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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Feb 28. 2021

100장의 이력서를 썼다.

막막하고 두려웠던 취업준비의 시간들


직장생활을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다른 불안함이 있긴 하지만, 처음 취업준비를  때의 까마득함과 비교하면 지금은 그 시간을 잘 지나갔음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살면서 처음으로 막막한 벽에 부딪힌 경험이라 그런 걸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모습과 감정이 선명하다.


대학생, 짧았던 자취생활을 그만두었다.

대학교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가지 못했지만, 받아들이고 열심히 다녀보기로 했다. 여러 학교 행사들에 참여하고 친구들도 사귀니 학교 생활이 재미없지만은 았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공부를 핑계로 학교 앞에서 자취도 시작했다.


하지만 자취방은  아지트가 되고 말았다. 매일 친구들이 놀러 오고, 밤에 학교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자고 자주 불렀다. 그래도  불러준다는  좋아서 거절하지 않고 나갔다. 재밌기도 했지만, 피곤한 날에도 사람들과  많이 친해지고 싶어 무리를 했던 적도 많았다.

여전히 대학생의 나는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부 활동, 치어리더  딱히 하고 싶지 않았던 활동도 남들이  하니까 나도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았고 갈수록 우물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 여기서 머무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취를 그만두었다.


처음으로 열심히 해봤다.

자취방을 나온 이후로는 학점도 신경을 쓰고 나중에 취업 준비할 것을 대비해 이력서에  스펙을 이것저것 채웠다.

다양한 대학생 활동에도 참여하고, 각종 공모전 수상, 토익점수도 취업용으로 부족하지 않게 만들었다. 대학교가 맘에  드는  빼고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뭔가를 하고 싶다는 목표는 없었기 때문에, 경제학과 학생으로서 주로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경제/경영 관련된 곳에 취업하면 우선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열심히 살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분명 선생님이 그랬었는데.


노력이 매번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진 않았다.

4학년 2학기가 되어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확률적으로 이력서를 많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닥치고 취업', '취업 뽀개기' 등등 각종 유명한 취업 카페에 가입해서 대기업 공채 달력을 맨날 체크했다. (요즘에도 공채가 있지만, 옛날보다는 공채 비중이 꽤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자소서 스터디도 하고 면접  경우를 대비해서 면접스터디도 했다. 스터디 멤버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남들보다 노력을 많이 했으니 어느 정도는 보상받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틀렸다.

현실적으로 내 이력서를 관심 깊게 읽어주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대기업 공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취준생들이 지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이력서를 인사담당자가 일일이 하나씩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회사가 정한 특정 기준으로 필터링하는 프로세스가 있다고 들었다.

가끔 취업설명회를 가면 "우린 일단 학교/학점/토익부터 필터링하고 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같이 취업스터디를 한 친구들은 서류통과가 꽤 잘 됐고, 나는 줄줄이 탈락하면서 면접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당시엔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것 또한 세상 물정을 몰랐던 미숙한 나의 생각들이었다. 무엇보다  좋게 인사담당자 손에 들어가 읽힌 나의 자기소개서도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특별한 목표도 없고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남의 말만 따라가고 좋아 보이는 것만 쫓아가던 모습이 내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멘탈붕괴  면접

처음으로 겨우 서류 전형에 통과하여 유통업을 하는 대기업 면접에 갔다. 다른 이유는 없고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가고 싶었다.

면접장같이 들어간 지원자들이 우렁차게 인사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주눅부터 들었다. 역시나 면접 결과도 좋지 못했다.

물론  지원자들을 존중하지 않던 면접관들을 모습을 생각하면 탈락한 것이 행운이었다 싶긴 하지만 당시의 데미지는 컸다. 그때는 취업만   있다면 그들이  존중하지 않아도 상관이 었다.


100개의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넣은 이력서의 개수만 100개가 넘어갔다. 4학년 2학기가 마무리되는 12월쯤이 되니 너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취업 못하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속상해서 엉엉 울었다.

 안에서  닫고 이력서를 고치고  고치고, 면접 연습 질문을 몇백 개를 뽑아서 무슨 질문이 나와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연습했다.


그 와중에 취업이  때까지 인턴이라도 하면서 준비하싶은 생각으로 인턴 지원을 해서  회사에 합격했다. 동시에 같은  지원했던 게임회사  곳에서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확실한 인턴을  것인가, 불확실면접을  것인가. 많은 고민 끝에 인턴을 포기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잊지 못할 두 번째 면접.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의 사옥에 들어갔을 때, 친절한 인사담당자분과 사내 카페에 사원증을 걸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면접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대비해서 목소리 크게 내는 연습도 하고 갔다. 면접에 들어가기  같이 들어갈 지원자들과 '하나, , ' 하면 동시에 인사하기로 하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면접관과 면접자 거리가 가까워서 당황했다.


"그래도 사람들이랑 약속했으니 해야지"

하나, 둘셋을 크게 했더니 면접관분들이 입을 꾹 다물고 억지로 웃음을 참으시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웃긴 모습이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시작으로 1차에서 합격하고, 2차 면접도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끝났다.

내가 면접을   봤던 간에, 면접의 유통기업과는 확연히 비교되게 면접관분들의 매너가 좋으셨다.


발표가 나는  너무 긴장돼서 일부러 저녁 6시까지 잤다. 그 후 비몽사몽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6시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취업의 기억 

나랑 맞지 않는 경제학과와 관련된 회사로 지원한 기업들은 다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지원한 게임회사의 서비스 기획자,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만 꿨던 it회사에 공채로 입사하게 됐다.

출근 첫날엔 회사의 배려로 택시가 집 앞으로 와서 나를 회사로 데려다주었다.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던 엄마의 모습과 그 날 동네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내 이력서를 읽어준 회사와 팀장님이 지금도 너무 고맙다. 당시의 내 모습은 정말 간절해 보였다고 한다.


이력서 100개를 무작장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어떻게든 길은 있으며, 현재의 상황에 크게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  몰랐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던  시기에는 모든 것이 두렵고 조급하기만 했다.


20대 초반의 내가, 나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조금 덜 조급해졌을까?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져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학교에서 대단한 인싸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가는 좋은 회사가 꼭 나의 목표일 필요도 없다고.


취업은 인생 중 다른 막의 시작일 뿐, 이것이 내 삶의 전체를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이 힘든 과정에서,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시기가 다를 뿐 때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그 기다림을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

누군가를 응원해주고 싶을 때, 또는 나에게 격려를 하고 싶을 때 페퍼톤스의 이 노래가 항상 떠오른다.


“행운을 빌어요"
빛나기 시작한 별 세차게 부는 바람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굿바이
오랜 시간이 흘러 쓰러질 듯 벅찬 날 이 서툰 노래가 닿기를
긴 여행의 날들 끝없는 행운만이
그대와 함께이길


힘들었시간이 잊지 못할 아픔이 아닌 추억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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