’

만약 불이 나거나 밖에 나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112에 전화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 때쯤 옆 사무실 불빛이 느껴졌다.

남자들의 수다 소리…

순간 혼자만의 공포가 시작됐다.

화장실도 사무실 밖 통로에 있는 데다

옆 사무실과 붙어 있어서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감지할 것만 같았다.

만약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끔찍했다.


사무실 문을 잠그고 모든 불을 다 켜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리고 밤을 새우며 책상에 엎드려 졸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이나 음료 마시기를

줄였다. 얼굴도 닦고 싶고 양치도 해야 했지만

그건 내일 아침으로 미뤘다.

그 하루, 그리고 다음날도

나는 그 사무실의 밤을 지켰다.

덕분에 방송은 문제없이 송출됐고

그 수상한 빌딩에서도 탈출할 수 있었다.


나를 이런 곳에 소개한 피디와

혼자 덩그러니 놔두고 가버린

피디가 잠시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휴가비 벌겠다고 무리한 것이니

누굴 탓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떠올려도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에 갇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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