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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r 02. 2021

20대, 불안과 함께했던 삶

20대의 나에게 사과하는 글

20대는 '청춘' '설렘'과 동시에 '불안함', '조급함'이라는 키워드를 항상 동반한다.

불투명한 미래와 진로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고민까지, 20대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안감은 스스로를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나치게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력'이라는 키워드의 딜레마

살면서 처음으로 원하는 회사에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봤다.

어렵게 취업을 하고 나니 목표가 결과로 이루어진 성취의 경험이 너무나 기뻐서, '노력'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노력을 하면 나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구나. 힘들게 입사한 첫 직장에서 열심히 배워서 멋진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의 하루는 얼마나 길고 고된가.

괜히 팀 언니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을까, 무슨 말이라도 꺼내볼까. 크게 하는 일도 없이 메일함과 다른 사람의 문서만 쳐다보며 긴장 속에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리서치나 간단한 기획과 같이 작은 업무라도 주어지면 새벽까지 문서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나의 많은 정신과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다행히도 결과물에는 많이 노력한 티가 났었나 보다.

운이 좋게도 이런 것들로 인해 신입사원 때는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 기뻐 '노력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대신 그 대가로 엄청난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사람들이 날 좋아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입 때는 실력보다는 어느 정도 노력하는 태도만으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진짜로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불안했다.


어떤 일을 맡으면 새벽이고 주말이고 좀 더 괜찮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퇴근 후 자리에도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술을 마셔서 정신은 몽롱하지만 집에 와서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 잠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니 일도 잘하면서, 대인관계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난 굉장히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이었는데 회사생활을 통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것도 노력의 결과인가?


불안감이 만들어낸 20대의 모습은 꽤 그럴듯했다.

열정이 넘쳐서 매사에 노력하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며 간도 팔팔해서 술도 잘 먹는 젊은 청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로 살아가지 않는 삶, 결과는 '없음'

당시 나의 기질이나 성향과는 관계없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2-3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고 나면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 이직을 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고 한다. IT업계 특성상 적절한 시기에 잘 협상해서 이직을 하면 연봉을 점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획자로서 게임 외에 다른 서비스 쪽을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당시 3년 차 주니어이다 보니 이직하면서 처우가 딱히 좋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이직을 했다.

초원에 풀이 없어 소들이 비쩍 마를 때쯤
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 "저 쪽으로 석 달을 가라"
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 둥 살 똥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 장기하와 얼굴들 <아무것도 없잖어>


첫 이직 이후의 경험은 내 욕심처럼 환상적이진 않았다. 원래 다 그런 건데 그런 건 줄 몰랐다. 앉아서 멍하니 있자니 장기하와 얼굴들의 <아무것도 없잖어> 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 후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직을 반복하면서 불안감과 피로도는 높아져만 갔다.

재입사 후 즉시 팀 폭파, 회사 구조조정, 스타트업 도전 열풍에 편승했으나 실패, 안정적이고 유명한 IP를 가진 팀에 정착하고 싶었으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마음의 상처만 커져갔다.

당시에는 나의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결국 나에게 맞는 환경이 있는데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의 이유가 가장 컸다.


남들이 알아주는 유명한 회사, 유명한 IP, 패기 넘치는 것처럼 보였던 스타트업 도전... 나의 삶의 방향은 핫하고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곳으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직장 밖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여 평일이고 주말이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항상 바쁘기만 했다. 모든 것을 다 따라가려고 했던 결과는 '결과 없음'이었으며, 잦은 번아웃을 불러왔다.

가장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난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이었다.


20대의 나에게 사과하는 글

한참 마음이 어려울 때 찾아간 심리상담 선생님께서는 타인의 입장에서 밖으로 나와, 나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힘들었지, 수고했다고 말해주라고 조언해주셨다.

길거리에서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걷는데,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힘들었다. 그래도 잘 살아보려고 그랬는데, 지나치게 미워하고 몰아세우기만 한 것 같아서 나에게 미안했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습관은 진행 중이지만, 항상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 해지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나 바로 지금 해야만 하는 그 일을 하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한 없이 관대 해지는 것"

이석원의 2인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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