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 다니는 게 싫어졌다. 사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에게 남편이 제주로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면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아는 남편이 내린 특단의 처방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그녀와 가족은 제주로 이사를 했다. 제주로 직장을 옮겨온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여행자로 살았던 제주는 너무나 여유롭고 아름다웠으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제주는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척박하게 느껴졌다.
제주에 온 다음 해에 그녀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을 싫어하는 그녀에게는 5분을 달리는 것도 무리가 되었다. 달리고 온 날 밤에는 종아리가 붓고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차츰 달리기에 익숙해진 그녀는 마라톤 10km에 도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58세의 나이에 마라톤에 처음 도전하는 그녀는 자유인이 된 해방감을 만끽하며 오늘도 제주의 바닷바람을 가르며 해안도로를 달린다.