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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10. 2022

밤에 울리는 카톡 소리,  감정노동자의 일상  

휴대폰을 머리 위에 두는 게 아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울리는 카톡.

누군지 이름만 확인하려고 보니

내일 방송을 앞둔 출연자였다.

‘혹시? 문제가 생겼나?’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늘어난 걱정거리 중 하나가

출연자 건강상태다. 실제로 방송 당일 아침에도

확진 연락을 받을 때가 있었으니까.


긴장된 마음으로 카톡 메시지를 열었다.

“저 내일 재킷을 무슨 색 입을까요?

체크무늬로 입을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요?”

조금 황당한 메시지였다.

몇 시간 후 출연을 앞두고 이런 내용을

밤에 확인해달라고 하시는 건가?!

방송 취소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문자를 보고 이 시간에도 나는 대기상태가 돼야 하나?

한숨을 쉬며 잠시 동안 고민을 했다.

답장을 해주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 시간에 답장을 해주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답장란에 대기 중이었다.


“보통 검은 계열 정장을 많이 입으세요.

세트 배경이 전에 보내드린 영상처럼

파란색이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표를 넣은 상냥함도,

늦은 밤 놀랐다는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정보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름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밤에 울리는 문자도 반갑지 않지만

때로 휴일에 불쑥 울리는 전화도 피곤하게 느껴진다.

“쉬는 날 죄송한데…”로 시작하면 다행,

“이 내용이 맞는지 확인 좀 해주실래요?”

“전에 보내준 자료 좀 다시 보내주실 수 있나요?”

“내용 읽어봤는데 이 부분 설명 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나도 open, close 시간을 정해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야 하나?

많이 묻는 질문은 아예 녹음을 해둘까?

이런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명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듣는 나는

인원이나 시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문에서

[쌀가마니 요법]에 관한 글을 보게 됐다.

마음에 쌓인 상처를 선적에 쌓인

썩은 쌀가마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짐이 돼버린 쌀가마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전문가는 오롯이 떠나보내기를 추천했다.

상처 준 사람에 대한 분노, 원망 등을 충분히 느끼고

내 인생에 짐이 되는 것들을 유유히 놓으며

홀가분한 감정을 만끽해보라는 것!


그랬다. 나는 필수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때로는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상대의 기분과 마음 상태까지 살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그 마음을 브런치에 털어두며

하나씩 떠나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일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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