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머리 위에 두는 게 아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울리는 카톡.
누군지 이름만 확인하려고 보니
내일 방송을 앞둔 출연자였다.
‘혹시? 문제가 생겼나?’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늘어난 걱정거리 중 하나가
출연자 건강상태다. 실제로 방송 당일 아침에도
확진 연락을 받을 때가 있었으니까.
긴장된 마음으로 카톡 메시지를 열었다.
“저 내일 재킷을 무슨 색 입을까요?
체크무늬로 입을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요?”
조금 황당한 메시지였다.
몇 시간 후 출연을 앞두고 이런 내용을
밤에 확인해달라고 하시는 건가?!
방송 취소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문자를 보고 이 시간에도 나는 대기상태가 돼야 하나?
한숨을 쉬며 잠시 동안 고민을 했다.
답장을 해주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 시간에 답장을 해주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답장란에 대기 중이었다.
“보통 검은 계열 정장을 많이 입으세요.
세트 배경이 전에 보내드린 영상처럼
파란색이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표를 넣은 상냥함도,
늦은 밤 놀랐다는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정보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름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밤에 울리는 문자도 반갑지 않지만
때로 휴일에 불쑥 울리는 전화도 피곤하게 느껴진다.
“쉬는 날 죄송한데…”로 시작하면 다행,
“이 내용이 맞는지 확인 좀 해주실래요?”
“전에 보내준 자료 좀 다시 보내주실 수 있나요?”
“내용 읽어봤는데 이 부분 설명 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나도 open, close 시간을 정해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야 하나?
많이 묻는 질문은 아예 녹음을 해둘까?
이런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명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듣는 나는
인원이나 시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문에서
[쌀가마니 요법]에 관한 글을 보게 됐다.
마음에 쌓인 상처를 선적에 쌓인
썩은 쌀가마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짐이 돼버린 쌀가마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전문가는 오롯이 떠나보내기를 추천했다.
상처 준 사람에 대한 분노, 원망 등을 충분히 느끼고
내 인생에 짐이 되는 것들을 유유히 놓으며
홀가분한 감정을 만끽해보라는 것!
그랬다. 나는 필수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때로는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상대의 기분과 마음 상태까지 살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그 마음을 브런치에 털어두며
하나씩 떠나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일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