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너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겠지. 맞아. 이 사용설명서는 바로 그럴 때 읽고 너의 본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거야. 하지만 평소에도 미리미리 읽어두면 더 좋아.
네가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지는 상태가 되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책하고 비난하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회피하며 망가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힘들어하지. 그렇다면 바로 이 사용설명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온 거야. 지금 어떤 상태이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는 가끔 이런 상태를 경험해 왔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단지 회복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좀 아끼고 너를 보호하려고 이 설명서를 만들기로 한 거 너도 기억하지? 그런데 네가 힘들어지면 마치 그 상태가 원래 너의 모습인 걸로 확신하고 동굴을 파고 지하로 지하로 들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어서 너의 또 다른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기록은 너에게 꼭 필요한 거라고 할 수 있지.
너는 참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현명하며, 순수하고 낭만적인 꿈을 간직한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이야.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이나 글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거나 리폼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 공간을 감성적으로 예쁘게 꾸미는 것을 즐기며, 멋진 자연의 풍광을 사랑해서 그런 공간에 있을 때 무척 행복해하지. 여행을 좋아하고, 혼자서 여행하는 것도 겁내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제주도에도 그렇게 단번에 내려올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거고,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너의 영혼이 자유로운 상태일 때 너는 참 행복해하고 아름답고 멋진 표정을 짓는 사람이야.
너는 MBTI 유형 중 INFP의 대표적인 인물인 잔다르크처럼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앞장서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격이야. 나는 이런 너의 성향을 ‘울뚝불뚝 깃발녀’라고 부르겠어. 마음속에서 개선해야 할 불합리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되면 참고 순응하기보다는 나서서 행동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무기력과 우울감, 자신감 저하가 너를 장악하는 상태(이후에는 이런 나의 모습을 ‘그림자’라는 단어로 표기하기로 한다)가 되면 앞으로 나서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회피하는 경향이 있지. 그런 상태에서는 너의 신념에 대한 자신감이 작아지기 때문에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면서 너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시간이 지나서 밝은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면 너의 적극적인 모습이 다시 드러날 테니 조금 기다리면 돼.
너는 대체로 책임감이 강하고, 친절하며, 성실하고 열심히 진심을 다해 일하는 편이야. 너의 직무에 요구되는 윤리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양심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윤리 중의 하나이자 너의 자존감을 세우고 자부심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려고 애쓰고 있지. 너는 너의 자부심을 높이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너의 그림자가 전경으로 나오면 자부심보다는 열등감과 부정적인 자기 비하, 무능력감, 수치심이 자아동질적으로 현실감 있게 느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의욕 상실의 상태에 빠져서 모든 것을 회피하게 돼. 그러니 그런 상태가 되면, 그 모습이 너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해.
너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지. 남편과 아들도 너를 무척 사랑해. 말로 표현은 잘하지 않지만, 너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말리지 않고 늘 너를 응원하고 있어. 너에게는 너를 잘 알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언제든 네가 손을 내밀면 잡아주고 너의 좋은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는 친구라고 할 수 있지. 네가 힘들 때는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도 돼. 그 친구가 너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귀찮아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 친구는 언제든 너의 “help me”에 응답해 줄 거니까. 그리고 너의 옆에는 함께 응원하고 격려하며 마음을 나누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네가 소통해 온 사람들을 떠올려봐. 힘이 될 거야.
너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지만,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해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고, 자신이 못나게 보일 때도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어. 그리고 그런 모습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려는 소중한 자기의 또 다른 측면이니까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는 마. 그럴 때는 이 설명서를 읽고 다시 만나게 될 너의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를 바랄게.
*추신 :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푹 쉬어도 돼. 하지만 자책이나 자기 비하만은 하지 말아 줘. 1분을 달리기 위해 2분을 걸었던 것처럼 제자리걸음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동안 애써 온 너에게 휴식도 필요하니까. 그림자 상태에 빠졌을 때 그걸 알아차리기만 해도 충분해.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은 너의 빛깔, 너의 길을 찾아가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