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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r 19. 2021

아빠의 군고구마: 아빠는 지금 행복할까?

아빠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래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아빠가 연탄난로에 구워준 군고구마였다. 그동안 밖에서도 많이 사 먹어 봤지만, 아빠의 군고구마만큼 맛있는 것은 먹어본 적이 없다.

어릴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소소하게 우리를 챙겨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른으로써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좋은 사람" 표본이기도 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도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내 마음속 좋은 어른이 사라진 날

2007년, 학교 MT를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점심이었다.

오후에 교보문고에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해서 짐을 두러 잠시 집에 들렀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다.

“아빠가 도박을 해서 돈을 다 날렸데”

엄마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아빠는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이상한 도박을 해왔다고 한다. 매달 월급날이 되면 엄마가 가계부를 쓰고 아빠가 은행 업무를 직접 처리했기 때문에 엄마는  년간  돈이 사라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종종 통장을 확인했어야 하는  맞지만,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부모님이 오랜 시간 아끼며 힘들게 모은 큰돈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도박을 하는 곳에서는 돈을 잃으면 돈을 빌려주고, 때로는 돈을 따게도 해주었다고 한다. 아빠는 심리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잃는 돈의 액수는 불어났다. 잃은 돈을 복구하려고 보험도 해약하고  노트북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써도 감당이  되는 상황이어서 결국 터지게  것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그 돈을 모았는지를 알기에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 후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빠는 많은 것들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되었다.

특히나 아빠의 명의로 금융거래는 할 수 없게 되었고, 친구들과의 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에 고향 모임, 재미로 다니던 당구장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한 낙은 주말마다 혼자 노래방에서 3시간씩 노래를 부르고 오는 것. 때로는 모란장에 가서 엿장수를 구경하거나 남한산성 한 바퀴를 돌고 오는 것 정도였다.


아빠가 다른 가족처럼 같이 여행도 가고 주말에 함께 놀러 다니는 것도 재미없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빠보다는 엄마와 더 친밀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엄마를 챙기는 만큼이나 아빠를 챙기지 못했다.

최근 아빠의 이 상태가 안 좋아져서 밥도 잘 못 먹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미안한 마음에 함께 강남의 유명한 치과에 가서 같이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동안 아픈데도 돈이 많이 드는 치료라 많이 아프다는 말도  하고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빠의 군고구마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얼마  엄마가 만든 반찬을 전달해주겠다고 아빠가  근처에  적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 기다리는데 반찬을 쇼핑백에 한가득 담아 들고 오는 아빠가 보였다.

쇼핑백 안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군고구마가 들어있었다. 연탄난로에 뜨끈뜨끈 구워서 식지 않게 호일로 감싼 따뜻한 군고구마.

 

"네가 맛있다고 해서 구워왔어. 반찬도 맛있더라,”

, 고구마 맛있겠다

“오는 거 하나도 안 힘들어~ 어차피 요새 일이 없어서 심심했었는데 돌아다니고 좋아"


왠지 모르게 어색한 짧은 대화를 하고, 용돈으로 챙겨간 오만 원을 맛있는 과일 사드시라고 드렸다.

"고마워. 나 앞으로 심부름 자주 올게!"


어릴 적 완벽한 어른의 모습이었던 아빠는,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반대로 아이 같은 모습으로 느껴졌다

집안을 든든하게 이끌어가는 가장의 모습보다는, 가족의 눈치를 보는 힘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과는 달랐던 모습에 실망스러워 나도 모르게 아빠를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연탄불에 따뜻하게 구워준 꿀맛 같은 군고구마, 엄마가 없는 날이면 직접 만들어준 아빠만의 독특하고 맛이 좋은 찌개, 어릴  H.O.T.  좋아하던 나를 위해 등촌동까지 가서 팬클럽 사이에  서서  우비를 받아다 줬던 기억까지,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대로 나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아빠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빠는 지금 행복할까?


한 번의 실수로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을 아빠의 뒷모습에 더 마음이 아려왔다. 돌아와서 먹은 군고구마가 너무 따뜻하고 달아서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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